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세계 19 회생

팀장 속에 있던 그것은 꿈 을 통해 유리에게 옮겨 갔을지 모른다.

by 류인환

팀장님이 사고를 당했대.


그것도 방금. 나도 상세한 건 잘 몰라. 박 차장이 말해줬지. 전화 상으로 들은 얘기로는, 밤길에 혼자 차를 몰다 사고를 당했대. 근데 거기가 어딘 줄 알아? 포항. 응, 진짜 경북 포항에. 여기서 다섯 시간은 걸리잖아. 어제 일찍 퇴근하더니 바로 거기로 갔나 봐. 혼자. 호미곶 알지? 바다 위에 큰 손바닥 있는 곳. 그 근처 차로에서. 발견한 사람이 기겁했다잖아. 가드레일에 차가 겨우 매달려서 기우뚱거리고 있었대. 넘어졌으면 바로 바다에 떨어질 뻔한 거야. 이 밤에 거기 떨어졌으면 말 다했지.


산사태가 났대. 마침 그곳이 공사하던 중이었는데, 제대로 정비를 안 하고 인부들이 퇴근했나봐. 흙더미가 차로로 떠밀려 내려온 거지. 하필이면 그때 팀장이 지나가는 중이었고. 근데 진짜 천운이야. 멀쩡해. 가벼운 타박상 말고는 심각한 거 없대. 구조대원 말이 기적이라고. 산사태도 약했고, 가드레일이 꽤 버텼나 봐. 지나가는 차들도 별로 없어서 추돌사고도 없었고. 나무 하나가 차 위로 내려앉아서 차는 찌그러졌는데, 운전석 쪽은 멀쩡하고. 의사가 그러더라. 졸음운전을 한 것 같다고. 그러니 그 충격에도 몸이 굳질 않았지. 그래서 멀쩡하다는 거야. 그래, 다행이지. 얼마나 놀래셨겠냐. 그대로 기절해서 처음에 구급대원들이 죽은 줄 알았다잖아. 지금은 병원에 누워계시고, 의식도 있어. 자기가 직접 전화해서 우리 팀에게 알렸다니까. 조만간 퇴원할 생각이래.


근데 있잖아. 요즘 팀장님 좀 이상했잖아. 내가 보니까 약도 엄청 먹더라고. 무슨 약이냐고 물어보니까 수면제랑 두통약이래. 요새 통 잠을 못 잔다고. 하긴 요새 회사 상황이 장난 아니잖아. 우리도 우리지만 팀장님도 엄청 스트레스 받았겠지. 한동안 엄청 화를 내고 소리도 지르는 것 보고 좀 과하다 싶었어. 어제 아침에 너한테 한 짓도 좀 심했고. 최근 돌발행동 같은 걸 많이 했어. 소문에는 최근에 술자리에서 젊은 애들이랑 말다툼하다 깨진 병을 들이 밀었다잖아.


그래서 말인데. 혹시, 사고가 팀장을 살린 거 아닐까. 아니 들어봐. 무슨 말이냐면. 그 시간에 갑자기 혼자 그런 곳까지 운전한 거 보면 알잖아. 휴가 계획도 없고, 포항 근처를 갈 일이 없는데. 그쪽에 지인도 없다잖아. 서울 토박이인 사람이. 마누라랑 이혼하고 자식은 결혼하고 외국 가서 연락도 없고. 삶이 즐겁겠어? 막말로 우발적으로 자살하러 간 거 아냐. 그렇다니까. 오늘 하루 종일 표정 이상했잖아. 특히 너랑 그일 있은 뒤부터는 사람들이랑 말도 한마디 안 하더라. 그래. 사고가 사람을 살린 거야. 차장님이 말하더라고, 팀장이 자기가 병원에 있다고 전화를 했대. 어디서 어떻게 사고가 났고, 이런저런 경위를 설명하는데 웃더래. 죽을 뻔 한 사람이 웃더라니까. 사람이 변했어. 걱정 훌훌 털어버린 사람처럼. 농담도 하더래, 평소 절대 그런 말 안 하는 사람이. 뭐랬더라.


너 얘기를 했어. 똑똑한 물개라며.


자기한테 돌더미를 되값아 뿌렸다고. 껄껄 웃더라고. 서류더미를 던진 그땐 정말 미안했다고 복귀하면 꼭 너한테 회를 사겠데. 비싼 걸로. 자기가 물고기 밥이 될 뻔 했으면서. 웃긴 사람이야 정말. 차장님은 지금 병원에 있는데, 병문안은 몇 사람만 가기로 했으니 너는 오지 말고. 내일 다들 오후에 나오래. 사무실 어수선할 텐데 괜히 아침부터 떠벌리고 다니지 말라나. 좀 더 자둬.




유리는 조금 전 까지도 기면증 환자처럼 버스 구석에서 오랫동안 졸고 있었어. 자정이 넘었을 때. 운전기사가 엎드린 그를 발견할 때까지. 쫓겨나듯 버스를 나서 집 문 앞에 도착하는 동안에도, 꿈을 기억하려 애썼어. 누군가 자신에게 검은 바다 지면에서 끓어오르는 유황 같은 목소리로 말했었어. 더 이상 이곳에 있지 마.


집 도어락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벨소리가 울렸어. 짧은 통화 후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어두었어. 문 앞에서, 그는 오랫동안 서 있었어. 놀랐어. 팀장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보다, 팀장이 바다에 있었다는 사실에. 유리는 생각해보았어. 왜 팀장은 그 먼 곳까지 갔을까. 호미곶 손바닥 석상을 떠올려보았지. 바다 한가운데 불뚝 솟은 손. 그 손의 주인은 수면 아래에서 숨을 참고 있을지도 몰라. 입술 사이로는 연거푸 물거품이 새어 나오겠지. 누군가 자신을 건져주길 바라면서.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구조를 기다리는 그 석상 얼굴에 꿈에 보았던 흐릿한 범고래 형상이 겹쳤어.


현관 문을 열었어.


검은 방, 유리는 커피 포트에 물을 반만큼 채운 뒤, 손잡이에 달린 스위치를 켰어.‘딸깍. 푸른 램프가 켜졌지. 쌀쌀한 가을밤, 빛은 불 꺼진 방을 검푸른 빛으로 물들였어. 고열을 앓는 촛불처럼. 유리는 한동안 천장에 맺힌 푸른빛을 응시했어. 그리고 돌아섰어. 그가 침대에 몸을 눕히고 나서야, 커피포트에서 물이 끓어. 부글-부글. 물방울이 수면 바닥에서부터 세차게 뿜어 나와. 그는 불 꺼진 천장을 바라봤어. 포트 바닥에서부터 나오는 푸른 조명은, 요동치는 물결을 고스란히 천장에 투사해. 유리는 다시 바다 지면에 처박힌 채 수면을 보는 듯했어. 더 이상 이곳에 있지 마. 유리는 목소리의 주인을 만나고 싶었어. 다시 꿈을 꾸기로 했지. 그러기 위해선 최면 걸듯 머릿속을 정리해야 해.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을 때 펼쳐질 상황을 미리 각색하는 셈이지.


유리는 혼잣말로 내뱉었어.


지금은 새벽, 푸른 불빛을 내뿜는 커피포트가 있다. 이 곳은 너무나 고요해 부글-부글 물방울 소리만 들린다. 천장은 커피포트의 물결을 따라 바다 수면처럼 일렁거린다. 나는 물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응시한다. 검은 사각형의 방에 담긴 백청색 물결은 모양을 추스르더니 횡단보도로 변한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하나. 둘. 셋.




IMG_20160124_233611.jpg 팀장 속에 있던 그것은 꿈 을 통해 유리에게 옮겨 갔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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