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추울까 상상이 안돼
본래 성격이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 괴로워하는 성격이라, 한 달 전부터 북유럽 여행용 짐 꾸리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북유럽 여행 짐을 챙길 때 더 부산스럽게 굴었던 것은 2주라는 장기 여행인 것과 북극권까지 다녀오는 일정이 잡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추우면 여행도 제대로 못할 테고, 그렇다고 짐을 많이 가져가면 2주 동안 계속 이동하는 여행 일정상 불편할 것이 뻔했다. 짐이 많아져서 매번 백드롭을 이용한다고 하면 북유럽과 서울 왕복 비행기를 제외한 비행기 이동 구간만 총 다섯 번인데 배보다 배꼽이 커질 상황이었다.
장기여행이라고 해서 짐을 많이 가져간다고 여행이 쾌적해지는 것도 아니기에, 기내용 트렁크 20인치 + 노트북 백팩 + 카메라 가방 ( 돌아올 때를 대비해 롱샴 르 플리아쥬 모델을 하나 챙겨간다. ) 정도로 짐을 꾸리기로 했다. 배낭이 아니라 캐리어를 챙기는 이유는 비행기 수화물을 맡길 경우, 하드 캐리어에 선물을 넣어오는 것이 훨씬 안심되기도 하고 이동 중 피곤하면 짐을 올려두는 선반처럼 사용해도 되기 때문이었다. ( 기내용 캐리어는 비싼 것보다 저렴하고 튼튼한 제품을 구매해서 몇 번의 여행 후에 교체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어차피 자주 던져지고 험한 곳을 다니다 보면 바퀴부터가 먼저 망가지기 때문이다. )
어쨌거나 방문할 8곳의 도시 중에 3 곳이 바다가 얼 정도로 정말 추운 곳이니만큼 스키복과 핫팩, 그리고 스키용 장갑은 꼭 챙겨야 했다. 북유럽 겨울은 흐린 날씨가 많아 비나 눈이 오면 후드만 뒤집어쓰고 다닐 수 있는 스키복이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 캐주얼한 스키복 상의를 패딩 대신 정말 잘 입고 다녔다.
날씨는 정말 천차만별인 것 같다. 겨울 북유럽 여행시 신경 쓰면 되는 것은 '눈'일 줄 알았는데 베르겐과 코펜하겐에서는 바닷바람 때문에 추웠고, 로바니에미는 오히려 너무 대비를 해서 핫팩 때문에 땀이 퐁퐁 났다. 케미에서는 눈과 비가 섞여오는 바람에 챙겨간 스키복 덕을 톡톡히 보았다. 하지만 여행을 다시 돌이켜 보자면, 따로 겨울 액티비티를 할 일이 없다면 ( 눈썰매를 탄다던지 ) 스키복 바지까지는 챙겨갈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일정 중간에 얼마나 스키복 바지를 버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레깅스나 겨울용 러닝 팬츠 위에 기모 츄리닝을 겹쳐 입고 핫팩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따뜻하다. 주머니용 핫팩보다는 붙이는 핫팩이 더 유용하다. 너무 많이 챙겨갈 필요는 없고 하루에 많아도 3개 정도 사용한다고 예상하고 챙기면 좋을 것 같다. 모자는 꼭 챙길 것, 귀가 많이 춥기 때문에 후드보다는 귀까지 가려주는 비니나 모자를 쓰면 좋다. 발에 붙일 수 있는 핫팩이 따로 있는데, 밤에 나이트 사파리를 하러 갈 때 유용했다.
장갑은 두 종류를 가져갔다. 평소에 한국에서 사용하는 스마트 터치가 되는 얇은 장갑은 낮시간 도시를 관광할 때 사용했고 스키용 장갑은 액티비티를 하러 나갈 때 사용했다. 만약 북극권 지역에서 액티비티를 할 예정이라면 스키용 장갑을 하나 더 챙겨두는 것은 좋은 선택일 것 같다. 나머지는 투어 업체에서 두꺼운 양말부터 비니, 헬멧, 부츠 그리고 올인원 스키복까지 챙겨주니 오로라 투어를 예약할 사람들은 챙겨 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부츠 같은 경우에 가족과 함께 북유럽 여행을 다녀온 재은에게 조언을 들었다. 재은의 경우에는 X마트에서 파는 저렴한 2만 원대의 어그 부츠를 구입해서 여행을 한 뒤에 버렸다고 했다. 나도 야심 차게 2만 원대의 어그 부츠를 구입했으나 밑창이 너무 매끈해서 덜렁거리는 내 성격상 넘어질까 염려가 되었다. 결국 방한, 방수 기능이 있는 저렴한 3만 원대의 부츠를 사서 갔는데 만족스러웠다. 북유럽은 미끄럼 방지를 위해 눈 위에 자잘한 돌멩이를 뿌려두는데 여기에 부츠도 상하고 캐리어도 상하고, 젖었다 얼었다 땀이 났다를 반복하니 마지막 날 서울에 돌아올 때는 정말 지금 당장 버려야 할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북유럽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몇 년 전 유행했던 브랜드의 방한 부츠를 많이들 신고 있었는데 만약 자신이 그 부츠를 이미 가지고 있다면 신고 와도 좋을 것 같고, 없다면 그냥 저렴한 방한 방수 부츠 중에 밑창에 미끄럼 방지가 되어있는 부츠를 사기를 추천한다. ( 사이즈는 수면 양말을 신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여유로운 사이즈면 좋다. )
여행 중 푹 자는 건 그다음날 일정을 위해 정말 중요하다. 게다가 나는 두꺼운 옷을 입고는 답답해서 잠을 못 자는 성격이라 침대 안이 따뜻한 걸 좋아하는데 기본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은 공기를 데우는 히터를 많이 이용한다. 그래서 미국 겨울 여행 중에는 핫팩을 박스채 사다가 자기 전에 침대 안에 핫팩을 넣어두고 데워서 자곤 했다. 추운데 억지로 자면 일어났을 때 몸이 뻣뻣하고 피곤한 게 자도 잔 것같지가 않아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고려했던 부분은 숙면이었다. 일정도 빡빡하고 이동도 잦은데 잠도 제대로 못 자면 분명 여행을 망칠 것 같았다. 게다가 숙소 중에는 도미토리도 있었고, 익숙하지 않은 숙소에서 잠을 설치는 건 정말 싫을 것 같았다. 그래서 숙면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었다.
바로 소형 뜸질기 - 여동생이 허리가 아플 때 구매했던 제품과 동일한 제품을 인터넷에서 구매했다. 딱 펼쳐서 20인치 기내용 캐리어에 넣을 수 있는 크기인데 타이머 기능도 있고 온도 조절도 5단까지 가능해서 전기장판이 요원한 북유럽에서 유용할 것 같았다. 실제로 호스텔과 야간열차, 호텔 등에서 없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은 핫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가격은 3만 원 이내로 구매했고 북유럽도 220 볼트를 사용하기에 편하게 사용하고 집에 와서 어머니께 선물로 드렸다.
두 번째 아이템은 메구리즘 스팀 아이 마스크 - 피곤할 때 혹은 도미토리룸에서 수면을 취할 때 예민한 상태라면 메구리즘 스팀 아이 마스크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잠자기가 훨씬 수월했다. 야간열차나 도미토리 룸에서 잘 예정이라면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머리끈이나 슬리퍼, 헤어 브러시는 챙겨가면 좋다.
머리끈이나 헤어 브러시는 북유럽에서 사려면 터무니없이 비싸고, 슬리퍼는 호스텔에서 샤워실을 이용하거나 바닥이 차가운 실내를 돌아다닐 때 좋았다. 슬리퍼는 다이소에서 2천 원이면 가볍고 좋은 걸 구매할 수 있다.
보온용 텀블러 : 호텔에서 투숙할 예정이라면 추천, 텀블러를 가지고 가서 따뜻한 물을 줄 수 있겠냐고 하면 가득 채워준다. 물을 따로 끓일 필요도 없고 무료로 얻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무게나 부피를 생각할 때 꼭 필요하진 않았던 것 같다. 누룽지를 챙겨가서 텀블러에 숭늉을 만들어 먹거나 하기엔 좋았다.
노트북 : 거의 모든 걸 스마트폰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티켓 예약이나 확인 등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거나 메일로 받은 QR 코드나 바코드로 확인 가능하다. 일정 중간에 노트북 충전 어답터가 고장 나서 사용하지 못했는데 불편하지 않았다.
우산 : 대부분의 비는 스키복으로 감당이 될 정도였다.
마스크 팩 : 피곤한 여행 후에 숙소로 돌아오면 히터로 인해 방이 건조하고 따뜻해서 얼굴에 열이 오르는데, 알로에 마스크 시트를 잠시 해주면 피곤함도 가시고 피부도 편해졌다. 피곤하면 얼굴에 열이 오르는 체질이라면 몇 장 챙겨가면 좋을 것 같다.
파스 : 장기간 여행에 짐을 계속 들고 이동하면 손목이나 허리, 어깨 등이 아픈데 잠들기 전에 붙여주고 잠이 들면 그다음날 한결 나아져 있다.
마스크 : 바닷바람이 강한 도시에서는 상당히 유용했다. 하지만 사진 찍기에는 별로 좋지 않아서 정말 추울 때만 착용했다.
음식 : 햇반과 컵라면, 컵짜왕, 즉석 황태해장국과 즉석 미역국, 누룽지, 즉석 소고기죽을 가져갔다. 물가가 많이 비싼 나라라고 해서 평소보다 많이 챙겼는데 즉석 소고기죽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잘 먹고 돌아왔다. 누룽지는 마실 수도 있고 과자처럼 먹을 수도 있고, 밥 대용으로 먹을 수 있어서 만족도가 제일 높았다. 만약 다음에 여행을 또 간다면 라면 수프에 누룽지를 챙겨갈 것 같다. 아플 때를 대비해 즉석 미역국과 햇반도 하나 챙기면 금상첨화. 비행기에서 주는 볶음 고추장을 챙겨갔는데 노르웨이에서 연어를 먹을 때 최고의 궁합을 보여주었다. 하나쯤 챙겨두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목도리 : 목폴라를 너무 많이 챙겨간 탓인지 목도리를 할 일이 없었다. 마스크 + 군밤장수 모자 + 목폴라 조합이라면 목도리는 안 챙겨가도 될 것 같다.
북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짐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한 달 동안 고민하며 북유럽 여행을 다녀온 분들의 블로그를 참고하고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고 인스타그램에 해쉬태그로 #helsinki나 #oslo를 찾아가며 복장을 찾아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츠도 다시 구매할 정도면 거의 추위에 대해 노이로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내가 간 시기에 북유럽 기상이변으로 눈이 내리지 않고 비가 오고, 도시 관광하기에 딱 좋은 따뜻한 날씨라서 핫팩도 남았고 부츠가 너무 따뜻해서 불편할 정도였다. ( 로바니에미와 케미에서는 최고의 선택이라 흡족했지만 )
다행히 여행 떠나기 전에, 제이드가 날씨가 이상하다고 미리 알려주어서 날씨를 미리 체크할 수 있었다. 북유럽 여행을 준비한다면 미리 날씨 앱을 깔아서 일주일 전부터 날씨를 체크하고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여행 중에 사용했던 App은 AccuWeather 이란 애플리케이션이었는데 이동할 도시를 모두 등록해두면 한 번에 기온을 볼 수 있고, 상세 화면에서는 언제쯤 비가 올지도 예고해준다. 오로라를 보고 싶었던 일정에서 계속 눈이 오고 비가 오니 상심이 컸는데, 비 오는 크리스마스에 케미에서 바라본 바다는 고요하고 아름다웠고 그 날 운 좋게 당일 예약한 나이트 스노우 모빌 체험은 정말 즐거웠다. ( 날씨가 좋지 않아 당일 예약이 가능했다. )
날씨도 옷도 결국 사람 마음먹기 나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