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를 재우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었던 공부
MBA를 도전하고자 마음먹고 난 이후 가장 큰 장벽인 시험, 이름하여 GMAT 시험이 있었다.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는 직장인들 중에 GMAT의 장벽에 가로막혀 이 부분에서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요즘에는 지원자 수가 줄어서 GRE 점수도 대신 받아주거나 아니면 심지어 아예 필요가 없다는 학교도 있었지만 웬만큼 괜찮은 수준의 학교들은 대부분GMAT 성적을 요구했다.
내가 지원하고자 했던 학교들을 추려서 지원일정을 살펴보니 파트타임 과정은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설명회 때 만났던 입학담당자는 나의 레쥬메를 보더니 이 정도 경력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 얼른 GMAT 점수부터 만들어 두라고 했다. 단기간으로 준비하면 된다고. 그리고 영어권이 아닌 곳의 학사학위를 갖고있는 경우엔 토플이나 아이엘츠 점수를 요구했다. 미루지 말고 항상 생각만 하는 건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험 등록을 먼저 하기로 했다. 예전에 한창 관심 있던 CFA 시험보단 등록비가 저렴했으나 그렇다고 아주 싼 가격도 역시 아니었다. 비용을 지불했으니 돈이 아깝지 않기 위해서라도 준비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설명회에 갔을 때 홍보부스에서 받아온 수많은 전단지들 사이에 끼어있던 GMAT학원에 연락을 했다. 알고 보니 회사에서 멀지 않은 근처라서, 퇴근 후 오기 편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강사들은 대부분 미국인이었는데 거의 미국이나 유럽의 명문 MBA 출신이었다. 7시 조금 전에 오면 실력 확인 진단 테스트를 할 수 있다길래 서둘러 일을 마무리한 이후 들러보기로 했다. 미국식 억양을 가진 동양인 남자가 나에게 시험지를 주면서 책상과 의자만으로도 꽉 찬 매우 작은 독방으로 안내했다.
나의 첫 GMAT 모의시험이었다. Verbal 영역은 지문을 2-3번 읽고 나서도 긴가민가한 부분이 많았고, 수학은 용어가 뭔지 하나도 몰라서 까만 건 글자요 하얀 건 종이인가 수준의 막막함이 몰려왔다. 도대체 이렇게 모르는 게 많다니, 나는 바보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막판에는 거의 왕창 찍고 나와야 했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고 대학원을 가고 싶다고 어렵게 한 결심에 비해 현실은 마냥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모두가 비웃는 것 같았다. 아니 이런 실력으로 무슨 MBA? 영어공부나 열심히 해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모의 고사 결과는 바로 다음 날 알려준다던데, 시험을 망친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학원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뭉개진 희망으로 몇 일동안은 그냥 포기할까란 생각도 들었다. 아무도 나에게 강요한 적 없는데, 굳이 뭐하러 시험 준비를 해야하나란 못난 자기합리화도 슬슬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런 시험때문에 10년간 해 온 고민을 단순하고 손쉽게 구겨버릴 수 없었다. 결국 학창 시절 공부해 온 나의 스타일대로 혼자서 부딪혀보기로 했다. 오프라인 학원보다 인터넷 강의가 시간활용도가 나을것 같아서 온라인 단기강좌에 등록했다. 문제집을 배송받아 하루에 풀어야 할 양대로 꾸준히 풀어보기로 했다. 일분 일초가 소중한 워킹맘으로서 학원에 왔다 갔다 하는 이동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평일에는 퇴근 후 아가를 재우고 나서야 비로소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아기가 잠을 안 자면 언제 저 문제들을 다 풀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한손으로는 문제집을, 다른 한손으론 아기를 토닥토닥 재우다가 같이 잠들기도 했다. 아기가 겨우 잠들고 나면 밤 10-11시쯤이었는데 그때부터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온몸에 기운도 없고 잠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비타민, 홍삼엑기스를 챙겨먹고, 커피를 들이붓고 졸음을 쫓아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전략을 바꿔보기로 했다. 틈새 시간을 활용하려고 출퇴근길에는 인강을 보고, 점심시간에도 밥을 간단히 해결하고 회사 근처 카페에 앉아서 문제집을 풀었다. 주말은 되도록이면 아이를 시부모님께 맡기고 도서관에 앉아 부족한 공부량을 채워보려고 했다. 한창 예쁜 아가를 두고 나와서 책을 잡고 있자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왜 이걸 조금 더 젊은 싱글이었을 때, 시간 많았을 때 하지 않았을까, 아기 엄마가 되고 나서 하려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하면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었다. 나이 먹어서 너무 미련한 시도를 하는 게 아닐까 그냥 포기해버릴까 싶다가도 또다시 내년에 대학원 설명회를 전전하며 부러워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동안 열심히 공부한 끝에 GMAT시험을 봤다.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시험을 보고 나니 온몸에 힘이 풀렸다. 결과점수를 보니 남들이 부러워할한 초고득점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내가 목표했던 대학원 평균점수 수준으로 지원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바로 에세이 준비로 돌입했다. 시험 준비보단 에세이 준비가 훨씬 수월했던 것 같다. 그동안의 커리어는 어땠는지, 그리고 MBA 이후에는 어떤 진로를 생각하는지, 내가 항상 고민하던 주제였기에 평소의 생각들을 담아냈다. 10년 넘게 한 업종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동안의 커리어를 정리하는 겸 MBA 하면서 레버리지 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고 싶기도 했고 인생을 길게 보면서 어떤 방향으로 살고 싶은지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그렇게 나는 준비를 끝내고 원하던 학교 두 곳에서 합격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난 그때 미처 몰랐다. 지맷 공부에 비해 앞으로 훨씬 더 힘든 학교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