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세계 17 마스터피스

꿈 속에서 팀장은 유리를 동족을 잡아먹는 괴물로 만들었어.

by 류인환

사냥은 쉬웠어. 마침 수면은 사방이 얼음으로 덮여 있었기에,


물개들이 도망갈 곳은 한정적이네. 게다가 출구마저 동료들이 범고래 특유의 빙산 같은 몸으로 막고 있지 않은가. 물개들이 도망갈 곳을 찾아 이리저리 휘청거릴 때, 나는 돌진했어. 유선형의 생물체는 다가오는 날 눈치채고 온몸을 펄떡거리더니 재빨리 헤엄쳤네. 지느러미를 더욱 세게 흔들어 그들을 쫓아갔지. 다섯 생물체는 이미 잡힌 것이나 다름없었네. 그들이 도망치는 곳에는 우리 동료들이 매복해 있기에. 물개와 우리들은 춤추기 시작했어. 동료 하나가 그들 앞으로 튀어나오면 물개들은 방향을 틀어 뻗어나가네. 그 사이 어미와 새끼들은 갈라지고, 동료들은 작은 크기부터 하나씩 문다. 그렇게 물개는 넷이 되고 셋이 되고, 어느새 어미가 목을 물려 뼈가 으스러졌지. 퍼지는 붉은 안개. 심장이 더욱 곤두섰네. 곧장 어미 꼬리를 힘껏 물고는 저 멀리 수면이 뚫린 곳으로 헤엄쳐갔어. 넘치는 쾌락에 몸을 비틀어 물개를 공중으로 던졌네.


지난날들의 그 물개 망령 따위는 이제 나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해. 이토록 약한 짐승 주제에.


물개는 오랫동안 공중을 부유하다 수면으로 떨어졌네. 혹여 도망치지 않을까 재빨리 검붉은 살같이 드러난 꼬리를 물고 수면에 내동댕이치기 시작했지. 철판 같은 수면에 물개는 사지가 찢어지고, 그 충격이 내 잇몸에 전달되었어. 둔탁한 울림.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사방에 물개 사지가 흩뿌려져 있었지. 밤길에 던져진 장미 꽃잎처럼 아름다웠네. 나는 물개의 찢어진 꼬리만 물고 있었어. 동료들은 내게 횡포가 대단하다더군. 난 말했지, 배고프지 않냐고. 우리는 황급히 배를 채웠네.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을 때까지.


그때 아가를 만난 것이야.


배부른 내게 남겨진 어린 놈은 크고 맑은 눈을 부라렸지. 또, 여린 눈망울을 보게 되었네. 잊었던 그 검은 눈망울. 갑자기 혹시, 오늘 밤 꿈에 그 어미 물개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들었어. 이젠 그 따위 꿈은 꾸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쩌면 복귀 후 첫 사냥이라 아직 정신이 완치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또 그 꿈을 꾸게 된다면, 내일 다시 사냥을 할 수 있을지, 훗날 별로 기억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어. 다시 협곡에 파묻힌다는 건 죽는 것보다 못하네. 그래서 아가를 죽일 수 없었네. 살려 보낼 수도 없었지. 동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그때 문득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네. 막내를 귀여워해야지.


나는 동료들에게 그 물개는 복귀의 징표로 데리고 있겠다고 했네. 정신 나간 듯 사냥하던 내 모습을 봤던 그들은 별 말없이 그러라고 했지. 저 녀석은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표정으로. 물개 녀석의 꼬리를 물고 무리로 돌아가는 와중에 그 녀석이 거짓말을 했어.


“오해예요. 난 바다표범이 아니에요.”


그 작은 주둥이가 우물거림에 아가 꼬리에 맞댄 혀가 미량의 단맛을 느꼈네. 어쩌면 그 물개는, 범고래가 바다표범을 먹는 것은 오해라고 말하는 듯했어. 우리는 포유류의 자손이며 같은 할머니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그 물강아지를 귀엽다고 느낀 건 결국 멀고 멀지만 형제라는 말이니까. 동족을 먹는 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가 생김새가 달라지고 말투가 달라짐에 더는 우리가 동족이 아니라는 오해. 그래서 나는 물개를 먹을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던 것일까. 그렇지만 내가 그를 먹지 않는다면. 그는 내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가. 그 물개를 정말로 데리고 있기로 했네. 살려둔다면, 혹시 앞으로 더 많은 물개를 살육한다 해도 꿈에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후에 정말 그 아가는 내게 사면증이 되어주었네. 더 이상 물개들의 망령을 보지 않았고, 더욱 늠름하게 사냥할 수 있었지. 물개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난 별로써 살 수 있다. 그가 내 생명을 책임진 셈이야.




의외로 아가 물개는 똑똑하고 눈치가 빨랐네. 자신이 범고래 무리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네. 아가는 사냥에 동참하겠다고 했어. 처음엔 내가 사냥을 떠나 무리에 없는 동안, 범고래 무리들이 그를 보며 입을 쩝쩝거리는 게 무서워 그러는 줄 알았지. 그렇다고 그를 데리고 사냥을 나설 순 없는 노릇이다. 혹여 다쳐 죽는다면, 내 삶도 죽는다. 몇 번의 훈육에도 그 물개는 사냥에 몰래 쫓아왔어. 나는 다그쳤네. 한 번만 더 쫓아온다면 다른 물개 새끼들처럼 먹어버리겠다고. 물개는 겁먹지 않았네. 그는 내게 당돌하게 말했네. 자신은 물개가 아니라 범고래의 일원이라고. 그리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물개 사냥에 나서야 한다고. 자신은 물개를 얼마든지 꾀어낼 수 있다고. 동료들은 좋은 생각이라고 했어. 나는 마지못해 사냥에 데리고 갔지

.

아가는 정말로 물개들을 쉽게 꼬드기고는 우리 사냥꾼 쪽으로 몰아오더군. 덕분에 쉽게 사냥할 수 있었고, 언젠가부터 아가는 사냥에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었지. 아가는 물개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네. 동족을 속이고 먹는 악마라고. 동료들의 칭찬을 받으며 무리에 돌아와 자신이 속였던 물개들의 시체를 먹는 그 물개를 보며 깨달았네. 그도 나처럼 협곡을 다녀온 것이라고. 내가 내 살을 먹었던 것처럼, 그도 자신의 동족을 먹으며 강해지고 있다고! 그 이후로 나는 그를 물개라 부르지 않았네. -사실 우리가 먹는 것은 바다표범이다. 그들을 물개라 부르는 것은 우리가 범고래이기 때문이다. 범이라는 것은 바다표범에게는 황송하다- 내심 생각했지. 그는 나의 마스터피스라고, 그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상, 그를 그 어떤 범고래보다 자랑스러운 사냥꾼의 별로 만들어 놓겠다고.




seal.JPG 꿈 속에서 팀장은 유리를 동족을 잡아먹는 괴물로 만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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