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임 :

엄마 선생님 만나러 갑니다

by greensian

어린이집 보내도 될까?


만 두 돌을 넘긴 아이가 또래 친구에 관심을 보일 무렵. 어린이집을 보내도 될지 고민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좀 이른 것 같다며 걱정을 내비쳤다. 사실 불안한 건 엄마인 나였다. 아이를 제 3자인 누군가에게 맡기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 아이는 괜찮을까,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 리스트는 끝도 없이 길어졌다.


번아웃 증후군의 서막


그보다 더 심각한 건 극도로 지친 나의 심신 상태. 바닥까지 박박 긁어 담은 체력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마음 한 켠 빈 공간이 도무지 차오르지 않고 더 깊이 구덩이를 파듯 커져갔기 때문이다. 남편은 막 시작한 사업에 온 에너지를 쏟아부을 때였다. 육아 전담은 늘 그랬듯 온전히 엄마인 나의 몫이었다. 하루 중 내게 유일한 쉬는 시간은 아이의 낮잠 시간. 말로만 쉬는 시간일 뿐, 정말 온전한 ‘쉼’의 틈은 그리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잠이 들고 나면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허둥댔다. 쉬는 시간을 좀 더 이롭게 쓰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가 거센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런 다음 날엔 좀 더 효율적으로 쉬는 시간을 보내려고 미뤄둔 독서나 블로그 글쓰기를 해보지만 한창 집중할 무렵 기막힌 타이밍에 아이가 깨어버리는 탓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끼니를 준비하러 살림으로 손을 움직여야 하니 지속적으로 빈틈이 생기는 꼴이었다. 게다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하루 24시간은 완전히 ‘엄마로서의’ 일상으로 풀가동되기에 나의 소중한 ‘짬’은 허용될 리가 없다.


차오를 리 없는,

파고 팔수록 헛헛한 내면의 구덩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이런 기분일까.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생산성을 위해 ‘짬짬이’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그거 해서 뭐해?’라고 자조 섞인 비난을 해 대는 내면의 작은 목소리와 투쟁하는 일이기도 했다. ‘엄마’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그저 아무것도 아닌 ‘나’로 돌아가 무언가에 몰입하고 탐닉하는 시간은 잘 돌보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기 일쑤였고, 의욕의 불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부싯깃에 옮겨 붙은 작은 불씨가 불꽃이 되려면 끊임없이 세심하게 숨결을 불어넣어야 하듯, 커리어도 아니고 그 무엇을 이루기 위함도 아닌 일상의 짬은 내 스스로가 존재감을 부여하지 않으면 있다가도 사라지는 신기루나 마찬가지였다.


매일 반복되는 가사 육아 노동의 구조 안에서 아쉽게도 난 살림의 재미나 즐거움을 터득하진 못했다. 집안일은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누구 하나 노고를 알아주는 이도 없으며, 매우 자잘한 잔손이 가는 노동의 연속이었다. 난 ‘엄마니까, 해야 하니까‘라고 채찍질하는 자의식이 작동해 그저 열심히 할 뿐이었다. 그러나 점점 나 자신을 잃어버린 채 엄마라는 선한 가면을 쓰고 버텨온 시간의 대가로 마음은 깊은 수렁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거려보면 난 일종의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다. 체력은 바닥나고 피곤은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데다가 무기력한 마음 상태까지, 정말 ‘하얗게 불태웠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계속 이러다가는 나 자신이 닳아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에 직면한 것이다. 그때, 스스로 내린 처방전은 단 하나였다. 나를 위한 온전한 휴식, 충전, 그리고 무엇보다 방해받지 않는 자유 시간을 확보하는 일. 그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결국 내 역할을 대신해 줄 누군가에 SOS를 청하는 게 급선무였다.


엄마는 누가 돌봐주나요?

나 자신을 돌아보려면 ‘틈’이 필요했다


그렇게 사회의 보육시스템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제법 말을 알아듣고 어느 정도 말도 트였다는 판단 하에 아이를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가장 먼저 구립 어린이집을 알아보았지만 맞벌이도, 2자녀 이상의 가구도 아닌 우리 가족은 3순위에 해당되어 입소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대기 행렬 또한 이미 백의 자리에서 줄지 않았기에 일찌감치 마음을 접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을 돌며 상담을 다녔다. 이제 막 개원을 해서 새로운 교구를 갖추고 차량 지원도 해 주는 곳, 교구는 오래되었지만 경력이 오래되고 엄마 선생님이 상주하는 곳, 영유아만 전담으로 돌보는 곳 등 각 원마다 특징은 물론, 엄마인 내가 경험하는 느낌도 다 제각각 달랐다. 상담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아이를 사랑하는 경험 많은 선생님이 상주하는지(원장님 포함), 식단이 잘 나오고 먹거리는 안전한지, 또래는 반별로 고르게 있는지, 다니고 있는 친구들의 표정은 밝은 지였다. 교구와 활동 프로그램의 종류보다는 아이의 첫 사회 생활인만큼 어른(선생님)과 또래 친구들을 믿고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걱정덩어리 체크리스트를 점검한 끝에 최종적으로 아이를 길러 본 엄마이자 돌봄 경력이 많은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아이와 같은 나이의 친구는 물론 위아래로 한 살 차이 나는 또래가 적당히 있는 편인 데다, 원장님과 선생님이 수년간 호흡을 맞춰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어 좀 더 믿음이 갔다. 본격적으로 돌봄 기관을 알아보기 몇 달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아이랑 산책하러 나간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분이 있다.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엄마이자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함께 온 아이가 있어 물어보니, 둘째 출산 후 조리 중인 한 엄마의 첫 자녀의 등 하원을 돕고 있는 중에 잠시 놀이터에 들렀다고. 알고 보니, 그분이 내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린 어린이집의 원장님이었던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인연은 따로 있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집에 갑니다

첫날은 아이랑 함께 등원해 1시간 정도 어린이집 생활을 맛보기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 날엔 어린이집 문 앞에서 “윤이 안녕, 이따가 보자. 재미있게 놀고 있어. 엄마 1시간 뒤에 올게.” 인사를 하고 아이만 등원했다. 다행히(?!) 순조롭게 헤어졌다. 아마도 이때만 하더라도 아이는 헤어짐이 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남은 며칠도 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랐지만, 그건 너무 큰 욕심이란 걸 난 일찍이 예감했다. 셋째 날, 헤어질 때 전 날에 비해 조금 울먹거리긴 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1시간 뒤 아이를 데리러 가니, 중간에 조금 울었단다. 그날 밤, “내일도 가서 재미있게 놀자”하면 “네!”하던 녀석이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엄마의 촉은 정확했다. 등원 연습이 시작된 지 넷째 날부터 1주일간 아이는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울었다. 굵은 눈물방울을 와락 쏟아내며 엄마를 부르짖는 아이. 그런 아이를 부둥켜안고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는 선생님. 뒤이어 ‘쿵!’ 닫히는 문. 헤어짐에 익숙해지는 건 나도 아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같이 울지 말고 믿어주세요.


처음엔 ‘안녕!’하고 손을 흔들면서도 순간 먹먹함이 차올라 어린이집 문 앞에서 머뭇거리곤 했다. 저 문 너머로 아이의 울부짖음이 명징하게 들리니 쉬이 발을 뗄 수가 없던 것이다. 그렇다고 문을 열고 다시 개입할 수도 없는 노릇. 그때마다 흔들리는 나를 잡아준 건 경험 많은 원장님과 담임선생님이다. 아이가 울먹거려도 웃으면서 헤어지라고, 그리고 즐겁게 지내고 오리라는 믿음을 아이에게 주라고. 엄마가 느끼는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진다고. 잠깐의 순간이지만 엄마가 되레 헤어짐이 마음 아파서 어쩔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면 눈물의 이별식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만다. 찰나에도 아이는 기가 눌린 엄마의 품에 파고들어 떨어질 줄 모르게 되니 말이다. 그럴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이에게 응원과 믿음의 시그널을 보내주어야 한다. 생애 첫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오라고. 헤어지되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있어. 엄마 약속한 시간 맞춰서 올 게. 이따가 만나자.”

격렬한 적응기를 보내고 한두 달쯤 지났을 무렵, 어린이집 앞에 도착해 아이에게 물었다.


딩동, 누를까? - 응. 내가 내가.



키가 작아 손이 닿지 않는 아이를 품에 안아 번쩍 들어 올린다. 헤어지기 전, 나의 도움이 필요한 마지막 순간이다. ‘딩동’ 아이가 초인종을 누른다.

선생님이 나오니 아이가 건네는 말,


지지임!



선생님을 부르는 말이다. 아직 ‘ㅅ’ 발음이 어려운 세 살 배기에게 ‘선생님’은 어려운 단어인가 보다. 정확히 부르기는 어려운 말이지만, 아이 나름대로 선생님을 부르는 말 ‘지지임’이 귀엽다. ‘지지임’이 ‘선생님’이 될 날까지 또 얼마나 걸릴까. 그쯤엔 아이도 훌쩍 커 있겠지.

p.s 아이가 선생님을 ‘지지임’으로 부르며 어린이집 친구들과 친해지는 사이, 난 그렇게 갈구하던 나만의 자유 시간을 드디어 확보하게 되었다.


동대문에서 원단을 사다 만든 홈메이드 낮잠이불. (처음이자 마지막!)



낮잠 이불을 손수 만들어 보낸 뒤, 어린이집에서 첫 낮잠에 성공했던 날엔 카페에서 늘어지게 오후를 보냈다. 2년 하고도 2개월 만에 완벽하게 자유부인이 되던 순간의 감흥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면서 그 어떤 죄책감도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던 순도 100퍼센트, 아니 200퍼센트, 그 이상의 쉼의 여운이 꽤나 진지하고도 오래 이어졌기 때문이다.



플라워 아트 조형 수업 & 동화 일러스트 수업에서



그다음으로, 수분기 없이 바싹 메말라가던 일상에 생기 있는 ‘틈’을 주려고 플라워 아트 조형 수업과 동화 일러스트 수업을 택했다. 그간 돌보지 못했던 블로그를 매만지고, 방구석에 처박혀 책장을 펼치고 여기저기 흩어졌던 생각의 언어들도 다시금 모으기 시작했다. 아이 인생에 만난 첫 ‘지지임’, 그리고 이어지는 새로운 선생님과의 관계는 아이는 물론 내게도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이다.

어린이집에 갑니다.


단 한 번, 네버랜드

소소하고 사사롭게
너의 말이 다가온 날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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