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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詩 쓰기란

나의 詩 쓰기 도전기

by 여상 Mar 17. 2025

[ 동주 ]


시를 쓰려는데

시가 써지질 않아

내가 시를 쓰지 말고

시가 나를 쓰라고

어린 동주를

꺼내어 읊다가

늙은 눈에 이슬을 달고

미소를 짓다가

껄껄 운다.




어려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읽으며 시인을 꿈꾸었었다. 물론 어린 한 때의 희망이었다. 지금 이 나이에 읽어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서시]가 당시에는 그저 아름답고 낭만적인 시인줄로만 알았었던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 일제강점기의 비통한 역사 속에서 순수의 결벽으로 고뇌했던 시인, 그의 비극적인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윤동주 님의 몇 편 시들은 어린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었다.


그 후로 까맣게 세월이 흘렀다.


어린 시절 한 때의 꿈과는 멀게 시나 글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작문에 대한 추억이 있는지라 산촌에 살면서 마음이 한가하고 헛헛할 때 가끔 시를 지어보게 되었다. 말이 시이지 생각을 짧게 썼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러다가 재미가 붙어 일상의 감상들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무려 12년 간이나 국어수업을 받지 않았던가. 학창 시절 백일장에서 상도 몇 번 받아봤겠다, 배운 기억을 더듬어 밋밋하지 않으려고 리듬에도 올라타고, 비유를 가져다 붙이고, 말을 빙빙 돌려대거나 비비 꼬아보기도 하며 시를 지어봤다. 그러나 나름 열심히 몰두한 것은 가상하지만 창작물의 결과는 웃음도 나오지 않을 만큼 형편없었다. 짧게 쓴다고 시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의미 있는 시간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시집을 구해 시를 읽기 시작했다. 기성 시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언어의 운용을 배워볼 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웬걸, 수십 편 작품들을 대하고는 드높은 수준의 벽에 그만 기가 막혀버렸다. 날카롭고 난해한 현대시들 속에서는 아예 길을 잃어버렸다. 詩라는 예술은 언어를 사용하되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마법을 가지기도 해야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이 문외한의 수준인 나에게는 힌트가 되어 주지 못하였다. 시어와 구성의 난도가 높은 작품을 만날 마다 '시인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는 고사하고, '이게 대체 뭔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하며 근본적 곤란을 느끼게 되기 일쑤였다. 뒷머리를 긁으며 아리송한 추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여러번 대하다 보니 그토록 아리송한 시들에서도 알 수 없는 감성 향기처럼 전해져 오고, 해석할 수 없는 메시지와 엉켜버린 스탭 같은 리듬 속에서도 순서 없이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 느낄 수 있었다. 맥을 놓고 시 속을 헤매면서 제 멋대로 심상화를 하다 보면, 이러라고 이 시를 썼을 시인의 짓궂은 얼굴이 상상되기도 했다. 아름답구나! 하지만 아무리 흉내 내어보고 싶어도 내가 나도 모르는 단어와 문장을 쓸 수는 없는 . 그랬다가는 나태주 시인의 말대로 '단어 간에 피가 통하지 않는' 죽은 문장들이 의미 없이 난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준에 맞추어서 습작의 시간을 더하다 보면 어느 날 나의 글도 피가 통하는 아름다운 문장이 되어 주리라 기대하면서 오늘을 쓸 수밖에.


러한 와중에 가끔 어떤 대가들의 서정적인 시가 나에게 뭉클하게 와닿았던 것은 공감과 소통의 차원에서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풀꽃시인 나태주 님의 작품이나 시인 구상 님의 이 시처럼 말이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 바로 꽃자리니라
- 구상 시인 [꽃자리] 중에서 -


단지 아름다운 언어의 운용 만이 아니라 시인의 깊디 깊은 사유의 꽃자리에 취해 마음 저 안으로부터 감동의 탄식이 절로 나온다. 요원한 일이겠지만, 언젠가 나도 이런 시 하나를 남기고 싶다.




시인들이란 깊이 있는 공부를 기반으로, 치열한 사유와 부단한 노력을 통해 하나하나 작품들을 출산해 내는 예술가들인 것이다. 따라서 무수무구한 시간과 노력 없이 시인을 꿈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공연히 주제 넘치는 욕심이 생기면 마음 억울해지고, 가슴앓이 병만 깊어지게 될 뿐. 그래서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일상의 마음을 시로 쓰련다." 말하자면 하루 단상을 더 함축하여 써 보자는 것이니, 조금 더 잘해보려 방황하다가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 셈이다. 삶 속에서 어떠한 것들과 만났을 때 그 감상을 소박하고 진솔한 글로 옮겨 보는 것. 이른바 생활시이다. 표현을 어여쁘게 다듬어 보는 가운데 스스로를 순화시키며, 그래서 점점 더 착해지는 마음을 얻는 것.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음공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 나는 詩를 통해 풍경과 그리운 대상에게 가는 통로를 발견했다.
詩와 함께 하는 동안 나를 알게 되고,
잃어버렸던 많은 아름다운 것들과 하나 됨을 누리게 되었다."   
- 박현종 시인 -



좋은 시를 찾아 감상하고, 가끔은 시 쓰기에 대한 조언이 담긴 책들을 보아 가면서 앞으로도 욕심 없이 시를 쓸 것이다. 이러한 자가수업을 통해 시를 읽어내고 사랑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삶과 사유가 풍만해지는 고마운 선물이 되어 줄 것임이 분명하다.


산청의 선배가 촬영한 봄 빗방울. 그도 시쓰기를 좋아하는 멋진 사람이다.산청의 선배가 촬영한 봄 빗방울. 그도 시쓰기를 좋아하는 멋진 사람이다.




한편 작문을 위한 조언이 담긴 책들을 엿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글을 쓰는 작업은 진실한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메타포의 날개도 진실한 마음 위에서 펼쳐야 한다는 뜻일진데, 일천한 경험 상 시쓰기에 몰두하다 보면 더러는 스스로에게도 부끄럽고 은밀한 속살을 꺼내야 하는 코너에 몰리기도 한다. 자신과의 내밀한 대화, 그럴 때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로 끝까지 그 대화를 따라가 보기도 한다.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상황 자체가 소중하다. 누군가에게 공유할 수준이 못되더라도 성찰을 위한 작업으로서의 시쓰기는 행위 자체로 하나의 의미가 되어 주는 것 같다. 물론 산문도 다를 바 없지만.


다른 배움 한 가지는 '관찰'에 관한 것이다. 그 대상이 외부이던 내면이든 간에 평소와는 다른 관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약간의 시각 변화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느낌은 세상을 좀 더 입체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도움이 되어주는 것 같다. 한 시인이 말했다. "시를 쓰기 위해서 다른 시각으로 관찰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상의 산책도 모험이 된다."라고.


"사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이며 우리 삶을 비추는 은유이다.
때로는 우리의 감정을 닮고, 곁을 지키기도 한다."
- 모카레몬 시인 -



지난  편의 어리숙한 시를 지어보았다. 문학에 대한 배움 없이 감수성만으로 써 본 자작시를 다시 들여다보자니, 한없는 어설픔과 이래 저래 애를 쓴 흔적에 코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나는 전문가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자유롭다. 그렇게 내 생활시의 습작이 충분히 모아졌을 때 그중 몇 편을 잘 고르고 다듬어서 시집을 엮어볼 작은 꿈이 있다. 적은 비용으로도 책을 엮을 수 있다고 하니, 몇 부만 만들어서 아끼는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선물하는 것도 늦은 나이에 풋풋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사이좋은 사람들과 술 한 잔 하면서 함께 읊조리다 핀잔을 받는 것도 재미있겠다. 그럴 상상을 하니 벌써 마음이 풋풋한 청춘이다.  


 

" 詩는 사유에 대한 무한 확장 능력으로,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누군가에게는
위로로 다가든다. 내가 오늘도 詩를 쓰고 또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싶고 때로는 너에게 다가가고 싶기 때문이다."
- 강은교 시인 -





P.S. 모카레몬 작가님의 글을 허락없이 인용하였음을 양해 구합니다.

#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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