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세계 맺음말

꿈에서 깬다는 것. 그것이 어디로부터 어느 곳으로 돌아온다는 말인지.

by 류인환

보랏빛


사 년 전 초여름 퇴근길. 공기는 환기될 정도로 차갑지만 춥지는 않았어. 해는 아직 지지 않았지. 푸른 등과 붉은 등을 휘저은 듯. 도시는 붉은 보라색. 이곳은 사거리의 횡단보도. 나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어. 진회색 아스팔트 위 자동차들은 보랏빛 장막이 되어 횡단보도 건너편을 숨겼어. 그때 문득 의문이 들었어. 신호가 바뀌고 커튼이 열리면, 횡단보도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까.


‘신호가 바뀌고 건너편을 가렸던 차들이 사라졌을 때. 그는 누군가를 본다. 그들은 횡단보도에서 낯선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이후 그들은 불가항적으로 서로의 꿈에 나타나게 되고. 점점 깊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꿈속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들며 불안해졌다. 꿈속의 그녀는 허상일까 현신일까. 그는 꿈을 믿지도, 현신을 확인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 장면을 바탕으로 꿈과 관련된 소설을 쓰기로 했어.






꿈의 세계


우리는 살아있기에 현실을 살아. 그렇다면 꿈이라는 것. 그 시간에 우리는 세상을 살지 않는 걸까. 잠을 자는 동안에도 심장은 여전히 날뛰고, 눈은 번뜩임에도 말야. 몸과 정신은 휴식도 공백도 없어. 우리가 휴식이라 말하는 것은 사실 동작의 전환일 뿐이야. 죽음 이전까지는. 현실 그리고 꿈의 순간에도 우리는 삶을 살아가.


꿈의 세계. 늘 모순이야. 시간이 정확하지 않고,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비현실적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 우리의 정신과 감각은 그곳이 현실이라 믿어. 그래서 믿음 역시 믿을 수 없어. 여기 이곳. 우리가 현실이라 믿는 곳. 정말 시간이 정확하고 인과관계가 분명할까. 혹시 지금까지 살아왔다 믿는 이곳. 다른 세계에서 눈뜨면 말도 안되는 꿈이었다 말하게 되진 않을까. 드문드문 기억나는 파편을 토대로 너는 말할지 몰라. 꿈에서 버스라는 짐승 몸 안으로 들어가 먼 거리를 이동했다. 혹은 그곳엔 우리가 멸종했다. 대신 인간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래서 꿈과 현실 중 어떤 것도 현실이라 단정할 수 없어.


앞서 꿈도 삶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우리는 현실과 꿈, 두가지 세계를 동시에 살고 있는거야. 그런데 꿈은 늘 같은 세계이 아니야. 그 중엔 지금 이곳과 먼지만큼만 다른 세상도 있으며, 성운만큼 다른 세상도 있어. 그 스펙트럼을 따르면, 우리는 셀 수 없는 세계를 동시에 살고 있는 거야.



꿈과 미신


꿈은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종을 구분할 수 있어. 예를 들면. 내가 지금 당신을 알고있어. 내 꿈에 당신이 등장했으며 함께 그곳을 살았다면. 나와 당신은 이곳과 그곳. 두 세계를 같이 살았다 할 수 있어. 그리고 세계의 관점에서, 두 세계는 나와 당신을 통해서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어. 나 그리고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꿈속 미지인의 만남 역시 나를 매개로 두 세계가 연결된거야.


반면에 내가 없는, 타인들이 등장하는 꿈은 어떤 의미가 될까. 그 세계의 나는 관찰자이야. 세상에 관여하지도, 보이지도 않지만 존재하는 것. 그것들을 우리는 영적인 존재 혹은 유령이라 불러.


타인의 시점으로 삶을 사는 경우도 있을거야. 그 타인은 ‘나’야. 내가 온전히 제어 가능한 삶이라면 그는 또 다른 세계의 나일 거야. 다른 세상에서 나의 일생. 이것은 전생이야. 이 소설의 전생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야. 다른 세계야.


내가 온전히 제어할 수 없는 타인, 그 세계의 나는 무엇인가. 타인의 몸에 속박된 인격이야. 하나의 몸. 다수의 인격. 다중인격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질병일까. 꿈의 관점에서, 그들은 실재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어떤 세계에선 스스로 살고 있으며, 어떤 세계에선 타인의 몸 안에서 동면하고 있을지 몰라. 삶은 하나이고 세계는 다수야. 우리는 둥지를 이동하며 사는 중이야. 그리고 그 행위. 몸 안으로 의식이 이동하는 것은 빙의라 할 수 있어. 소설에선 그 속의 인격 중 승리하는 자가 몸의 주인이 된다고 보았어.


인격들의 전쟁은 어디서 이루어질까. 몸의 가장 깊숙한 곳. 세포에서 이루어질거야. 자연법칙이 통하지 않는 소립자의 세계처럼. 그 가장 근원적인 곳에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질지 몰라. 마치 자각몽처럼. 각자의 존재들이 의식으로 법칙을 만들어가는 공간.


유리의 체내에선 누가 주인이 되었을까.


유리는 정말 꿈을 통해 세계를 넘나든 것일까. 아니면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겨 살인마가 될 운명일까. 어쩌면 유리는 단지 정신분열증을 겪는 환자일지 몰라. 미지는. 세계를 초월한 유리의 연인일까. 아니면 유리에게 영혼을 뺏긴 희생자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유리의 인격 중 하나일 뿐일까.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지. 꿈에서 깬다는 것.

그것이 어디로부터 어느 곳으로 돌아온다는 말인지.



미지의세계_표지_190720 복사본.jpg


부크크

교보문고

예스24/알라딘/11번가



미지의세계_표지_190708.png
스크린샷 2019-07-07 오후 9.37.23.png
스크린샷 2019-07-07 오후 9.37.28.png
스크린샷 2019-07-07 오후 9.37.35.png
스크린샷 2019-07-07 오후 9.37.39.png
스크린샷 2019-07-07 오후 9.37.43.png
스크린샷 2019-07-07 오후 9.37.48.png
스크린샷 2019-07-07 오후 9.37.51.png
스크린샷 2019-07-07 오후 9.37.55.png
스크린샷 2019-07-07 오후 9.37.59.png
스크린샷 2019-07-07 오후 9.38.03.png
스크린샷 2019-07-07 오후 9.38.07.pn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