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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Jun 14. 2024

그 해 여름 I

낯선 상상 #3

"모두들 피해! 박상병! 어서!!"


허병국 중사가 소리를 쳤다.


이곳은 전쟁의 냄새로 가득했다.

지독한 화약 냄새와 코를 찌르는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귀를 찌르는 폭발음으로 가득 찬 그리고 포탄과 총알이 난무하는 이 전장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떠들던 전우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수류탄이 소대 쪽으로 떨어졌고 허중사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수류탄을 몸으로 덮었다.


으악


단말마의 비명소리와 함께 허중사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다른 소대원들은 그 참혹한 광경을 보고 혼비백산했지만 박만식 상병은 그를 품에 안고 울었다.


"허병국!!!!! 으아아악"


"내.. 중한 친.. 만.. 식... 이 전... 쟁... 꼭 살아.. 나... 해"


"아무 말하지 마! 의무병을 부를 테니 제발..."


"얌.. 마.. 나 글렀.. 이거.. 내 아버.. 에게.."


그는 자신의 품 안에 있는 편지를 만식이에게 건네주곤 힘없이 팔을 떨궜다.


허병국은 고향의 불알친구였다.

만식이가 살던 고향은 작은 동네였지만 서로가 잘 알고 있었고 따뜻함을 품고 있던 동네였다.


얼마나 더 많은 전우들의 시체를 밟으며 전진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더 이 의미 없는 전쟁을 해나가야 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들이 만식이를 괴롭혔다.


수많은 더위와 추위 그리고 배고픔과 고통을 견뎌내던 어느 날 하늘 위로 전투기들이 큰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그리고 전쟁은 순식간에 끝났다.

해외 유수의 신형 전투기들이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온 것이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싸운 것인가...

이건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Ludovico Einaudi - Divenire (2006년 음반 Divenire)


몇 년 간 벌어졌던 전쟁은 겨울에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고 이제 봄이 왔다.


만식이는 그곳을 바로 떠나지 못했다.

친구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친구가 사망한 장소를 탐색했지만 헛수고였다.

이젠 찾을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망연자실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릴 적 병국이는 체격이 굉장히 좋았는데 군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는 성인이 되던 해에 바로 군입대를 했고 만식이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다.


고향을 떠나 몇 년 후 전쟁이 발발하면서 입대를 했고 만식이가 속해 있던 부대가 전투 중에 상당수가 사망하면서 인근의 다른 부대와 합류했다.


거기서 중사가 된 병국이를 만났다.

급변하는 상황 때문에 그와 회포를 풀지도 못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친구를 드디어 만났는데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마지막 남은 것은 수색 중에 찾은 그의 이름이 박혀있는 군 목걸이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을 놓고 있다가 그가 죽기 전 건넸던 편지가 생각나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래... 친구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줘야지."


편지 내용을 보고 싶었지만 차마 보질 못했다.

그렇게 그가 남긴 편지와 마지막 유품인 군 목걸이를 가슴에 품고 고향으로 향했다.


박만식은 Pat Metheny를 허병국은 Herbie Hancock의 발음을 음차 해서 지은 이름이다.
아마도 재즈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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