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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16. 2023

백수탈출 성공한 2024년의 나에게

#18. 직장인이 된,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돈 버느라 고생 중일 2024년의 나, 잘 지내니? 마음 붙일 운동은 다시 찾았는지, 머리 쥐어 뜯으며 소설은 계속 쓰고 있는지 궁금하네. 물어볼 것도 없이 밥은 잘 먹고 다닐 것이어서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갑자기 사람이 변하지는 않았을 거라 믿고, 2023년 백수였던 내가 2024년의 너에게 편지를 보내둔다.


예상컨대 너는 그럭저럭 일을 잘하고 있을 것이다. 동료들과도 친해졌을 것이고, 월급 받는 즐거움에도 익숙해졌을 것인데, 그러다가도 문득 ‘아~ 작년에 좀 더 놀다 취업할 걸’ 이라던지 ‘뭘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날렸지?’ 하고 억울한 마음이 불쑥 밀려올 것이다. 물론 ‘그때는 그때 나름 열심히 살았지 뭐’ 라며 곧 잊어버리고 오늘 저녁 야채곱창을 먹을지 김치볶음밥을 먹을지 고민하겠지만. 조금 여유가 있는 지금 ‘그때 나름’의 일들을 정리해 두면 기억력이 영 나쁜 너도 나를 탓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주에 ‘더 행복한 백수생활을 돕는 5가지 팁’을 썼다. 첫 번째 팁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자’여서 최측근이 뒤집어졌었는데 기억하겠지? 웃기려고 쓴 글이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나의 백수생활은 실로 그런 조언이 필요한 수준이었다. 어딘가 나가지 않으면 세수조차 귀찮아하는 날들. 얼굴이 번들번들한 채로 하루에 8시간씩 게임을 하는 날들이 많았다. 플레이타임이 100시간 넘는 게임이 서넛 될걸. 그중에서도 2023년 출시한 젤다의 전설은 250시간이나 했다. 한 달만 더 놀다 취업?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걸 강조해둔다.


그렇게 게임에 시간을 들이부었는데도 일주일에 절반 이상은 세수를 해야만 했다는 것도 기억해라. 특히, 백수 되고 첫 한두 달은 매일 약속이 있었다. 그때 만난 친구들한테 잘하고 있지? 다들 이참에 푹 쉬라고,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반년쯤 쉬어도 커리어 공백으로 여겨지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네가 지금 회사생활을 잘하고 있다면 그 말이 사실인 거다. 그들 대부분이 회사에서 사귄 친구라는 것도 재밌는 점이다. 지금 함께하는 동료들에게도 살갑게 다가가길. 서로 돕고 지내길. 돈 빌려달라는 것만 아니면 뭐.


특히 N에게는 맛있는 밥을 사야 한다. 내가 백수였던 동안 N이 바빴고 자주 못 만났는데, 생일 선물 겸 오마카세를 사주겠다는 N에게 “내가 이제 백수라 한심해 보여서 안 놀아주는 줄 알았어” 어쩌구저쩌구 했었지. 그때 N이 “만날때마다 그 말 할거면 제발 취직해 ㅡㅡ” 했고. 멘탈이 맨틀을 뚫고 들어가기 직전에 정신 차리게 된 거니까 N에게 고마워하자.


너는 백수였던 나를 부러워하겠지만, 그건 네가 기억력이 나쁜 탓이다.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몸이야 편했지. 그런데 마음까지 편한 날은 많지 않았다. 영원히 이렇게 살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 어쩌면 걱정에 빠져 있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시도해본 걸지 모르겠다. 돌아보면 그게 나의 큰 장점이다. 걱정을 덜기 위해 뭐라도 해보려 몸부림치는 것. 너도 그 장점을 지키고 있다면 좋겠는데.


그동안 내가 시도해본 것 중 가장 열심이었던 건 (게임 빼고는) 소설 쓰기다. 나는 소설 수업을 4개 들었고, 길고 짧은 습작을 여럿 했고, 단편도 두 편 썼다. 두 편이나? 두 편밖에?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도 계속 쓸 거니까.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다면 너도 계속 읽고 쓰면 좋겠다. 하루에 한 문단, 아니 한 줄이라도 쓰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는데. 물론 지금도 못하는 거지만 너는 나보다 낫겠지.


혹시 회사 밖에서 글을 쓰는 게 귀찮아졌냐? 그래도 써라. 계속. 당장 잘 쓰지 않아도 괜찮다. 얼마 전 12주짜리 소설 수업 끝나고 감상을 한 마디씩 주고받을 때 나는 이런 말을 했었지.


“저는 이게 세 번째 수강한 수업인데요, 사실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땐 ‘이걸 계속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저에게는 아프게 느껴지는 피드백이 있었거든요. 재능이 없는데 괜한 도전을 했나 싶었고요. 하지만 혹시 그때의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시다면, 재능 운운하면서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쓰는 소설이 별로고, 다른 분들 작품이랑 내 것을 비교하게 되고, 재능이 없다고 느끼고,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계속 쓰면 되죠. 10년쯤 쓰면 지금보다 잘 쓰겠죠.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여러분한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사실은 저 자신에게 건네는 다짐이에요.”


나도 너도 질투 심하고 자존심 강한 사람일 테니 쉬운 일은 아니겠지. 근데 정말로, 10년쯤 쓰면 아무튼 지금보다 잘 쓰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지 말고 자꾸 써 보자. 수업도 계속 들을 거고 이번에 합평 스터디도 생겼으니까. 문우들한테 질투하지 말고 피드백에 자존심 세우지 않길 바란다. 만약에 그런 마음 때문에 무언가 실수했다면 꼭 사과하고.


그리고 회사생활 열심히 해라. 말하지 않아도 잘하겠지만, 너도 알지? 네가 새로운 일들, 필라테스든 소설 쓰기든, 그런 것에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건 회사에서 일을 하는 덕분이다. 게다가 회사에 다닌다는 건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뿌듯함, 자기효능감이 있다. 백수인 나는 그걸 느끼지 못해서 힘들었는데 너는 다르겠지.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이직 알아봐라. 파이팅.


조만간 너에게 연봉협상 시기가 다가올지도 모르겠는데, 쫄지 말자. 네 직무의 연봉 상한선 같은 거 신경쓰지 말자. 동료들과 후배들 사이에 좋은 선례를 남기자. 연봉협상 때 ‘지금도 많이 받고 계시다’는 말 들을 수 있거든? 잘 반박해라. 너는 그래도 괜찮다. 나는 못하지만, 너는 장기 전략을 세우는 역량만 좀 더 키우면 리더가 되어도 괜찮을 거다. 그리고 챗GPT 꼭 배워두고.


이제 슬슬 편지를 마무리해야겠다. 이 편지는 2023년의 나에게서 최초로 시작되었고, 이왕이면 이걸 받는 너에게 행운을 주면 좋겠다. 답장을 하고 싶다면 2025년으로 보내길.

아 마지막으로! 저녁 먹고 바로 눕지 말고, 밤 10시 넘어서 배고프면 참고, 운동 일주일에 두 번은 꼭 가라. 다 까먹어도 이건 기억해라. 건강이 최고다!


2023년 여름, 말복을 지나며,

여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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