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l Sep 25. 2017

인류는 언제부터 화분을 길렀을까

그리움과 사랑, 호기심과 과학이 만난 플랜테리어의 역사

통풍이 쉽지 않은 구조 때문인지 키우기 쉽다는 식물들도 우리 집에만 들이면 점차 시들해지다 가장 어린 바깥 잎부터 어두워지며 카키색으로, 갈색으로, 고동색으로 변해가기 일쑤였다. 정성을 쏟아야 한다니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대화도 나누고, 해가 드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창가로 자리를 옮겨 주어도 생명을 잃어가는 것을 도울 길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슬프다. 나 하나 믿고 우리 집에 와준 어린 나무는 빼빼 말라비틀어져 결국 쓰레기봉투로 향한다. 그래도 살려보겠다 매일 물을 준탓에 날파리 꼬인 흙은 봉투 안에 툭, 묵직하게 떨어져서는 솨- 소리 내어 쓰레기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그래, 살아 있는 생명은 집에 쉽게 들이지 말자.’ 그리 다짐하고서 꽃병에 꽃이라도 꽂아 두는 것에 만족하는데 화원이든 카페든 레스토랑이든, 누군가가 잘 가꾼 화분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이 녀석은 다를 거야. 이번엔 정말 괜찮을 거야.’ 죽이기도 어렵다는 주인아주머니의 설명에 두 눈을 반짝이며 얼마 전에도 식물을 하나 들였다. 작지만 선명한 초록 잎이 땡땡이 문양처럼 올망졸망 달려 있는 마오리 소포라. 건조하고 추운 날씨도 잘 견뎌내며 반 음지에서 자라는 뉴질랜드 야생의 나무다. 첫 일주일은 분갈이 탓에 몸살을 하는지 힘이 없어 보이더니, 2주 차에 어김없이 노란 잎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다시 죽는 건 아닌가 마음을 졸이며 창가로 밖으로 강아지 산책시키듯 하다 보니 이번엔 제대로 자리를 잡은 건지 4주가 지나 새 잎을 틔웠다. 마른 가지 같던 줄기에서 이렇게도 촉촉하고 보드라운 연둣빛이 피어나다니, 작고 여려도 열 손가락 다 있는 아기의 손과 같은 잎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들여다보게 하는 녀석은 정말이지 귀여워 죽겠다. 어깨와 입꼬리가 공중으로 떠오를 듯 함께 올라가며 세상 보람차고 행복하다. 이 맛에 식물을 기르나 보다.





이러한 즐거움을 인류는 언제부터 누려왔을까? 실내에서도 초록을 즐기는 것, 야생의 꽃과 나무를 화분에 옮겨 가꾸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명확한 사료가 부재하기 때문인데, 한 가지 의견은 그 효시를 인류에 ‘조경’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때로 보는 것이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자리한 고대 왕국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NebuchadnezzarII)가 메디아 왕의 딸이었던 왕비 아미티스(Amytis)를 위해지었다는 공중정원(Hanging Garden of Babylon)은 인류 최초의 조경으로 여겨진다. 기원전 605~562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정원에 대한 첫 기록은 기원전 280년 경, 사제였던 베로서스(Berossus)의 책 바빌로니아카(Babyloniaca)에서다. 


그에 따르면 아미티스는 일종의 정치적 정략결혼으로 녹음이 우거진 페르시아 북방의 산악지대인 메디아를 떠나 사막 위 석조 건물만이 가득한 바빌론에 왔다. 홀로 외딴곳에 떨어진 그녀는 이내 향수병을 앓기 시작하고, 왕은 그녀를 위해 삭막한 바빌론의 왕궁에 초록을 옮겨 심어 정원을 조성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이 외에도 에메테난키 지구라트, 이슈타르 문 등의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만들어 천년 전 황금시대의 바빌론을 재건하려 했던 왕이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 British Museum


바빌론의 공중정원 상상도 ⓒ The Guardian



사실 매단다는 의미의 ‘Hanging Garden’을 정확한 표현이라 보기는 어렵다. 식물을 매달아 놓았다기보다 일종의 루프톱 가든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흙을 구워 만든 기둥 위에 여러 단의 테라스를 조성하고, 각 기둥은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상부를 흙으로 메워 멀리서 보면 마치 식물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식물이 자라는 데 물과 바람, 햇빛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데 바빌론의 입지 상 물을 대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비가 부족한 기후인 이 곳에서 물은 펌프를 통해 가까운 유프라테스강에서 끌어다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니, 그 기술 역시 놀랍다. 때문에 당대의 가능한 모든 기술이 동원되었을 이 프로젝트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최근 고고학자들은 이라크에서 이 왕궁과 우물터로 추정되는 자리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정원의 실존을 입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원 전 79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프레스코화 / 폼페이



요즘과 같이 화분에 식물을 담아 키웠다는 기록은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에 등장한다. 무언가의 장식이었을 벽화와 조각에서 분에 담긴 식물이 나타났다. 물론 이전의 이집트, 인도, 중국의 문명에서도 화분을 사용했던 기록은 남아 있으나 실내로 그를 들여온 것은 이 때다. 물론 유흥을 즐기던 문화였던 만큼, 그 화분은 장식적인 요소가 극대화된 값비싼 대리석 소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learnnc.org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시작된 15~17세기의 대항해 시대는 아열대 기후의 화려한 식물들이 유럽으로 건너갔던 시기다. 유럽에는 없던 이국적인 식물들은 하나의 장식물 내지는 예술 작품처럼 여겨지며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 왕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남미와 유럽의 기후는 완연히 다르다 보니 야외에서 아열대 식물들을 기르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나마 칼바람은 피할 수 있는 실내로 들여 키우며 오늘날과 같이 화분을 가꾸는 형태로 발전하는데 자주 보면 정이 들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영국의 휴 플랫 경(Sir Hugh Platt)은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1652)이라는 책으로 당시의 영국에 존재했던 모든 꽃과 과실에 대한 백과사전을 펴내기도 했다.



1851년 영국이 만국박람회를 열기 위해 지었던 The Crystal Palace



이후 19세기로 이어진 기술의 발달은 보다 식물을 기르기 쉬운 환경을 조성했다. 판재 유리가 대량생산에 성공하자 이에 발맞추어 창문과 유리에 부과되던 세금이 폐지되었고 값은 이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에 상류층을 중심으로 집에 온실을 두기 시작했고, 이 풍조는 빠른 속도로 중산층까지 퍼져나갔다. 


또한 선진화된 난방이 가능해진 것도 이 시기다. 벽난로를 두거나 기름, 석탄을 사용한 난로에 의존했던 기존의 난방 방식은 한층 진화해 1883년 토마스 에디슨이 전기히터를, 1855년 러시아에서는 라디에이터를 발명했다. 이에 따라 층고가 높고 창이 넓은 집을 짓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해가 잘 들며 실내 공기의 질도 이전보다 개선되니, 보다 다양한 식물을 집안에 키우며 사람들은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 누군가의 사랑, 또 다른 누군가의 호기심이 더해지며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야외에서 실내로, 사람들의 일상으로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온 생명. 오늘 아침, 눈 앞에 태어난 작고 여린 초록의 새싹을 쓰다듬으며 그 길고 어려운 걸음 잘 했다고, 찾아와 주어 고맙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중얼 대화를 걸어본다.







※ 삼청동 코지홈과 공동 기획하여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 작지만 야문 매거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코지홈 블로그 blog.naver.com/cojeehome







YUL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가치는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습니다.

블로그 : blog.naver.com/yulscountry 
인스타그램 : @withtpot
이전 08화 커피나무 숲을 본 적이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