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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환 Aug 16. 2019

따개비 - 2 과거의 삶

그녀는 살짝 눈을 감았다 뜨고는 아마 주어진 수명을 훨씬 넘었다 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서 서로의 발소리, 숨과 손길에 의지해 한 걸음 씩 전진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고 각자 다른 손으로는 좁은 터널의 벽을 더듬는 중이다. 그녀는 걷는 동안 쉴 새 없이 떠들었는데, 목소리는 떨리고 억양은 들쭉날쭉했다. 그녀 손바닥의 온기, 저벅거리는 발소리, 재잘대는 목소리가 동굴을 가득 채웠다. 눈앞에 머릿결이 흩날리던 그녀 뒷모습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밀려드는 그녀의 존재감을 흘려보내려 노력했다. 그녀를 믿어선 안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금 전 거짓말에 치밀었던 화와 모멸감을 되새기며 이 마을에 대한 걸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녀가 말하기론 이곳은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 이방인을 단번에 알 수 있다고 했다. 오늘 마을 사람들은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철로를 따라 은하수의 뱀이 지상으로 떨어져 숨 멎었고 뱀 비늘 사이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것. 마을 사람들은 하늘을 다스리는 뱀이 지상으로 떨어진 이유를 놓고 말싸움을 벌였다. 뱀 비늘에서 튀어나온 외계인은 또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누구는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누구는 그들을 붙잡아 하늘 세상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왜 나를 구해준 것이냐 물어보았다. 그녀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당신이 사는 세상으로 따라가겠다고. 이곳의 삶은 너무나 무미건조해서, 마치 멈춰진 세상을 사는 기분이라 말했다. 당시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저 알겠다 말하고는 동굴 속 작은 점으로 빛나는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물론 나 역시 바깥세상으로 가는 길은 모른다. 그녀는 나와 함께 터널을 통과하면 이곳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결국 그녀 역시 다른 마을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내가 그들을 구원하거나 멸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난 그저 외지에 떨어졌다. 영문도 모른채 그녀 손아귀에 이끌려 표류할 뿐이다. 그들에게 보일 어떤 마술도구도 없다. 곧 실망하고 경멸할 그녀의 표정이 눈에 그려졌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출구와 가까워질수록 햇살이 밀려든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소녀의 얼굴엔 검댕이 가득 묻었다. 강의 물결 같던 옥색 원피스는 흙색이 되었다. 곱게 빗은 갈색 머리는 어느새 산발로 풀어졌다. 그녀의 보얀 팔목에 말린 해초로 엮은 듯한 적갈색 머리끈이 걸려있다. 후덥지근한 동굴을 걷는 동안 묶은 머리를 풀어헤친 모양이다. 그렇다면 동굴 속에서 맡았던 묵직한 체취는 그녀 냄새였다. 


 언젠가 양조장에서 마셨던 그 묵직한 포도주가 떠올랐다. 한 모금을 들이켜자 입 안에 내려친 벼락. 그 감각은 자비 없는 햇살에 물을 구걸하는 과실의 마른 진액 그 자체다. 양조장 주인에게 이런 맛은 처음 느껴본다고 감탄했다. 그는 입가를 해맑게 벌리고는 주머니에서 포도알 하나를 꺼내 보이며 알려주었다. 풍미의 비결은 과실의 고통이라고. 껍질이 일그러질 정도로 물을 갈구했던 포도알은 주름지고 흉측했다.


 짐승의 뱃속처럼 습하고 기분 나빴던 동굴. 그녀의 체취를 맡은 순간부터 다르게 보였다. 동굴이 열린 입술을 통해 들어온 그녀의 목구멍 안 같다는 것. 더운 증기는 그녀의 땀과 체온 같았고 내 몸을 뒤덮은 검댕은 그녀의 비릿한 웃음과 거짓말, 그리고 알 수 없는 비밀들의 부산물 같았다. 그런 상상은 혹시 그녀가 소녀의 탈을 쓴 뱀이며, 이미 나는 그녀 뒤꽁무니를 쫓을 때부터 최면에 걸려버려서 제 의지로 뱀의 입안으로 들어선 것일지 모른다는 상상을 만들어냈다.




 터널의 끝자락에서 녹슨 삽과 작업복 그리고 잡다한 도구들을 발견했다. 동굴은 버려진 탄광 같다. 재가 된 음식이 담긴 식기. 그 옆에 놓인 가재도구, 신문 그리고 동굴 구석에 모아둔 작업자들의 애장품들. 나는 사진이 든 액자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 터널을 만들던 사람들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모든 것을 두고 떠난 것 같다고. 소녀는 액자를 보고는 짧은 탄식을 뱉었다. 액자를 낚아채고는 한동안 붉은 입술을 벌린 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나는 멀찌감치 뒷걸음쳐 그녀를 주시할 뿐이다.


 그녀가 헐떡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무거워졌다. 동시에 들썩거리는 어깨, 찡그린 표정이 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는 감정에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흐느끼는 그녀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연민일까. 아니면 무력감에 휩싸이던 도중 그녀가 내보인 약한 모습에 잠시나마 드는 우월감일까.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점점 서로의 뒷면을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 때문일까. 


 아무튼 그녀를 믿어선 안된다. 눈을 감고 내 머릿속 감정의 스위치를 끄는 상상을 했다. 철컥- 우선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리고 추론했다. 그녀는 이곳 터널을 뚫다 사라진 인부의 딸일 것이라고. 어쩌면 그녀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나와 함께 이곳을 왔고, 내게 또 한 번 거짓말을 했던 것이라고. 그리고 내게 또 불가능한 무엇을 요청할 것이라고.


 나는 그녀에게 따뜻한 어조로 사진 속 그 남자가 당신의 가족이냐 물어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아들이라 말했다. 아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그녀는 영락없는 소녀였고 액자 속 인물은 중년의 남자였으니까. 


 계속되는 알 수 없는 말들. 강 아래 마을에서 느꼈던 무력함과 답답함 그리고 모멸감이 터져버렸다! 출구의 끝자락에서 그녀를 양쪽 어깨를 꽉 붙잡고 벽으로 밀쳤다. 그리고 사진 속 인물의 당연히 당신의 아들일 수 없다고 소리쳤다. 난 신비로운 외계인이 아니다. 이 마을을 떠날 수 있는 방법도, 이 터널을 나온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다고 외쳤다. 


 그녀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동굴 벽에 그녀 어깨 살결이 쓸려 피가 맺히는 걸 보았다.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아 끈질기게 생각나는 대로 질문했다. 필사적인 대화 끝에 이곳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살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중년의 아들을 가졌음에도 20대의 몸 그대로 인 것이다. 왜 굳이 20대의 몸으로 살고 있냐는 질문에는 자신이 그 나이에 생명을 낳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때가 삶에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이라 그 순간을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마을 풍경을 떠올리며 이곳 사람들은 나이가 제각각이고 노인들도 꽤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비릿한 웃음을 내뱉으며 각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살고 있을 뿐이라 대답했다. 그건 선택할 수도 예측할 수도 노력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왜 당신 아들은 중년의 모습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고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도 불안함과 소외감이 몰아친다. 급기야 나는 분노와 두려움이 눈물로 새어버렸다. 그녀는 일그린 내 표정을 보고는 한숨 쉬며 대답해주었다. 아들은 이곳을 늘 떠나고 싶어 했다고. 삶의 징표로 간직할 ‘영원한 순간’을 겪지 못했기에.


 영원한 순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머리털이 곤두서는 경험이자 지울 수 없는 기억이라고 했다. 아들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늙어갔고,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을 보며 박탈감과 초조함을 느꼈다. 마을에는 그녀의 아들처럼 기억에서 소외된 이들이 몇 있었고 그들은 견디다 못해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금단의 구역이라는 마을 밖을 탐험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지 않겠냐던 아들의 표정은 체념과 자조가 묻었으면서도 작은 희망을 위태롭게 붙잡은 모습이었다고. 그녀는 액자를 한번 더 쓰다듬고는 말을 맺었다.


 아들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동안, 소녀는 점점 백발의 할머니로 변해갔다. 나는 너무도 놀라 괴성을 뱉고는 뒷걸음쳤다. 검댕과 흙이 잔뜩 묻은 원피스 차림의 산발한 늙은 여자. 이것이 그녀의 본 모습일까. 그녀는 예의 비릿한 웃음과 또렷한 눈짓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동굴 속 액자가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아들이 떠나간 당시의 나이로 돌아간 것이라 말했다. 


 그녀는 노인으로 변한 자신을 보며 찡그리는 내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깐 생각에 잠긴 뒤 흙바닥을 매만지며 읊조렸다. 이 마을의 노인들은 사실 삶의 끝자락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그녀는 액자를 바닥에 덮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깊은 숨을 들이켰다. 곧 마법처럼 희끗한 머리카락은 다시 번들거리는 연갈색으로 변했고 늘어진 살결은 샐 틈 없이 매끈해졌다.


 어떻게 된 것이냐 물어보니, 아들이 떠난 슬픔보다는 태어난 그 순간의 경이로움이 더 기억에 남기 때문에 자신은 영원히 숙녀의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몇 살이냐 물어보았다. 그녀는 생각해보듯 살짝 눈을 감았다 뜨고는 아마 주어진 수명을 훨씬 넘을 정도라며 비릿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나는 미처 예의라는 것도 생각할 틈 없이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은 언제 죽는 것이냐고. 그녀는 가볍게 대답했다. 숙녀의 기억을 넘어서는 것이 생긴다면 재가 될 것이라고. 이미 자신은 오래전 수명을 다했기에 과거의 기억으로 삶을 연장한다고 했다. 마치 유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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