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지 말아요, 빨리 와야 해
둘째 아이 딸기 군을 태중에 품은 지 6개월 차,
예정일 전까지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만삭의 워킹맘. 분명, 흔치 않은 기회다. 전에 했던 일과 유사하게 기관에서 연말까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계획엔 없던 뜻밖의 제안이라 머릿속에 고민의 풍선 말들이 꼬리를 물고 줄지어 섰다.
네 달 후, 둘째 아이를 낳고 나면 두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러니 커리어를 언제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게다가 지금 잠깐 일을 한다고 해서 커리어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기회를 경계하는 내면의 ‘작은 목소리’들이 점점 커질 무렵, 마음속에서 하나의 키워드가 소용돌이가 일었다. ‘언젠가,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가능성의 이야기들이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아마도 큰 아이가 두 돌 되던 무렵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현장에 나가 모니터링 평가를 하던 일련의 작은 일들이 첫 실마리가 된 것 같다. 평일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에, 혹은 급한 대로 친정 가족에게 SOS를 청하기도 하고, 주말엔 남편의 도움을 받아 소소하게나마 생각의 틈을 열어보려는 시도를 조금씩 해오던 차였다. 엄마로서의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프리랜서’ 비슷한 형태로 움직여 보는 건 실현 가능성이 있기에 도전했던 일이다.
그러나 직장에 적을 두고 일하는 것은 다른 문제. 무엇보다 아이의 돌봄 요건이 안정적이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강남권에 직장을 둔 남편의 도움을 받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만삭의 몸으로 아이를 맡기고 데려올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이 되는지가 제일 중요했다. 다행히 출퇴근 거리는 가까웠고 어린이집 위치도 내가 케어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서 굳이 돌봄 환경을 바꿀 필요가 없이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급한 일이 있을 땐 SOS를 청하면 도와주는 친정 가족이 있고, 원장님을 비롯해 근무하시는 선생님들도 엄마이자 교사로서의 경력이 오래되어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이제, 내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일만 남았다. 반일반에서 종일반으로 갑자기 환경이 바뀐 윤이를 생각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가 잘 적응할지 불안해하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건 온전히 나의 몫임을 잘 알고 있다. 결국 나의 문제라는 것을. 출근 전, 주말 권에 들어선 목요일 밤,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에게 출근 소식을 알리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럼, 그림 안 그리고
공부 안 하면 어디 가는 거야?
나도 엄마 따라 간내(갈래).”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 그림책과 동화책에 관심이 생겨 일러스트를 배우기도 하고 관련 강연을 듣거나 주로 도서관을 오고 가는 일정으로 주어진 자유 시간을 활용했다. 오후 4시가 되면 아이에게 돌아와야 하는 ‘줌데렐라(아줌마+신데렐라)’지만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확보하는 건 삶의 호흡을 유지하는 중요한 장치였던 것이다.
갑자기 어딘가로 출근해서 일을 시작한다는 엄마의 말이 자기와 멀리 떨어지는 것처럼 느꼈을까. 오후 네 시만 되면 ‘딩동!’하는 초인종 소리에 “엄마다!” 외치며 달려오던 시절, 일하는 엄마를 둔 친구들보다 늘 앞서서 집으로 가던 시절은 ‘안녕’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 걸까. “지금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어린이집에 가는 것뿐이야. 엄마는 너 데려다주고 가까운 회사에 가는 거고. 원장님이랑 6시까지 있으면 엄마가 곧장 달려가서 ‘딩동!’ 초인종을 누를 거야. 그러면 우린 어제랑 똑같이 만나지.” 아무리 설명을 해 보지만 아이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서 눈물만 뚝뚝 흘린다.
마음이 이상해
……
그날 밤, 어느 때보다도 아이를 더 꼭 껴안고 달래며 재웠다.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쓰다듬어 주어야 했으니까. 이제 고작 네 살 아이의 말이 마음에 파동을 남겼다. 엄마도 마음이 이상한 걸. 부디 시간이 잘 붙들어지길. 서로 단단해지는 시간이 되길. 아이가 잠이 들고 나서야 어린이집 가방에 있던 연락장(어린이집 수첩)을 꺼내 들었다. 이미 선생님들께는 출근 소식을 전해두었지만, 담임선생님께는 특별히 더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짧은 글을 적어 내려갔다. 다음날, 일찍 하원을 하고 놀이터에 들렀다. 평일 중 이렇게 친구들과 노는 것도 마지막인 듯하여. 아이가 친구들과 노는 틈을 타 벤치에 앉아서 수첩을 펼치니, 무려 두 페이지에 걸쳐 담임선생님이 쓴 긴 답글이 보인다.
… 아이에게도 좀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지금까지 해오시던 대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시고 정확하게 설명해 주시고, 약속도 철저히 지키시면 과정도 잘 견뎌 내리라 믿어요.
그런데 아이는 다 알고 있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친구들도 엄마 보고 싶지? 선생님도 선생님 아들 보고 싶어. 그래도 꾹 참는 거야. 그러면 엄마가 약속한 시간에 데리러 오셔.”라고 종종 말해주거든요. 이 말을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지요.
‘꾹 참는 거야’는 제 아들이 했던 말이에요. 왠지 그 말을 들을 때는 가슴이 짠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게 정답이더라고요. 이번 일을 겪으며 더 단단해지고 강해질 거예요. 그리고 이 스트레스가 앞으로 살아갈 날의 힘이 될 겁니다. 어머님도 기운 내시고 파이팅하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끝까지 잘 읽어 내려간다고 했는데 자꾸 글씨가 흐릿흐릿 허물어진다. 선생님의 손글씨 메모를 보다 그만 콧잔등이 시큰해져 눈물이 아롱아롱 맺혀버리고 말았다.
단 한 번, 네버랜드
소소하고 사사롭게
너의 말이 다가온 날들을 기억하며......
#만삭의 워킹맘 #솔직한 내 심정 #야호 일한다 #마음이 이상해 #꾹 참는 거야 #2014 #네 살 #윤‘s 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