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Let it go 너에게 반했어.
11월, 짙어가는 가을의 문턱에서 올해 남은 두 달의 날들과 미세먼지와 싸워야 할 흐린 겨울을 생각한다. 결국엔 넘어가고 말 12월 달력 한 장과 다시 떠오를 새해의 태양도.
아직 귓가에 캐럴이 들리진 않았지만 인테리어 상점에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소품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어우러져 있고, 때마침 디즈니 채널에선 <겨울왕국> 2편 예고편이 한창이다. 11월 개봉이라며 당장 극장에 가자고 아이가 조르기 시작한다. 아직 개봉 날짜가 나오기도 전인데.
다음 주 고3 수험생들이 자유의 날개를 달고 비상하고 나면 빛의 속도로 겨울이 달려들지도 모르겠다. 미세먼지 뒤덮인 하늘의 회색빛 포근함보다는 귓불이 얼어붙을지언정 차라리 맑고 시린 시퍼런 추위가 낫다. 핫팩 장착은 기본, 한 겹 두 겹 꽁꽁 싸매고 코끝에 겨울임을 실감하는 그런 인정사정없는 동장군이 들이닥친다 해도.
2014년. 어린이집 아이들, 유치원생 사이에선 떼창 열풍이 불었다. 귓가에 들리는 대로 노래를 부르면 자연스레 되뇌어지는 음절 ‘레리꼬우’(feat. hy & 아이들 발음).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제가 ‘let it go’는 유치원이든 놀이터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자연스레 떼창을 부르는 마법의 곡이다.
바다 건너 먼 나라로 순방길에 오른 부모를 잃고 두 자매가 의지할 건 오직 서로뿐. 아렌델 가문을 이어 나갈 숙명을 짊어진 엘사는 대관식에서 그간 베일에 싸인 자신의 존재를 궁금해하던 사람들의 관심을 경계하다 아렌델 전체를 차갑고 시린 겨울 왕국으로 만들고 만다. 왕국에 두려운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엘사, 그녀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쳐 결국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쳐 보일 수 있는 삶을 택하기로 한다. 자신이 향하는 그곳이 비록 환영받지 못한 고립, 독립의 세계일지언정 스스로 솔직하고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엘사에겐 그것이 삶의 의미인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억눌렀던 감정과 절제해야만 했던 능력을 이젠 마음껏 펼쳐 보이리라는 메시지가 바로 주제가 ‘let it go’에 깃들어 있다.
레리꼬 떼창을 부르는 아이들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자신도 마법을 부리는 엘사가 되어 손짓으로 얼음 덩어리를 뭉쳐보고, 발을 쿵 내리찍어 앞길을 얼음판으로 만드는 상상을 하며 희열을 느꼈을까. 자유롭게, 하고픈 대로 원하는 대로 삶을 펼쳐나간 엘사의 마음을 공감했던 걸까. 아이의 꿈, 원하는 삶을 있는 그대로 스스로가 꾸려나갈 수 있게 해 달라는 아이를 위한 동화, 아니 어른을 위한 이야기가 아닐지.
유튜브로 수백 번은 들어본 그 주제가가 나오는 영화를 보여주려고 세 살 아이의 손을 붙잡고 극장에 들어섰다. 평일 아침이라 영화표가 있을 걸로 판단했던 생각은 불찰이었다. 이미 더빙판 상영시간은 마감이 되고 말았던 것. 극장 입구에서 <겨울왕국> 포스터를 보고만 아이는 집에 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레리꼬 누나를 안 보고 갈 수 없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눈빛 레이저를 쏘아댔다. 하는 수 없이 자막판 티켓을 사서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제 얼굴보다 커다란 팝콘 통을 두 손으로 꼭 끌어안고서 아이는 물었다.
엄마, 레리꼬는 언제 나오는 거야?
- 쉿! 응, 곧 나올 거야.
마침내 극장 내 조명이 꺼졌다. 깜깜한 암흑이 펼쳐졌다. 아이가 무서운지 내 품을 꼭 끌어안는다.
엄마, 무서워, 나가자.
집에 간내(갈래).
엄마~ 엄마~ 나가자.
근데 레리꼬는 언제 나와?
이쯤이면 기-승-전-레리꼬. 무섭다고 나가자고 하던 녀석이 참으로 집요하게도 묻는다. 오매불망 주제가 나오기만을 기다린 녀석, 기특하게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자막판이라 글은 몰라도 녀석 인생 첫 극장 영화를 오리지널 그대로 본 셈. 사실상 ‘let it go’ 주제가 신 그 한 장면을 보기 위해 아이로선 꽤 오랜 시간 인내한 것이다.
앞으로 공연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겨준 첫 극장 경험이다. 보너스 엔딩 신까지 소화하는 걸 보면 진정 무비 키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도치 엄마의 욕심도 발동한다. 매일같이 겨울왕국 스티커 북을 어린이집 가방에 넣고 다니고 엘사의 행동과 손짓까지 곧잘 따라 하더니, 종알거리는 꼬마 눈사람 울라프가 마음에 들었는지 울라프의 주제곡도 덩달아 좋아하게 되었다. 오죽하면 VOD 평생 소장권을 사서 다시 보기만 수십 번, OST는 매일의 BGM으로 틀어놨을까. 겨울왕국 마니아가 되어 버린 네 살 그때의 기억. 그 해 아이는 그렇게 디즈니 명작에 홀딱 반해버렸다.
+ 덧붙이며, 하나.
당시 레리꼬 떼창의 주역들이 갓 초등학교 문턱을 넘자마자 또 한 번의 떼창의 역사를 썼다. 시공간을 초월해 쩌렁쩌렁 울려 퍼진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가 바로 그 곡이다. 참 많이 성장한 사랑스러운 레리꼬 꼬마들.
+ 덧붙이며, 둘.
당시 네 살 꼬마였던 아이는 지금 아홉 살. 내년이면 10대(!!)에 들어선다. 네 살 겨울의 기억이 여전히 반짝이는 걸까. 녀석 인생의 첫 극장 영화라 그런지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 제일 애착이 크다. 얼마 전부터는 <겨울왕국> 2편 개봉일만을 기다리고 있다.
앗! 개봉일이 확정되었다. 11월 21일. 이번엔 어떤 장면, 어떤 노래가 히트 칠지. 자고로 속편은 기대하면 안 되는데. 아들의 인생 영화라 그런지 은근히 기다리는 이 마음이란.
단 한 번, 네버랜드
소소하고 사사롭게
너의 말이 다가온 날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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