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세계 11 꿈, 뒤에는

격렬한 꿈을 꾼 뒤엔 늘 그렇듯 이 곳이 어딘지 곰곰이 생각해야만 했어.

by 류인환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여름.


태양은 전신주 위에 발을 올리고 일어섰어. 허리를 곧게 세우고 양팔을 벌렸지. 무용수처럼. 그리고 줄을 건넜어. 부드러운 금빛 몸을 일렁이며. 어느새 그 길의 중점만큼 왔을 때. 그녀는 두 무릎을 굽혀 줄을 조심스레 잡고는 몸을 숙여 줄 위에 걸터앉아. 잠시 휴식. 태양은 소녀처럼 다리를 허공에 휘저으며 도시를 내려다보았지. 그녀 귀에 맺힌 땀이 흘렀어. 하나의 빛 방울은 그대로 낙하해 유리 집 창문에 부딪혀 터졌어. 파편은 잠자던 유리를 덮은 이불 면에 산화했어. 금빛은 바람으로 퍼져 유리 얼굴을 간지럽혔지.


눈을 떴어.


유리는 열병 걸린 듯 온몸이 젖었어. 기분 나쁜 습기에 몸을 일으켰을 때, 그는 최근에 산 백색 이불에 금색 오줌을 잔뜩 묻혔다는 걸 알았어. 자는 동안 아기가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야. 한동안은 정말 자신이 아기일지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어. 그가 지금 삼십 대라 부끄러워하며 얼른 일어나야 할지. 세 살이라 누군가 일으켜 줄 때까지 보채면 될지.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는 알 수 없는 노릇이야.


격렬한 꿈을 꾼 뒤엔 늘 그렇듯,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이 곳이 어딘지 곰곰이 생각해야만 했어. 그런 시도를 해야 된다는 생각 역시 떠올려야 했지. 제법 시간이 지난 뒤 천장 등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어. 다 커버린 회사원의 모습이야. 그는 얼른 일어나 침구 더미를 밀쳐내 시계를 보았어. 그리고 황급히 옷을 걸쳐 입었지.


신들의 정원. 게다가 그는 노예였어. 맞아 죽었지. 자신을 구해주려는 신도 있었어. 그 여신이라는 게 어제 사거리에서 본 사람이라니. 뜬금없어. 무슨 상관인가. 그저 어제는 힘든 하루였어. 사거리가 떠올랐어. 그 많은 차들. 그리고 갇힌 사람들. 구급차. 리포터. 남들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워. 분명 자신은 사고의 원인이니까. 누군가 배상을 요구할지 몰라. 특히 이번 일을 동료들이 맡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을 발견한다면, 이득은 없어.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야. 눈을 떴을 때, 유리는 울고 있었어. 오줌을 지린 채. 누구에게라도 그 모습을 들켰으면, 그는 손을 붙잡고 빌었을 것이다. 제발 못 본 것으로 해 달라고.




“미쳤나 봐.”

유리는 택시 안에서 혼잣말을 해버렸어. 마음속의 말을 내뱉은 듯 그는 경직된 표정으로 택시기사 뒤통수를 주시했지.

“그럴 수 있죠, 어른이라고 실수 안 하는 건 아니잖아요.”

택시기사가 능청스럽게 말해.

“아니, 그 참. 이런 손님들 종종 있어요. 지금 같은 꽉 막힌 출근길에는 어쩔 수 없잖아요. 세탁비만 줘요.”

“아.” 유리는 더는 말을 있지 못했어. 조급히 밖을 나오느라 씻지도 속옷을 갈아 입지도 않았어. 더욱 처참해졌지. 기사에게 항변하고 싶었으나, 소모적이라 판단했어. 그저 빨리 회사를 가서 출근 체크를 하고 가방을 던져놓고 조용히 사내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싶었지.

“여기, 오만 원이면 될까요?”

“아유, 충분하죠. 영수증 필요하나요? 택시비만—.”


유리는 문을 열고 얼른 뛰쳐나갔어. 회사 엘리베이터에는 사람들로 꽉 찼어. 그는 숨 죽이고 숫자판만 바라보았지. 누군가 코를 찡그리고 두리번거려. 유리도 재빨리 인상을 찡그리고 코를 막은 채 두리번거렸지. 문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가려는 순간, 그는 걸음을 멈춰버렸어. 그의 눈앞에 옆자리 여직원이 스쳐 지나갔어.




목덜미에 커다란 반창고가 붙어 있어. 명주실 천에 피 굳은 검은 딱지가 흐릿하게 보여. 그래. 꿈에 여직원도 있었지. 목에 유리 파편이 박혀 죽었어. 꿈 속 여직원의 반색하는 표정이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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