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 사람들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원무과 직원을 만나게 된다. 의사를 만나기 위해 일정을 잡고, 심리검사 절차를 안내하고, 수납까지 총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풀 배터리 검사를 한다. 지금 마음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심리검사로, 웩슬러 지능검사, 다면적 인성검사, 문장 완성검사, 그림검사, 벤더 게슈탈트 검사, 다면적 인격 검사, 투사검사, 동적 가족화 검사 등이 있다. 두툼한 종합세트를 받고 나면 시험을 치듯 검사지에 이것저것 답해야 한다. 문항이 워낙 많아서 집에서 작성해 오라는 경우가 많다.
심리검사를 모두 끝내면 정신건강임상심리사를 만난다. 집-나무-사람을 그리고, 특정 그림을 보고 무슨 상황인지 유추하고, 데칼코마니 그림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이른바 '투사적 검사'를 하면 나의 말속에 어떤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는지 평가한다.
그런 다음 의사를 만난다. 어떤 증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편한지 설명을 하면 그는 원인을 분석하고, 사고나 행동적인 조언을 하고, 가장 중요한 '약'을 처방해준다. 환자는 수개월 동안 약을 먹으면서 증상을 조절하고 의사와 상담하며 변화를 지켜본다. 여기까지가 보편적인 치료 과정이다. 정신과를 한 번이라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원무과 직원, 의사, 임상심리사를 모두 만나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병동의 문 뒤로 일곱 명의 새로운 인물이 가려져 있다. 입원을 해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1. 간호사
입원을 하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간호사는 환자의 반입금지 물품을 확인하고, 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안내하고, 병동 이용 규칙을 설명한다. 아침, 저녁마다 환자에게 약을 나누고 제대로 삼켰는지 확인한다. 환자와 가까운 만큼 특이사항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2. 보호사
자살시도, (성) 폭행, 자해, 탈출 시도 등 긴급 상황에 나타나는 사람이다. 필요시 환자를 제압해 보호실까지 동행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환자가 신청한 간식을 나누어 주거나 게임을 같이 하는 등 친근하게 시간을 보내는 보호사도 있다.
3. 청소노동자
매일 병동을 깨끗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오래 일한 만큼 환자와 정이 들어서 근황을 나누며 청소하시는 분도 있다. 간혹 환자분이 쓰레기통을 들고 먼저 다가가거나 청소기의 줄을 내내 들어주는 정도로 도와주기도 한다. 여성분의 경우 여사님으로 통한다.
4. 영양사
식사 때마다 큰 밥차를 끌고 오신다. 폐쇄병동, 반개방 병동 등 층별로 이동한 후 환자가 줄을 서면 차례대로 배식을 해주신다. 직원 식당까지 담당하는 영양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재료, 칼로리, 음식의 양과 맛, 등을 바쁘게 체크한다. 당뇨와 같은 신체적 질환이 있는 환자를 고려해 환상의 조합을 만들어 낸다.
5. 환자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4인실에서 8인실까지 있다. 같은 병실에서 만난 환자와는 친한 친구가 되기도, 고통을 주고받는 앙숙이 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간호사 또는 보호사가 중재에 나선다. 병원에서 할 일이 워낙 적다 보니 함께 수다를 떨거나 그림 그리는 활동을 하는 등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6. 사회복지사
환자가 어떤 경위로 입원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증상의 정도는 어떠한지, 주변에 인적 및 물적 자원이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이다. 환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및 심리적인 환경을 샅샅이 조사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어떤 욕구를 가졌는지 파악해 제공한다.
집단상담을 통해 사회기술훈련, 스트레스 관리, 증상관리 교육, 자살예방교육 등을 제공할 수 있겠고, 필요에 따라 개인면담을 진행한다. 또,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또는 각종 재단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에 참가해 환자의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정신병원에서는 100 병상 당 1명의 정신건강사회복지사가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 한 명은 만날 수 있다. 또, 해당 병원이 수련기관이라면 정신건강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1년간 교육을 받는 수련생도 볼 수 있을 것이다.
7. 특수교사
아동 청소년이 병원에 입원을 하면 학업이 잠정적으로 중단된다. 물리적으로 학업이 끊기는 것 외로도, 장기결석으로 인해 휴학 또는 퇴학 처리가 될 수 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학교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 이른바 '병원학교'인데, 교육청과 병원이 MOU를 체결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병원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면 출석을 인정받을 수 있다. 병원학교 선생님은 특수교사로, 전 학년을 총괄한다. 국영수와 같은 교과목뿐만 아니라 미술, 게임, 만들기 등을 진행함으로써 정서적 지원까지 담당한다.
2022년 2월 11일 (금) 수련일지
내가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말 것이라는 태도는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로 인해 누군가의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면 좋겠지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몇 번 듣는다고 해서 한 사람의 생각과 인격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지난한 시간이 걸릴 테고 그마저도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수련 초기에 비해 완전히 달라졌다. 초반에는 '선한 영향력'에 사로잡혀 그것에 큰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인정한 후로는 반드시 환자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거의 사라졌다. 환자를 비롯해 여러 치료진들이 적절한 시기에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했을 때만이 건강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나의 역할은 내담자와 함께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연습과 점검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론적으로는 좌절되어도, 혹은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나 혼자서 만들었다는 생각은 지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