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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환 Mar 10. 2019

흙길을 걷던 여자

 마주칠 때마다 그녀는 내게 질문을 했고 나는 대답했다.

 그 여자는 160 정도의 키에 마른 편이었지만 왜소하진 않았다. 기다란 팔다리와 조그만 두상 때문에 실제 키보다 더 커보였다. 곱슬기 없이 반듯한 머리카락을 귓바퀴에 걸치던 모습. 귀 아래 드러난 사각의 턱, 검은 눈동자와 도톰한 이마가 기억난다.


 그녀를 처음 본 곳은 도시 외곽. 태양 빛이 논두렁 사이에서 연이어 지는 곳. 가을바람이 제법 매서워진 어느 대낮. 그녀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품이 넓은 고동색 터틀넥 스웨터와, 타이트한 베이지 색 면바지. 밑창에 흙이 묻은 흰색 스니커즈 위로 연노랑의 긴 양말이 보였다. 옷차림을 보며 짐작했다. 방금 전 그녀는 혼자 논두렁을 가로질러 걸어와 이곳에 도착했다고. 아마도 근처 한 두 정거장 거리에 있을 집에 돌아가는 길일 거라고. 저 멀리 변두리 산맥을 바라보며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는 입가가 올라가 있었다. 반대로 표정엔 즐거운 기색이 없었다. 나는 그 미묘한 표정을 흘깃 쳐다보곤 고개를 돌렸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그곳에 있었다. 조금만 흙길을 걸어 나서면 번화한 도시가 펼쳐지는 곳. 게으른 농지는 도시를 바라보며 개발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수수한 차림이지만 여유 있는 표정, 자유로운 행동에 흥미를 느꼈다. 그 뒤로도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나는 그냥 회사원이라고 했다. 근처 높이 솟은 빌딩을 가리키며 그곳에 다닌다 말했다. 그녀는 반듯이 올라간 입꼬리로 날 심술궂게 쳐다보았지만 미워보이진 않았다. 마주칠 때마다 그녀는 내게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했고 나는 찬찬히 대답했다. 주로 내 일상에 대한 답변이었다. 나도 그녀가 궁금했지만 끝내 묻지 않았다. 그녀는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어떤 날은 심한 조울증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신경질을 낼 때가 있었다. 질문이 도를 지나칠 때도 있었다. 별것 아닌 것에 대해 트집을 잡거나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버스정류장에는 늘 그녀가 있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대화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는 내 앞으로 그녀가 작은 차를 몰고 왔다. 집에서 차를 가지고 왔다고 회사 앞까지 태워 주겠다 말했다. 면허가 없는 나는 그녀의 제안에 머쓱해하며 수락했다. 조수석에 앉아 태연히 시동을 거는 그녀를 바라보며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회사 앞에 도착하면 고맙다 얘기하고 그녀에 대한 가벼운 질문을 건네기로 다짐했다. 차가 움직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논두렁 사이 샛길을 질주하는 그녀는 차를 몰 줄 모른다는 것. 나 역시 몰랐다.


 차는 방둑 아래로 내려와 논두렁을 헤집었다. 그리고 회사로 돌진했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녀는 보란 듯이 핸들에서 손을 놓았다. 그리고 양쪽으로 만세 하듯 팔을 펼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서둘러 조수석에서 손을 뻗어 핸들을 잡았다. 눈앞에 폴리스라인이 보였다. 마침 교통경찰이 차를 단속하고 있었다. 차는 그대로 간이 검문소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십여 미터를 더 질주하고서야 멈췄다. 뒤에서는 경찰들이 달려오고 있다.


 그녀는 좌석을 눕힌 채 천장 유리창을 통해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 평소처럼 입꼬리를 반듯하게 올렸을 뿐이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나는 차 문을 열고 그녀를 바깥으로 밀쳐내었다. 그리고 운전석을 비집고 들어가 핸들을 잡고 몇 미터를 간 다음 차를 멈췄다. 내가 뒤집어쓰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곧 경찰들이 차문을 두들겼고 나는 문을 열고 손목을 건넸다.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그녀는 저 먼 곳에 다른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검문소를 향해 돌아가고 있다.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물론 한 번도 그녀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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