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벚꽃을 봐도 감흥을 잃은 나의 봄날.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걸으면서 앞으로의 나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날이다.
그 앞에서 나는 깨나 목적지가 뚜렷해 보였다.
꽤 오랫동안 나는 목표를 정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지내왔기에
아직까지도 그런 양 사람들 앞에서 나는 언제나 당당하다.
하지만 요즘은 집에 돌아오면 매번 갈피를 못 잡아 흔들리는 마음에 휘청이다 잠든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엔 목적지가 있어야 한다고. 그곳을 향해 쉼 없이 걸어가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지금, 걷고 또 걸어도 도착하지 못하는 중이다.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계절만이 지나간다.
봄이 왔는데도 온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선 연신 피어오르는 꽃을 보며 봄이 왔다고 감탄한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다.
감흥의 감도가 예전과 다를 뿐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가에 앉아보라며 ,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예쁜 마음씨를 가진 동생.
나는 늘 누군가를 사진 찍어주기만을 했지 찍혀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보는 내가 나온 사진.
집으로 돌아와 사진 속 꽃과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방황’ 중일까, 아니면 ‘방랑’ 중일까.
어쩌면 나는 그냥 흐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일도, 사랑도, 살아가는 일조차도 손에 잡히지 않고 멀어져만 가는 요즘.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무너짐이 나를 휘감고, 나는 늘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 그렇게 살아왔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나 요즘 좀 힘들어.” 그 한마디를 꺼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내가 만든 ‘괜찮은 사람’의 껍데기가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아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매일 걸었다.
목적지 없이 걷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나는 밤마다 목적지 없이 걸은지 오래다.
그러다 보면 우연히 너구리도 만나고
어제는 초록색이던, 오늘은 노란빛을 내는 개나리도 만난다.
나만 빼고 매일 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꽤 오래도록 홀로 나선 밤산책은 그저 걸음수만 채우는 것이 나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만큼은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 자유로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는 네 인생에 그 어떠한 목적지도 두지 마.
목적지를 정해놓고 달리다가 길을 잃잖아?
그럼 그건 방황이야. 지금 너처럼.
근데 아무런 목적지 없이 떠돌다가 길을 잃지?
그럼 그건 방황이 아니라 방랑이야. 방랑. 나처럼."
넷플릭스 드라마 <Mr.플랑크톤>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가 그의 전 여자친구를 찾아가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면서 하는 말인데
목적지가 없어야 길을 잃어도 방랑이 된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