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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환 Feb 09. 2019

늦은 전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발 구해달라고 했다.

 명절을 맞아 친척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무척이나 닮아서 누가 형제이고 사촌인지 면밀히 훑어봐야 했다. 늙은 남자는 조카를 보며 돌아가신 아버지와 무척 닮았다 하며 손을 어루만졌고, 어떤 여자는 남편의 젊었던 모습이 생각난다며 동생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들은 유난히 닮은 서로를 바라보며 긴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의자 없는 시골집 실내는 무척이나 넓었다. 초가을 저녁. 햇살이 데워놓은 목재 마루에 친척들은 도란도란 누워있었다. 사촌동생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랑 닮은 동갑내기 친구. 친척들은 모두들 그 아이가 사라졌단 걸 알지 못했다. 서로가 너무 닮아서 구분하기 어려웠기에. 내가 그 아이가 보이지 않는 다 말했을 때,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기억을 더듬는 듯 일제히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서로를 바라보고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발작하듯 울부짖기 시작했다.


 붉은 마루는 부산스러운 그들 발걸음에 몸살을 앓았다. 친척들은 밤새 산길을 훑고 다녔지만, 아이를 찾지 못했다. 새벽. 그들은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몇은 다시 밖으로 나갔고 몇은 이곳에 남아 계속 울부짖었다. 울부짖는 그들은 이상하게도 날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삐-'


 집전화가 울렸다. 나는 부리나케 전화를 받았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 내게 '그 아이가 수영하다 물난리로 행방불명되었다'라고 말했다. 이 가을에 수영이라니. 그래도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가 말해준 곳으로 달려갔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그 가게가 이미 십여 년 전 없어진 곳이라 말했다.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가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났다. 사촌들이 말하길, 어렸을 적 내가 이곳 근처에서 물에 빠졌다 겨우 살아난 적이 있다고.


 당시 내가 사고를 당했던 그곳에 누군가 미리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찾지 못했을 것이라 말했다. 사촌들은 내가 사라진 것조차 몰랐었기에. 당시 구조대원은 이상한 점이 있다고 했다. 자신들은 사고 제보를 받고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며 달려왔는데. 도착한 지 5분 후 그들이 있던 그 가게 앞으로 내가 떠내려 왔다고. 그 일이 계속 머릿속에 겹쳤다.


 '삐-'


 울다 지쳐 잠든 사촌들 곁에 몸을 뉘이려 할 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 얼른 받았다. 잠에서 깬 친척들은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 낯선 남자였다. 그가 말했다. '아이를 발견했다, 지금 물난리가 난 지점에서 아이는 겨우 버티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내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나는 다시 물어보았다. 그곳이 어디냐고. 그 남자는 내게 아까 말했던 가게 이름을 대었다. 화가 치밀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내게 장난치는 것이다. 전화를 세차게 끊으려다, 이내 멈췄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발 구해달라고 했다.


 남아있는 친척들은 내 대답을 듣고는 몇은 고개를 숙이고 몇은 다시 흐느꼈다. 나는 그들 곁으로 다가가 위로했다. 우리는 사촌동생을 찾지 못했다.




 일 년 후, 서로를 닮은 사촌들이 명절을 맞아 다시 모였다. 모두 입을 무겁게 닫은 채 붉은 마루에 앉아 해질녘 산봉우리를 바라보다, 누군가 말을 꺼냈다. 내가 다섯 살 즘 말없이 집을 나섰을 때. 그때도 친척들 모두 이곳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그때 사촌동생이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아이는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친척들 중 누군가 수화기를 집어 말을 걸었지만, 이미 전화는 끊겨있었다. 아이는 말해주었다. 어떤 아저씨가 말하길, 어떤 사내가 숲을 걷다 길을 잃어버렸다고. 구해주어도 되겠냐 물었었다고. 나는 사촌동생이 그 남자에게 무슨 말을 했었냐고 물어보았다. 친척들은 허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촌동생은 그때 전화를 떨어뜨려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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