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의 비행기 호텔을 아세요?
내가 북유럽 여행을 가기 전까지 스톡홀름은, 부루마블의 두 번째 구역에 들어있는 스웨덴의 수도이자 이름이 조금 어려운 도시였다. 파리는 에펠탑, 런던은 빅벤, 뉴욕은 타임 스퀘어 등 유명한 도시라면 스톡홀름은 도대체 무엇이 유명한지 알 수가 없어서 처음에는 여행 일정 잡기가 그저 어렵기만 했다.
스톡홀름을 다녀온 적이 있다는 직장 동료 쌤에게 물어보니 스톡홀름은 감라스탄이 시내라고 했다. 그럼 감라스탄 안에 숙소를 잡으면 짧은 일정이 모두 해결되겠지 생각하고 감라스탄에 위치한 호스텔을 잡았다. 그러나 몇 주 후 예약 취소금을 내면서까지 미리 예약해둔 감라스탄에 위치한 호스텔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스톡홀름에 간다면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숙소를 두 곳이나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23:30에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 스케줄상 시내에 있는 숙소를 잡을 것인지 아니면 공항 근처의 숙소를 잡을지는 큰 고민거리였다. 분명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피곤해서 바로 누워 잠을 자고 싶을 텐데 버스를 이용해 시내에 나가면 새벽 1시, 숙소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감라스탄에 있는 숙소나 다른 숙소들도 애매하긴 마찬가지였다. 캐리어를 끌고 도저히 깜깜한 새벽을 홀로 돌아다닐 수 없다고 판단하고 결정한 선택은 이색적인 체험과 저렴한 가격, 공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점보 스테이였다.
독일을 경유 해서 이미 EU 입국 심사를 했기 때문에, 스웨덴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서는 따로 입국 심사는 없었다. 스톡홀름 공항에 도착해서 처음에 눈에 들어온 것은 재기 발랄한 땅따먹기 바닥 시트지였다. 아마도 짐을 찾는 동안 지루할 아이들을 위해 준비되어있는 것 같았다. 이후에도 다른 북유럽 공항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구석구석 눈에 보였다. 실제로 아이들이 위험한 수화물 컨베이어 벨트 근처에 오지 않도록 근처의 놀잇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준비되어 있거나 아이들을 태울 수 있는 카트가 따로 있기도 했다.
짐을 찾고 나오니,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이 된 로비가 나왔다. 역시 늦은 시간 때문인지 한산했다. 12시가 넘으면 공항 셔틀버스가 끊길까 봐 서둘러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본 정보로는 터미널 5에서 공항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는데, 밖으로 나오니 버스 정류장이 참 많았다. 날씨는 쌀쌀하고 짐도 많은데 얼른 체크인하지 않으면 내일 스케줄이 망가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밀려왔다. 손가락이 쌀쌀한 바람에 무거워졌다. 표지판 하나하나씩을 읽어가다보니, 방금 출발한 버스가 내가 타야 하는 버스였다. 밤 12시는 넘었고, 표지판에는 24:00 이후의 운행은 항공편에 따라 달라진다고 적혀 있었다. 텅 빈 3번 버스 정류장엔 나 혼자 서있었다.
설마 11시 반 도착 비행기인데 야속하게 12시 셔틀까지만 운행하진 않겠지, 무수히 많은 선택지를 고민하며 낯선 공항에서 떨고 있으려니 다른 비행기의 승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공항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2017년 1월)는 Parking bus ALFA가 버스정류장 '4번'으로 바뀌었습니다.
'다행이다.'
15분 후에 공항 셔틀버스가 3번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사전에 알아뒀던 것처럼 무료였고, 탑승하면 방송으로 다음 정류장이 표시된다. 나는 혹시라도 정류장을 놓칠까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열심히 방송을 들어야했다. 버스가 스카이 시티를 지나 짧은 터널을 지나면 바로 Jumbo Stay 정류장에서 내릴 수 있다.
공항 인근 지역을 순환하는 셔틀버스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터미널 5 - 4번 버스 정류장에서 탑승할 수 있는 셔틀버스가 Jumbo Stay에 정차한다.
오전 4시부터 밤 12시까지 운행하며 1시간에 4번, 15분에 한 대씩 운행된다.
만약 헷갈린다면 표지판에서 버스 노선표를 참고하면 된다.
인기 있는 시간대에는 버스가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기도 하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내가 갈 숙소가 저 곳이구나 하고 알았다. 밝은 조명으로 갈대밭 중앙 공터에 자리 잡은 보잉 747기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날개며, 엔진에 주렁주렁 계단을 달고 있는 모습이 이제는 그 용도가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닌 숙소임을 짐작하게 했다. 계단 옆 개조된 것 같은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문을 여니 현관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체크인 카운터가 있었다.
웰컴
카운터에 앉아있던 체크인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억양이 인도계 같은 남자 직원은 이메일로 받은 예약 확인 종이를 어색하게 뒤적거리다가 나의 예약을 확인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키를 건내주진 않고 아침식사는 안 할 거냐면서 묻는다. 나는 매우 아침 일찍 숙소를 체크아웃할 예정이기 때문에 아침식사는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몇 시에 체크아웃 하려고 생각 중이야?"
"음... 한 8시?"
"내가 새벽 3시부터 아침을 준비해줄 수 있어. 괜찮아."
"아냐, 진짜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그럼 내가 좋은 제안을 하나 할게. 지금 네가 들어갈 4인 도미토리는 이미 3명이 체크인해서 자고 있어. 그런데 네가 200 크로나를 더 내면 내가 싱글룸으로 업그레이드해줄게, 그리고 조식도 포함시켜주고 어때?"
이 직원과 이야기를 할수록 흥정을 잘하는 자가 여행을 잘하는 사람이었던 동남아 여행이 아른거렸다. 이 직원은 이런 일이 능숙한 듯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솜씨가 예삿 솜씨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지금 4인실에 체크인하면 불도 못 켜고 샤워도 못하고 짐 정리도 못한 채로 바로 잠이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6시간밖에 안 있을 거지만 면세점에서 산 짐도 정리하고 얼굴이라도 씻고 스킨로션이라도 바르려면 싱글룸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정가보다 저렴한 가격이었고 200 크로나정도의 지출은 예상 범위 안이었다.
"좋아. 업그레이드할게. 조식 포함된 거 맞지?"
"맞아. 네 방은 000호야. 샤워실은 저기 복도 맨 끝에 있는데, 지금 사람들이 자고 있으니까 카운터 맞은편 샤워실을 이용하는 게 더 나을 거야."
방 키를 건내받아 입실하려는 나를 방설명을 해주겠다며 복도까지 직원이 따라왔다. 자는 시간이기 때문에 조용히 입실하라는 의미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의외의 제안을 해왔다.
"너 혹시 콕핏 스위트룸 사진 찍고 싶지 않니? 너 아까 라운지랑 카운터도 사진 찍었잖아."
"뭐? 거기 비어있어?"
"응, 비어있어. 너 사진 찍고 싶으면 구경시켜줄게."
진짜 이 직원과 이제 '안녕'하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고운씨 조종석 객실에서 잠은 못 자더라도 사진만 좀 찍어오면 안 될까?"라고 부탁한 종희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조종석 객실은 나도 궁금했다. 1박에 25만 원이라는 미친 가격에 예약을 포기했지만 조종석 객실은 정말 구경 해보고 싶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카메라 가져올게."
"응, 내가 조식을 준비해야 할 때까지 조금 여유가 있으니까. 천천히 와."
아까 전까지는 짜증 나는 직원이었는데, 모두 이 사진 촬영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200 크로나를 낸 것도 아깝지 않았다. 카운터 옆에 있던 조그만 계단을 직원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보잉 747기의 퍼스트 클래스 공간과 조종석 객실이 양 옆에 보였다. 특이하게도 조종석 객실의 키만 유일하게 열쇠 키라고 했다. 게다가 계단부터 2층의 모든 공간은 이 조종석 스위트룸 객실을 사용하는 사람만 혼자 다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직원은 자신의 집인 것처럼 스위트룸 여기저기를 맘껏 찍으라며 보여주었다. 스위트룸이라 그런지, 미니바와 전용 화장실까지 갖춰져 있었다. 조종석의 계기와 버튼이 그대로 달려있는 것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정말 여기서 잔다면 비행기에서 잔다는 느낌이 물씬 날 것 같았다. 옆에서는 직원이 이왕 왔으니 여행은 즐겨야 한다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난리를 쳤다. 몇 장의 어색한 사진을 찍은 나는 사진을 다 찍었으니 내려가자고 직원을 재촉해서 내려왔다. 갑자기 직원이 카운터로 들어가더니 또 계산기를 꺼내 들었다.
"네가 정말 저 방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하는 제안인데 네가 추가로 800 크로나를 더 낸다면 저 콕핏 스위트에서 잘 수 있게 해줄게. 이건 정말 파격적인 가격이야. 원래대로라면 1850 크로나를 받아야 하는 방이거든."
지금 새벽 2시고, 나는 분명 6시간 후인 오전 8시에 체크아웃하겠다고 했는데도 계산기를 들이미는 직원을 보며 깊은 빡침의 시간이 찾아왔다. 내가 말이 없자 당황한 직원은 계속 파격적인 가격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건 정말 좋은 기회야. 대체 너 얼마가 있길래 그래?"
"내가 돈을 조금 가져와서 아까 너한테 준 200 크로나를 제외하면 나한테는 1000 크로나밖에 없어. 그러니 그건 어려울 것 같아."
사실 1400 크로나를 환전해왔지만 그건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난 어서 이 대화를 마무리하고 내 방으로 돌아가서 짐도 정리하고 자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직원 고민하더니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으음 그럼 700 크로나는 어때?"
"아냐. 나 정말 돈이 없어."
"그럼 500 크로나! 내가 내 돈 100 크로나 보태줄게. 이게 최선이야. 원래 최소 600 크로나는 받아야 한다고. 고운, 여행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는 잡아야 해."
갑자기 직원이 자기 지갑에서 100 크로나를 꺼내서 내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처음에는 상술이거니 했는데 1850 크로나에서 1100 크로나로 후려쳐진 객실 가격이 상술이더라도 내가 언제 할인된 가격에 콕핏 스위트 룸에서 자볼까 싶긴 했다. 객실에서 눈치 본다고 사진도 많이 못 찍었고,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흔들렸을 가능성도 높았다. 게다가 여행 전에 예약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 방이었다.
결국 나는 500 크로나를 더 내고 방을 제일 저렴한 4인 도미토리에서 제일 비싼
콕핏 스위트로 업그레이드했다.
제일 비싼 방에서 자게 된 나는 8시에 체크아웃할 계획을 취소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해가 뜨는 10시까지 기다렸다 체크아웃을 하기로 했다. 예상보다 비싼 방에서 잔다고 생각해서인지 푹신한 쿠션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인증 사진이라도 한 장 더 남겨야 할 것 같고, 눈 감으면 시간이 훅 가버릴 것이 아쉬웠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자 다들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는 카톡들로 한동안 내 카톡창이 시끄러웠다. 스톡홀름에서의 시작이 이렇게 다산 다난했다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려워 그냥 업그레이드했다고 설명하니 다들 신기하다고 했다.
"응, 나도 내가 여기 지금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해."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잠을 잤는지 아니면 못 잤는지 모르겠다. 커튼 사이로 서서히 햇살이 들어오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오늘부터 진짜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우선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고 조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조식을 먹는 시간조차 아까웠지만 어제 기내식밖에 먹은 것이 없어서인지 배가 고팠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운터에는 어제 내게 계속 계산기를 보여줬던 직원 대신에 전형적인 북유럽 사람처럼 보이는 남자 직원이 앉아있었다. 조식 쿠폰을 건네니 뷔페를 자유롭게 이용하라고 했다. 어젯밤 꿈을 꾼 걸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로 밤에 받았던 인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어제는 비교적 한산했던 바가 다양한 빵과 유제품, 햄과 치즈, 야채들로 가득했다. 시리얼도 있었다. 하늘색 접시에 햄과 치즈, 토마토, 빵을 담았다.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을 생각이었다. 커피도 오렌지 주스도 약간 밍밍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렌지 주스는 몇 잔이고 들이킬 수 있었다. 이래서 조식이 맛있다는 평이 나오지는 않는 것도 같았다. 전반적으로 무난했다. 그런데 이 점보 스테이의 특성상 이른 시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찍 체크아웃을 하는 손님들이 많아서 적당히 그런대로 수익이 나는 듯했다. 아무래도 배고픈 채로 아침 일찍부터 비행기를 타는 건 너무 힘들테니까 말이다.
조식을 서둘러 먹고나서 한동안 방안에서 또 방을 감상했다. 아쉬움이 없을 만큼 실컷 보았다 싶어서 키를 챙겨 아래로 내려와 체크아웃을 했다. 문 밖으로 나오니 어제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정말 이색적인 숙소 경험이었다. 아마 그대로 도미토리 4인실에서 잤더라면 절대로 이런 롤러코스터같은 기분을 여행 첫날부터 느끼진 못했을 거다. 아참, 상투적인 상술일 것 같다는 분들을 대신해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20일날도 점보 스테이에서 숙박을 미리 예약했었는데 그 계산기 직원이 또 카운터에 있었다. 이번에는 여자 2인실이고 상술에 당하지 않으리라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체크인을 잘 마무리했다. 방에 짐을 풀고 30분 후에 공용샤워실을 가려고 복도로 나왔더니 카운터에서 그 직원에게 체크인하다가 "좋은 제안"을 받는 여자 여행자를 보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여자 여행자는 좋은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스웨덴 관광 협회 사이트 STF에서 예약했다. ( 다양한 예약 사이트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
STF 인터내셔널 멤버쉽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면 1박당에 50 크로나( 한화 6600원 )의 이용료를 추가로 내야한다. STF 사이트에서 예약할 경우 Non-Membership 50 크로나를 함께 결제할 수 있었다.
예약 후에는 예약 확인증이 등록한 이메일로 오는데, 그걸 프린트해서 가져갔다.
점보 스테이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는 것과 STF 사이트에서 예약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STF 사이트의 점보 스테이 예약 페이지는 여기
콕핏 스위트 룸(조종석 객실)의 경우 홈페이지에 등록된 사진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콕핏 스위트 룸(조종석 객실)에서 1명이 머무를 경우 1850 크로나( 25만원 ) / 2명이 머무를 경우 3315 크로나( 47만원 )로 인원수에 가격이 크게 변동된다. ( 예약하는 기간에 따라 약간의 가격 변동은 있을 수 있다. )
스위트 룸에서 머무를 경우에는 샤워실이 따로 있지만, 그 외의 객실은 세면대와 공용 욕실을 사용해야한다. 공용 다리미와 공용 컴퓨터가 복도에 배치되어 있다. 조리기구로는 전자레인지가 준비되어 있다. 로비에서는 탄산 음료와 맥주, 커피, 샌드위치, 따뜻한 식사, 조식 등을 판매하고 있다.
특별한 객실 종류로는 콕핏 스위트룸, 싱글 스위트룸, 블랙박스 스위트룸, 엔진 룸이 있다.
콕핏 스위트 룸은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와 3층 전용 테라스, 스위트 룸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싱글 스위트룸, 블랙박스 스위트룸, 엔진룸의 사진은 북유럽 여행 사진첩 '스웨덴 스톡홀름 점보 스테이'에 있습니다. 다른 스위트 룸들이 궁금하시다면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brunch.co.kr/@nonayo/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