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상상 #18
"여러분들은 여러분만의 숲이 있습니까? 숲은 쉼과도 같은 의미이죠."
강연이 끝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는 강의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여전히 자리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강연을 하던 강사는 그분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서 나오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강사의 시선을 느꼈던 것인지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그 사람이 강사를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솔직히 궁금하네요.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내셨는데 제 강연이 별로였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 그건 아닙니다. 잠시 숲은 쉼과도 같은 의미라는 말에 생각에 잠겼네요."
"그 말에 생각에 잠기신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생각하는 숲이라는 이미지가 쉼과는 다르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숲이라는 곳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지만 많은 생물들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땅속에서는 수많은 벌레들, 매미의 유충이 성충이 될 때까지 치열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갈 것이고 땅 위로는 나무와 숲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많은 것들이 그들의 삶에 충실할 테니까요.
그런 숲을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나무가 뿜어내는 상쾌한 공기와 적막한 공간이 쉼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때로는 인간의 존재가 숲에게는 스트레스를 주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숲이라는 공간을 떠올려봤습니다.
그곳에서 사는 생물들이 내는 작은 소음들과 그 속을 거니는 저의 이미지를 그려봤습니다.
한편으로는 제 안에 그런 숲이 있는지도 한번 떠올려보게 되었네요.
강사님의 강연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서 저는 좋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강사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숲이 쉼터가 될 수 있겠지만 숲의 입장에서 인간의 존재가 스트레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사는 강연을 마치고 정리를 하면서 아까 그 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우리 모두 또는 나는 우리와 나의 입장에서만 모든 것을 바라보곤 한다.
이것이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취미와 취향, 술 한잔으로 친해질 수 있는 그런 사회라고 하지만 때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강사는 자신의 노트에 'Your Forest'라는 단어를 썼다.
그리고 애너그램(Anagram)을 이용해 다음과 같이 다시 써내려 갔다.
Rest, For You
많은 것들이 정말 빠르게 변해만 가는 이 세상에서 당신만의 쉼이 있기를 바라며 그 강사는 노트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