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세계 27 거원과 바다표범

십만 년 전에, 키가 4미터 즘 되는 거대한 영장류가 살았대.

by 류인환

지금으로부터 십만 년 전에, 키가 4미터 즘 되는 거대한 영장류가 살았대. 그럼 인류와 같이 살았단 말이야. 왜 뜬금없이 원숭이 타령이냐고. 내가 그걸 꿈에서 봤거든. 나도 몰랐지. 그런데 오늘 뉴스에서 그 화석 발굴 얘기를 하니까 딱 꿈이 떠오른 거야. 기간토피테쿠스. 중국인들은 그걸 거원巨猿이라고 부른다더라. 꿈에서 거인 원숭이들이 사람들을 죽이는 걸 보았거든. 어쩌면 정말 과거에 그런 일들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아니면 평행세계라는 거 있잖아. 그곳에선 정말 그런 세상이 있을지 모르지. 근데 유리씨 어딜 갔길래 계속 자리를 비우는거야. 출근은 했을 걸. 자리에 노트북 있잖아. 내가 어제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퇴근하는 걸 봤거든. 사실 꿈에 유리씨가 나왔거든. 뭐 그냥 같이 도망다니고 그러다 깼어. 그것보다 이 상처 있잖아. 되게 신기해. 그 꿈에서 말야. 아, 잠깐만 차장님이 나 부른다.


야. 내가 방금 뭘 봤는지 알아 그 이틀 전 사고 있잖아. 사거리. 거기에 있어. 유리. 진짜라니까. 이리와 봐. 아이보리 셔츠 보이지. 그 남자가 그날 이걸 입고 왔거든. 몸 모양만 봐도 알잖아. 걸음걸이도. 진짜라니까. 같이 일한 세월이 몇 년인데. 그 정도는 알아봐. 어떤 차가 신호등을 박아. 운전자는 죽었나 봐. 뒷좌석에 꼬마가 있었어. 안됐지. 일단, 그것보다 여기서부터야. 신호등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쉽사리 못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유리 혼자 뛰어가잖아. 일부러 치이려 뛰어가는 것처럼. 그런데 사람들이 따라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바람에 차들아 멈춰 서고 난리야. 보고할 거냐고? 됐어. 일만 복잡해지지. 내가 피곤해져서 그래. 고객들 챙기기도 바빠. 내가 말하는 투가 유리씨 같다고? 무슨 소리야. 화면이나 봐. 도로에 차들이 꽉 막혀서 사람들이 갇혔어. 경찰, 구조대원 오고 난리 났지. 근데 유리가. 그냥 서 있어. 동상처럼. 그러다 감시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들어. 잘 보이진 않지만 웃는 거 같지 않니.


다시 잠깐 이리와 봐. 여기 여자 보이지. 보라색 옷. 횡단보도 반대편에 쓰러져 있잖아. 차에 치였어. 이 사람 미쳤나 봐. 이걸 어떡해. 여기부터 봐. 사고가 난 지 두 시간 흐른 뒤. 새 신호등이 세워지고 경찰들은 떠났는데, 유리가 여전히 차로 중간에 서있어. 무슨 악령 씐 것처럼. 옆에서 사람들이 말을 걸어도 움직이질 않아. 그러다 맞은편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유리를 보고 파란 불인 줄 알았는지, 아니면 뭐에 홀린 것처럼 무심코 유리 쪽으로 걸어오다 차에 치인 거야. 또 난리가 났지. 여기서부터 유리가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아. 실종신고 좀 부탁해. 혹시 모르잖아.


그 여자. 살아 있는데. 아직은 의식불명이래. 내가 자꾸 신경이 쓰이더라. 어디서 본 것 같아서. 그래서 알아봤는데 다행히 아는 사람은 아니었어. 이름이 특이해. 미지래, 미지. 그런데. 미안한데, 나 대신 이것 마저 처리해줄 수 있을까. 나 그 여자 있는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모르겠어. 그래야 할 것 같아.




FullSizeRender 2.jpg 미지는 의식을 잃기 직전, 유리와 눈을 마주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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