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박연준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만든 계기를 들어보면 대개 작품을 만들던 당시 아주 외롭거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써 내려가는 글 또는 음악이 생각지 못하게 사랑까지 받았다고들 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기 위해 시작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무게를 어떻게든 밖으로 밀어내려 했을 뿐.
그러나 오히려 그런 날것의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손이 되어 닿는다.
며칠 전, 읽고 있던 책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에서 눈에 오래 남은 한 구절이 있다.
마음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다.
솔직한 쓰기는 상황을 인식하게 되고,
인식은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
그 문장을 읽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그땐 아무리 앉아 있어도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막막한 공백이었다.
절친한 친구들을 만나면 요즘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고 표현을 했다.
어릴 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를 생각덩어리들을 거침없이 글로 휘갈기고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런 것 하나하나 들이 다 신경 쓰여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떠오르는 생각조차 없다며 하소연을 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땐 내가 살만했나 보다.
굳이 쓰지 않아도 버틸 수 있었던 나날들.
슬픔을 언어로 꺼내지 않아도 괜찮았던 시간.
아이러니하게도, 글은 괜찮을 때보다 괜찮지 않을 때 더 잘 써진다.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수록 문장은 또렷해진다.
지난 주말엔 밥도 하루 한 끼 겨우 먹을 정도로 아침 일찍부터 강행군의 스케줄을 소화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괜히 울컥했다.
딱히 슬프거나 힘든 일도 없었는데도,
심지어 무조건적인 나를 향한 응원을 해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마음이 따스해진 길임에도
가슴 어딘가가 욱하고 올라왔다.
며칠 그 감정은 묵혀고 일상에 적응하던 날 밤, 이 책을 읽고 나는 노트북을 켰다.
담담하게 타자를 치며 그날의 감정을 하나씩 건져 올렸다.
그러자 비로소 알게 됐다.
'아, 내가 지금 외로운 거였구나.'
'내가 나도 모르게 무너지고 있었구나.'
그게 바로 ‘인식’이었다.
그리고 인식은 치유를 가능하게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나는 조금씩 괜찮아졌다.
글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과정.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 때로는 그렇게 쓴 문장이, 다른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가 된다면, 그건 아주 뜻밖의 축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