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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환 Jul 27. 2019

따개비 - 1 해저 성곽

한강을 건너던 열차는 경사진 철로를 따라 강 아래로 침잠했다.

따개비

"당신은 여전히 과거에 살고, 나는 현재를 살고 있군요."




 한강을 건너던 열차는 경사진 철로를 따라 강 아래로 침잠했다. 강변을 걷던 사람들 중 누군가 외쳤다. 열차가 수면 아래로 빠져버렸다고. 그는 주위 사람들을 붙잡고 철로를 가리켰지만, 그들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고개를 내젓고 돌아섰다. 철로는 어느새 수평으로 이어졌고 수면에는 물결도 일지 않는다. 봄날의 햇살이 밀려드는 한강은 평화롭다. 행인을 붙잡았던 그 누군가는 철로를 오랫동안 바라보다 눈을 비비고는 터벅터벅 돌아섰다.




 눈을 뜨자 옥색 물결 빛이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눈곱을 훔쳐내고 손목시계를 보았다. 강물  물결의  그림자가 들추어낸 손목 위로 잔잔한 그물망을 그려내고 있다. 시곗바늘은 3시를 가리킨다. 고개를 돌려 창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강물의 색조는 흐린 하늘 같다. 그래서 지금 한강 아래로 열차가 침잠하는 중이라기보다는 하늘을 유영하는 기분이 든다. 수면 아래로 길게 내려온 햇살 빛은  구름 사이로 새는 빛살처럼 물속을 밝게 비추었다.  멀리 진주 다발 같은 물거품과 새처럼 비행하는 수초 조각이 보인다.


 수압 때문일까. 몸이 무겁다. 두 팔을 허공에 뻗고 길게 기지개를 켰다. 우득- 소리와 함께 개운한 기분이 드는 반면, 코로 들이마신 실내 공기는 마른 수건처럼 건조하다. 물을 마셨으면 좋겠다. 창가에 얼굴을 대고 수면 너머를 올려다보았다. 일렁이는 물결 천장 위로 넘실거리며 춤을 추는 대교가 보인다. 검은 철제 뼈다귀로 이루어진 대교의 모습은 뱀의 춤사위 같다.


 그래. 지금 수면 위 거대한 뱀 하나가 해골의 몰골로 유영하는 중이다. 마치 지상의 은하수처럼 돌과 철로 이루어진 그 뱀은 강 아래로 침잠하는 열차 그리고 그 안에 갇힌 나를 지켜보는 중이다. 고개를 돌려 실내를 훑어보았다. 열차 안에는 좌석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지금 열차가 한강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 강바닥을 향해 끝없이 질주한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태연하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어쩌면 나와 그들은 이미 죽어버렸고 같이 숨 멎은 열차와 함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중일지 모른다.







 강의 바닥이 보인다!


 흙바닥 중앙의 검붉은 점. 처음엔 그것을 작은 따개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차가 다가갈수록 갑각류의 몸은 커져갔다. 그리고 도로와 지붕들이 얽힌 마을이 되었다. 원형의 해저 산맥이 성곽처럼 주변을 둘러싼 마을.


 유리창에 얼굴을 묻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전경은 마치 2차원의 지도 같다. 마을을 원형으로 둘러싼 산맥은 흑백의 점묘화로 그려졌고 그 산맥의 동서남북에는 글씨가 적혔다. 뱀의 춤사위 같은 거대한 글씨는 아마도 페루의 나스카 라인처럼 열차를 타고 지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문일 것이라 짐작했다. 곧 우리는 그 마을에 착륙할 예정이다.


 수직으로 떨어진 철로는 지면에 맞닿기 직전 약 3미터 간격을 둔 채 부드럽게 멈췄다. 칙- 하는 기다란 압력 소리와 함께 창문이 활짝 열리자, 사람들은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들은 달에 착륙한 인간처럼 허공을 걷듯 태연히 지면에 착륙하고는 제 짐을 끌며 갈 길을 갔다. 나도 몸을 던졌다. 지면에 발이 닫자 덜컹- 하는 물컹한 울림과 함께 흙먼지가 자욱하게 부풀다 해류에 쓸려 사라졌다.


 분명 이곳은 강 아래 세상.


 하지만 숨 쉬는 것엔 문제가 없다. 옷마저 젖지 않았다. 강물 대신 이곳을 메운 공기는 장마철처럼 후덥지근하고 묵직하다. 아마도 이곳 공기가 너무 무거워 강물을 층 위로 밀어 올린 듯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꽤 느리다. 무중력의 공간처럼 그들의 걸음과 걸음 사이가 붕 떠있다. 이 먼 곳까지 기어코 흘러든 햇살은 옅은 커튼이 되어 유영하는 그들 사이를 간간히 일렁이며 비추는 중이다. 북극의 오로라처럼.




 나는 여행하듯 이곳을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을을 둘러싼 산맥은 생각보다 낮아서 금세 올라설 수 있을 것 같다. 이끼와 해초로 이루어진 산맥 정상에서 마을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자전거나 자동차 같은 건 없다. 대신 수십 대의 지상 열차가 거미줄 같은 선로를 따라 마을 곳곳을 누비는 중이다. 열차의 구조는 캄보디아의 대나무 열차처럼 벽체가 없고 바퀴를 단 단출한 차체 위로 넓은 판재를 얹은 것이 전부다. 이곳 세상은 모든 것이 부유하듯 느렸고 열차의 속도 또한 뜀박질을 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절벽 아래 열차 하나가 보인다. 나는 산맥 정상에서 몸을 던져 유영하듯 열차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판자에 실린 컨테이너 박스의 문고리를 낚아채 올라탔다. 온몸에 밀도감 있는 공기가 부딪혀 밀려나는 느낌이 꼭 목욕탕에 몸을 담갔을 때 같았다. 다리를 선로로 뻗은 채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 시계는 고장 난 듯하다. 열차에 얹힌 컨테이너 안에는 휘발유가 가득 든 통이 빼곡히 쌓여있었다. 방금 전 문고리를 잡아당겨서 그런지 컨테이너 철문이 녹슨 가루를 흩뿌리며 곧 떨어져 나갔다. 그 바람에 컨테이너 속 휘발유 통이 선로 바깥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다. 불이라도 붙으면 큰일일 텐데.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 때, 먹구름이 몰려온 듯 마을 전체가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려나.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형체가 하늘을 가렸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숨 멎은 채 먹구름을 주시했다.




 아득한 수면에서부터 거대한 문어가 내려오고 있다!


 그것이 문어라는 걸 알아채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거대한 몸집은 먹구름처럼 퍼져있어 형체를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려야 했다. 괴물은 세 개의 눈과 여덟 개의 다리를 뱀처럼 꿈틀대며 하강한다. 수면에서 내리는 햇살을 일식처럼 가린 괴물의 형상은 꼭 움직이는 거대한 글자 같다. 지면에 새겨진 거대한 상형문자처럼 문어의 다리는 매섭게 알 수 없는 단어를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그 단어는 이곳 마을 사람들의 단어로 '종말'을 뜻할지도 모른다. 서둘러 열차에서 뛰어내려 사람들을 찾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마을 중앙회관에 모여 수군거리고 있다. 곧 저것이 내려와 마을을 뒤덮을 것이라며 발을 동동 구르며.




 그때, 누군가 내 손목을 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갈색머리를 곱게 빗어 뒤로 묶어 내린 소녀는 조그마한 턱을 당기고 눈을 진중하게 추켜올렸다. 그리고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고는 쉿- 하는 휘파람 소리를 냈다. 나도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갖다 대었다. 그녀는 얼른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을 둘러싼 산맥 너머로 가는 비밀통로가 있다고. 이곳을 내려올 때 보았던 도시 전경을 떠올렸다. 원형의 산맥 동서남북마다 거대한 팻말이 걸려있었지. 소녀는 자신이 산맥 너머 다른 마을에 살고 있다며, 그곳으로 떠나자 말했다.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여린 손아귀로 내 팔을 힘껏 잡고는 밀도 있는 공기를 천천히 해쳐 나갔다.


 손을 잡아끌며 앞장서는 그녀 뒷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묶은 갈색 머리카락이 매끈한 꼬리처럼 좌우로 흔들거린다. 그 사이로 가는 목덜미가 드러났다가 가려졌다를 반복한다. 그녀가 걸친 긴 옥색 원피스엔 청색과 백색이 뒤섞인 물방울무늬가 비정형으로 나열되었는데, 실제 물거품을 그대로 박제한 듯하다. 갈색 머릿결 아래 살짝 드러난 등덜미에선 조그만 날개뼈가 걸음걸음마다 움틀거렸고 내 손을 힘껏 잡은 그녀의 팔에서는 잔잔한 근육이 움츠러들었다 펴졌다를 반복한다. 그 모습은 마치 시계추를 흔드는 최면 같아서 나는 어찌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뒤를 황급히 따라 걷고 있다.



 마을 외곽에 거의 도착했을 때,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나와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문어의 긴 다리 하나가 지면에 닿았다. 이어지는 굉음에 지면은 흙먼지를 내뿜으며 바스러졌다. 나뒹구는 휘발유 통 때문일까. 도시는 금세 불길에 휩싸였고 붉어진 괴물의 다리는 꽈리를 트는 뱀의 몸짓처럼 지면을 더욱 고집스레 뭉개었다.


 그녀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았다. 동북쪽 산맥에 숨겨진 터널이 있다고 했다. 그곳을 넘어가면 동쪽 성곽을 넘어갈 수 있다고. 나는 다시 그녀의 뒷모습을 좇으며 산맥 앞에 도착했다.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산호와 해초로 이루어진 눈앞의 산맥에는 강물로 이루어진 장벽이 있다. 마을은 강물 바닥에 맺힌 기포처럼 위태롭게 공기막을 지탱하고 있었다.


 장벽에 손을 뻗으려 하자 그녀가 재빨리 손목을 잡아챘다. 만약 장벽이 터지면 이곳의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대신 그녀의 말대로 장벽 근처에 작은 터널을 발견했다. 이곳은 오래전 버려진 곳 같다. 이곳이 유일한 외부와의 통로라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폐쇄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바깥세상은 어떤 곳이냐고. 그녀는 한동안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 대답했다. 사실 자신도 이곳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고.


 그 말에 화가 치밀었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당장 그녀 말고는 이곳에서 의지할 사람이 없다. 다른 방도도 없다. 마을은 이제 화산처럼 타오르고 있다. 나와 같이 열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그곳에 갇혀있겠지.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알겠다고 답했다. 그녀를 믿어선 안된다고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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