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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ryme Oct 03. 2019

위로가 된 건 돈이었다

내 인생이 끝난 것 같을 때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때가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정말 집채만한 파도처럼 들이닥칠 때도 있다. 내 인생을 내가 어찌할 수가 없을 때. 그래서 내 인생은 이대로 끝난 건가라는 두려움이 생길 때.


누군가에겐 별 일 아니지만 나에게는 너무 큰 문제였다.


1. 10년 동안 살았던 집에서 갑자기 이사를 해야 했고

2. 이사갈 지역을 좁게 설정하는 바람에 한 달 보고나니 더 이상 볼 집이 없었고

3. 살고 있는 집을 보여달라는 전화가 하루에 30통이 넘게 왔고

4. 회사에서는 R&R이 뭔지 스스로 흔들리고 있었고

5. 난생 처음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6. 리더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조직관리를 제대로 경험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했고

7. 그래서 인생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던 조직과 사람을 떠나야만 했고

8. 새로운 출발을 아주 짧은 시간 만에 뒤집어 또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신기하게도 한꺼번에 닥친 문제들은 비슷한 시기에 해결됐다.


채광 때문에 탈락시켰던 집에 입주했고 (살아보니 생각보다 빛이 잘 들어오더라)

살던 집은 의외로 이사 예정일을 넉넉하게 앞두고 빠졌고 (전 임대인과도 잘 마무리했다)

마침 어느 정도 맞는 자리를 제안해준 곳이 있었고 (조직에 내 고민을 함께 들어줄 사람들도 있다고)

마음 정리가 힘들었던 전 직장은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까지 최선을 다해 안녕을 고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부단하게 노력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보기도 했고, 앞으로 잘할 것을 써보기도 했고, 맛있는 걸 먹어보기도 했고,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재료를 사서 만드는 동안 혹은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고 음식을 먹는 과정은 '뭔가를 했다'라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1. 감정식사는 아무런 도움이 안됐다.

새 직장으로 가기 전 일주일 정도 시간을 가졌다. 이삿짐 정리도 할 겸 아무 약속 없이 지냈다. 시간은 넘쳤지만 내 인생을 고민하고 싶지는 않았다. 깜깜했으니까.


근데 아무 일도 안하니까 그것도 괴로웠다. 그래서 장을 봐서 요리를 했다. 하루에 4끼씩. 한번에 아주 많이. 음식을 잘하지 않지만, 음식을 하는 것으로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다. 맛있게도 먹었다.


근데 아무런 도움이 안됐다.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허전함이나 불안함 같은 것들 때문에 먹었으니까.


감정식사가 왜 도움이 되지 않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보려면 https://brunch.co.kr/@kam/15


2. 책을 뒤를 돌아보게 할 뿐이었다.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책, 그동안 읽지 않고 뒀던 책을 봤다. 늘 그랬듯 공감하는 부분에 줄을 그었다. 이런 깨달음을 앞으로 어떻게 적용할까가 아니라 "것봐, 내가 옳았어" 혹은 "아, 내가 틀렸던 걸까?" 같은 후회나 자기합리화로 이어졌다.


물론 건질 이야기도 있었다. 새 직장에서 업무 매뉴얼을 이렇게 만들어야겠구나 같은 것들. 그럼에도 여전히 나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을 지울 순 없었다.


그럼에도 꽤 새겨둘 부분이 많았던 책 '하드씽' https://brunch.co.kr/@cloud09/96


3. 별 거 아니라는 건 거짓말이었다.

스스로 별 일 아니다, 살면서 겪는 일이다, 새롭게 잘 시작하면 된다라고 생각해봤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런 생각으로 고민을 끝내곤 했다. 아까 말했듯이 고민해봐야 깜깜했으니까.


근데 별 일이 맞았다. 한 달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원래 눈물이 없는 드라이한 사람이건만. 그러니 별 일 아니라는 이야기는 내가 하든, 남이 해주든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10년 만에 하는 이사를 핑계로 이것 저것 샀다.   

4. 재무 계획을 세웠다.

10년만에 하는 이사에는 돈이 많이 들어갔다. 부동산에 내는 중개수수료, 전세대출금, 이사비, 이사청소비, 도배비...


거기다 평소에 꼭 갖고 싶었던 걸 장만했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지만 하얀색 침구를 마련했고, 딱 10년된 20인치짜리 브라운관 TV를 버리고 55인치 대형 TV를 장만했다.


역시 처음에는 얼마나 썼는지 적어두기만 했다. 되새긴다고 무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다 1년에 얼마를 모으자는 목표를 세웠다. 한달에 얼마나 저축해야하는지 계산하다가, 현재 자산을 꼼꼼하게 봤다. 생각보다는 많이 모아놨고, 생각보다 써야 할 돈이 많았다.


갑자기 마음이 명쾌해졌다. 한달에 꼭 써야할 돈과 우울할 때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적당한 금액을 정하고 나머지는 저축하기로 했다. 당장 큰 투자 계획을 세운 건 아니다. 모은 돈으로 뭐할 지 목표를 세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스스로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거나 없거나 나는 살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감정만은 추스르기 어려웠지만 재무 계획을 세워보니 단순해졌다. 내가 해야할 일이 명확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돈 버는 일을 해야하고, 그 일을 하면서 느끼는 괴로움은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그 어떤 감정보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정해졌다.


돈을 버는 일을 하자.


너무 당연한 말 아니냐고? 나에게도 언젠가는 '아직 어떤 일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라는 감정이 우선인 때가 있었다. 그때는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를 고민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돈을 벌자'라는 생각이 더 먼저라는 걸 깨닫고 나자, 다른 문제는 앞으로 고민해보자로 바뀌었다.


의외로 위로가 되는 건 '돈'이었다.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라 앞으로 갚아야 할 게 많아서여도 괜찮다. 때로는 돈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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