때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음을 들켜버리곤 한다.
여느 날처럼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다 오랜만에 마주친 동네 서점이 눈에 밟혔다. 약 10평 남짓한 바로 옆 치킨집 간판에 묻혀 그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오래된 책방. 국문학과에 다닌다는 어떤 자부심 비슷한 부채의식에 그 서점과 정면으로 마주친 날이면 슬그머니 들어가 책 한 권을 집어왔다.
함박 쏟아지는 햇살과 오래된 책들이
켜켜이 쌓여 나는 종이 냄새를 좋아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마음껏 책을 사지 못했던 그 시절, 늘 고민하다 내가 데려온 책은 바로 <문학동네>였다. 문학동네사가 발간하는 계간 문예잡지. 국어국문학과에 처음 입학한 덕인지 그 시절엔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는 종종 학교 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함박 쏟아지는 햇살과 오래된 책들이 켜켜이 쌓여 나는 종이 냄새를 좋아한다. 특히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정도로 구석에 처박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책을 읽는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런 날이면 평소에 절대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을 무심히 둘러보는 걸 즐겼다.
그렇게 무심하게 만난 책 중의 하나가 바로 <문학동네>이다. 이 문예잡지를 집어 들면 왠지 내가 국문학과라는 사실이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도서관에 있는 다른 누구도 그 문예잡지를 읽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안에 실려있는 문장들에는 어떤 힘이 있었다. '내가 바로 문학이오!'라고 외치듯 한 글자 한 글자 깊이 있는 활자들이 춤을 췄다. 그런 문장을 보는 것이 나에겐 새로운 재미였다. 특히 작문 수업을 할 때면 자신만의 문체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의 문체보다 더 세련되고 멋진 문장들이 수두룩 했다. 그 글을 읽으면 왠지 나의 문장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눈을 부릅뜨고 읽어도 그 깊이가 헤아려지지 않아 스르르 눈을 감아버리는 적도 많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은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취향에 맞는 비평 몇 개만을 휘리릭 넘기며 봤을 뿐이다. 하지만 잠깐 보았던 그 문장들, 단 한 문장임에도 나는 마음을 빼앗겨버린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는 그 '발견된' 한 문장을 가지고 하루 종일 생각했다. 노트에 적고, 다음번엔 내 글에 써먹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런 문장을 만났다. 역시나 <문학동네>였다. 조금 지치는 날이 이어진 탓인지 그림책 위주로 구성된 짤막한 시집을 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다가 서점 한 켠에 되는대로 대강 뭉쳐 싸여있는 책을 발견했다. <문학동네>였다. 다른 책은 어여쁘게 전시되어 있는데 서점 한 켠에 그렇게 뭉뜽그려 쌓여있는 책을 보니 왠지 측은한 마음과 함께 반가운 마음이 동시에 생겨났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랬다는 듯 무심하게 책장을 휘리릭 넘겨보았고 오랜만에 느끼는 이 힘 있는 문장들에 이상하게 울컥했다.
오랜만이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대로 이 책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 저녁을 차리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마주친 한 문장에 혼자 통쾌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이영광 권여선 신형철 세 작가의 대담이었다. 굳이 혼자 있음에도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읽다가 나는 턱 하고, 한 문장과 마주했다.
그게 왜냐하면 앞의 두 시집에서 확 쏟아냈는데 사람이 그렇게 계속 갈 수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번 시집은 어떤 의미에서 원심력을 흩뜨려놓고 뭔가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 아무튼 대상을 꽉 틀어쥐려고 하는 게 아니라 느슨하게 흩어 놓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다채로워지는 면들이 있어요. 본인은 밀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음을 들켜버리곤 한다. 그런데 그 마음이, 차라리 누군가 알아줬으면, 너는 이런 상태야,라고 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라면 이 알아차림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아니 나조차 스스로 확신할 수 없는 상태. 그 애매하고 모호한 상태를 누군가 명확한 단어로 통쾌하게 짚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