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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Jun 15. 2024

그 해 여름 II

낯선 상상 #4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화창한 날 더위로 인해 만식이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저 멀리 고향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언덕이 보인다.


얼마 만에 오는 고향인가...


언덕을 향하는 길에 여름이면 유난히 길을 채우던 달개비도 여전하다.

언덕에 있던 소나무도 전쟁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그대로 서있었다.


전쟁이 발발한 당시에 만식이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고향에 와도 자신을 반겨줄 사람 없는 이곳에 우두커니 서있는 저 소나무만 만식이를 반기는 듯했다.


어릴 적 뛰놀던 논밭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마치 이곳은 전쟁이 비껴간 듯 시간이 멈춘 채 존재하고 있었다.


병국이네는 만식이 집 바로 뒤에 있었다.


나무로 그늘 진 그 좁은 길을 따라 병국이네 집 앞에 선 만식이는 의자에 걸터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 중년의 남성을 보게 되었다.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그분이 물었다.


"거기 누구시오?"


가까이 보니 앞을 보지 못하는 그분은 바로 병국이의 아버지였다.

어릴 적 병국이와 만식이를 굉장히 이뻐했던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파여져 있었다.

만식이는 가슴이 아려 아무 말도 못 하고 병국이네 아버지에게 읽어드리려고 편지를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만식이는 그 편지를 차마 읽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흐느껴 울며 한마디를 던졌다.


"아버지! 저 병국이예요. 아버지!"



Ryuichi Sakamoto - Andata (2017년 음반 Async)

날씨가 좋아서 병국이네 과수원은 잘 돼 가고 있었다.


만식이는 열심히 농사를 했다.

아버지가 막걸리를 좋아하셔서 손수 막걸리도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병국이 아버지의 건강이었다.

이미 당뇨로 실명을 하고 건강이 악화되면서 계속적으로 살이 빠졌고 결핵이 유행하던 당시 결핵으로 인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강하길 바라는 만식이의 바람과는 달리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국이 아버지는 만식이를 불렀다.


"만식아!"


"아.. 아버지!"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난 자네가 병국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네. 하지만 나는 너무 고마웠네. 날 아버지처럼 대해주는 우리 만식이가 진짜 내 아들이라고 생각했네. 아마도 전쟁 중에 병국이는 사망했겠지?"


"네...."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드렸다.


"그래. 우리 아들 장하다. 수많은 전우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우리 병국이... 흐흐흑"


아버지는 그렇게 병국이를 자랑스러워하며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셨다.


"만식아. 난 이제 자랑스런 우리 아들을 만나러 간다네. 자네도 이제는 건강하게 후회 없는 자네의 삶을 살아가게나."


그렇게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잘 지내고 계시죠?

저도 잘 지내고 있읍니다.
전쟁이 곧 끝날 것 같읍니다.

들리는 소문은 연합군들이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회의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면 제대하고 아버지를 모시려 합니다.

홀로 외로이 적적 하셨을 텐데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막걸리도 만들어 드리고 과수원도 정비해야겠죠.

아버지.
그립읍니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세요.

아들 허병국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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