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건널 수는 없더라도> 유운
생애 첫 일본 여행을 갔던 마지막 날 아침.
내가 묵은 곳은 아와지섬의 경사지고 굽이진 길을 높이 오르다 보면 나오던 아름다운 집이었다.
깜깜한 밤하늘에 내 눈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다 잠들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새벽 일찍 눈을 떠도 피곤하지 않은 아침이었다.
그건 아마 처음 보는 친구의 아버지가 나를 따스하게 반겨주셔서이기도 했을 테고.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난 해외여행인데 일본어를 잘하는 친구가 3박 4일 여행 내내 모든 일정을 책임지고 이끌어줬기에 나는 말 그대로 '쉼'만 가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부녀의 따스한 배려로 나는 매일 아침 개운하게 눈을 뜰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의 이른 아침 역시 그랬다.
그날도 어김없이 친구네 집 욕실 통유리창으로 일출을 지켜보다가
떠날 때가 되니 아쉬워서 집 앞을 산책하다 들어오니
문을 열자마자 집안 가득 커피 향으로 가득했다.
나를 위해 아침 한상을 차려주시느라 집안 가득 채운 향기에
"눈부시게 아름답고 행복한 아침을 선물해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서툰 일본어로 전하며
아름다운 아침햇살을 핑계로 눈시울을 붉혔었다.
2024년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마지막으로 더는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없어 무너졌다.
그 여행 후 정확히 일주일 뒤, 처음으로 병원을 찾게 되고 마음의 병을 진단받고
부단한 노력 끝에 금방 회복하는 듯하였다가 돌아가기도 했다가 하며 지내던 중 1년만.
새로 맞이하는 봄이 왔고, 이런저런 삶의 질곡 앞에서 나는 그 행복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여행메이트와 1년 만에 또 여행을 왔다.
다른 이들은 어떤 '의미'를 갖고 여행하기도 하는구나.
나는 오히려 너무 많은 삶의 의미들에 치였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이제는 아무 의미도 찾거나, 주장하거나, 증명하고 싶지 않아서
이곳까지 온 것 같은데.
유운 작가의 <우주를 건널 수는 없더라도> 중에 나오는 말이다.
1분 1초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사느라 고단했던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의미를 두지 않는 시간들로 채우며 '비우는 연습'을 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