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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의 詩

시&노트

by 여상

[ 낙엽의 시 ]


'이제 날아보려 해.'


날개깃을 갸울이는

마른 햇살의 무게


한 시절 초록을 채워

새와 작은 것들이

쉬어 가고 먹고 가고

사랑을 나누던

넉넉한 시간들


푸른 수액으로 흐르던

과육의 시간들

머물다 간 바람과 빗물과

기쁘고 슬펐던 이야기들이

야위어 간다


이별이 허락된 시간,

맑은 빛으로 부서져

바람만이 알고 있는

그곳에 가면

이 뜻

알 수 있을까?


찬란한 창공으로

비우고 또 비워낸

초록의 습기

마른 손을 흔들어

충혈된 눈동자를 향해

비로소 건네는

작별의 인사


아!

때마침 바람이 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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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어느 가을날 문득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아침 햇살도, 저녁노을도, 아름다운 이들의 웃음소리도.


Memento Mori.


죽음을 의식하는 사람은 가벼워진다.

쌓아두려 했던 것들을 놓아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탐나던 물건도, 집착하던 무엇도, 남의 시선과 세상의 평가까지도.


역설적인 것은 더 깊게 산다는 것이다.


소멸을 의식하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산다.

더 맑고, 더 간절하고, 더 충만하게.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 이 숨, 이 바람, 이 빛으로,

유한하기에 아름답고, 영원하지 않기에 소중한 순간순간들을...


그러므로 떠날 때를 의식하며 산다는 것은

허무주의나 패배주의와 같은 수동성이 아니다.

오히려 성실한 능동이다. 조용한 역동이기도 하다.


허심(虛心)한 이별이란,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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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만추 #낙엽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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