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아직은 날카로울 정도는 아니지만 차갑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봄바람이 부는 깊고 푸른 밤.
차가운 바람과 달리 온몸으로 따뜻한 봄을 외치는 개나리 위로 줄지어 서 있는 높은 아파트들을 보며 길을 걸었다. 건물들의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불빛이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반짝이며,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작은 별처럼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 같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끝나는 날들이 늘어갈수록,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라도 좋으니 걸으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어떻게 살고싶은지'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지'
나지막이 속으로 되뇐다. 정말 괜찮은지, 아니면 괜찮아지고 싶은 건지 모른 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데, 이곳엔 친구도, 가족도 없다. 애써 통화 목록을 내려봐도 걸어볼 번호가 없다. 그래서 나는 봄바람에 기대어 말을 건넨다.
"좋은 날이 오겠지?"
대답 대신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가로등 불빛 아래, 잔잔히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조용한 공감을 보내주는 것만 같다.
우울증을 완치했다고 믿으며 웃으며 보낸 지 어언 1년.
남을 속이듯 내 감정을 외면하며 극복하려고 발버둥 친 기간이 꽤 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 연재 글을 쓰지 않았다.
나는 우울증이 아니고 싶으니까.
울어야 할 때도 담담하게 웃으며 상황을 마주하는 내게
혹자는 "너는 멘탈이 정말 강한 것 같아"라고도 말했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지금 느끼는 내 감정은 현 상황과 맞지 않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저 내가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면서도 불안했다.
그래도 요즘 산책할 힘이 있다는 것을 보면
1년 전의 나는 우울증이 아니라 번아웃이 왔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의지와는 무관한 일들에 털썩 무너지곤 한다.
1년 전과 같은 아침이었다.
위기다. 그런데 이겨낼 힘이 없다.
이럴 때 방법은 단 하나다. 쉬어야 한다.
짧은 휴식을 주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꽃을 봐도 예전처럼 행복하지가 않고 예뻐 보이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통했다.
지난밤, 산책길 오른쪽에 흐르는 잔잔한 강물처럼 지금 느끼는 이 고통스러운 감정도 언젠가는 흘러내려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다 보면 이 고요함을 평화롭게 느껴지겠지?
많은 아픈 사람들이 나처럼 아파도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헤어 나올 수 있는 힘을 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