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꿈 속에서 팀장은 범고래가 되었어.
새끼 물개를 귀여워하는 건 물개들 만이 아니야.
그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범고래들도 새끼 물개를 귀여워하네. 제대로 헤엄치지 못하는 기형의 신체비율을 가진 그것에게 왜 애정을 느끼는지, 나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지. 생각해보다 결론을 지었네. 우리는 암묵적으로 훈련을 받은 것이야. 포유류 새끼를 귀엽다고 느끼도록 세뇌 당한 것이지. 범인은 분명 포유류의 첫 엄마일 거야. 엄마가 늙어 생에 마지막 아기를 낳고는 불안했을 걸. 막둥이가 장성하기 전에 자신이 죽게 된다면, 누가 막둥이를 지켜줄까 하고. 그녀에게 막둥이는 중요하거든. 자신이 이제껏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만드는 최종의 마스터피스이자 은퇴작이기 때문에. 더는 수정도 개선도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래서 형제끼리 젖을 두고 다툴 때, 특히 늦둥이가 형의 발길질에 이빨이 나가고 누나의 이빨에 귓불이 찢어질 때, 엄마는 생각했을 거야. 불완전한 습작들 때문에 마스터피스가 해를 입을지 모른다고. 엄마는 형제들을 일렬로 세운 뒤 웃는 얼굴로 타일렀네. “귀여운 막둥이에게 애정을 가지고, 양보해야지.” 언젠가 형제들이 내 먹이를 빼앗았을 때, 내 어머니가 했던 말처럼.
사냥. 발음부터 전율하는 그 일은 우리에겐 성스러운 업무야.
우리가 속한 무리들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네. 바로 내가 그 일을 하고, 생존을 지키는 존재야. 생명이 달린 일은 누구도 만만하지 않아. 하찮은 것들도 궁지에 몰리면 내게 이빨을 들이밀기도 하니까. 오히려 내가 죽을 수 있네. 나는 내 생명을 담보로 하등한 생명을 죽이고, 우리 무리들의 가여운 생명을 연장하지. 결국엔 모든 바닷속 생명은 내 이빨이 일을 하느냐 마느냐에 달린 것이야. 내가 일을 하면 먹잇감이 죽고, 동료들이 산다. 하지 않으면 동료들이 죽고 먹이들이 살겠지.
내게 사냥은 천직이네. 어릴 적부터 시작해 언젠가 늙어 죽어 바다 눈-심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죽은 시체의 가루 덩어리-이 될 때까지 늘 하는 것이니까. 시체를 누군가에게 받아먹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사냥해 먹는 것이 더 빠를 정도네. 그동안 바닷속 물개들을 몇 마리나 죽였을까.
고백하자면 처음 사냥을 시작할 때, 나도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지. 고통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물개 새끼의 사지를 찢어 놓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어릴 때는 내가 뜯어낸 물개들의 망령이 내 사지를 뜯는 꿈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지. 한동안은 고기를 먹지 않았어. 그 고기를 먹으면, 꿈에서 그 고기가 나를 뜯어먹을 것이 뻔했거든. 꿈속의 고통과 두려움이 고기를 보는 순간 되살아나는 거야. 동료들에게 꿈 이야기를 했지. 꿈속에서 잡아먹히는 게 두려워서 도저히 고기를 먹지 못하겠다고. 동료들은 내 말을 듣고 포기해버렸어. 무리에서 필요 없는 존재라며 날 해저 협곡에 던져 놓았지. 이미 한 달을 굶은 나는 그 얕은 문턱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어. 시체처럼 야윈 채로. 눈앞엔 죽은 물개의 환영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내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지. 그들은 내게 말했어. 너같이 야윈 것들은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그저 남의 먹이나 축내고, 도움은 커녕 희생조차 하지 않으려는 넌 그저 없어지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동의했어. 내가 보기에도 당시 나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 존재였거든. 해저 골짜기에 몸을 파묻은 채, 수면을 한 번 올려다본 뒤 눈을 감았지. 이대로 나는 바다 눈이 되어, 그것으로 이제껏 살아온 빛을 되갚으면 끝나는 일이라고.
이틀을 더 누워 있었을 까.
감미로운 향기가 나기 시작한 거야. 달콤한 냄새에 기분이 좋았지. 정신은 오래 전 잃은 후라 지금 내가 누워 있는지, 눈을 뜨고 있는지 혹은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지. 난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향기를 맡고 만 있었던 거야. 붉은 향기에 기분이 좋아졌어. 식욕이 되살아났지. 그리고 달아올랐어. 피가 끓는 느낌이랄까. 눈을 떴어. 세상은 온통 붉은 구름으로 차 있더군. 뜨겁던 감각은 따가움으로 변했지.
난 봤어. 온갖 짐승들이 날 뜯어먹고 있는것을.
내 검은 살갗에 붉은 살점이 반점처럼 드러난 광경을. 난 그것을 무엇이라 느끼기 전에 벌떡 일어났어. 그리고 작은 짐승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웠지. 얼마나 먹었을까. 나는 평소 먹지 않는 것들을 먹어 피똥 같은 것들이 흘러나오면서도 끈질기게 먹어치웠어. 내 피 냄새를 맡고 다가온 상어들까지 먹었지. 한 달간을 그렇게 협곡에서 먹으며 지냈고, 난 이전처럼 살이 바짝 오른 성체 범고래가 되었어. 그리고 무리에 돌아왔을 때, 나는 제일 맹렬한 물개 사냥꾼이 되었어.
그 협곡에서, 난 나 자신을 먹은 거야. 짐승들에게 뜯어 먹힌 살점을 도로 씹어먹는 기행으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어. 꿈속에서 물개 새끼들이 내 몸뚱이를 씹어 먹지 못하게 선수를 친 거야. 그래 난 생명을 죽여. 하지만 내가 죽인 그 짐승들도 다른 짐승을 먹어. 그리고 작은 짐승들은 언젠가, 내가 늙어 죽어 바다 눈이 될 때 날 먹는 거야. 우리는 서로 빚진 것이 없어. 세대들이 생명을 공유할 뿐이지.
아가를 포획하던 날이 내가 협곡에서 돌아온 첫 날이었어. 바닷속 햇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미광층까지 동료와 숨어들었어. 숨을 죽이고 조금씩 목소리를 뿌리기 시작했지. 일종의 촉수 같은 그것은 파동으로 돌아와 내 머릿속에 지도가 되었어. 저 멀리 부른 배를 보이며 떠다니는 물개 성체 한 마리와 새끼들이 눈앞에 펼쳐졌지. 주둥이를 쩝쩝거렸어. 행복했어. 온전히 삶으로 돌아온 것 같았지. 동료들은 물개들을 죽이기 위해 파고 들어갈 최단 경로,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야 할 빈틈들을 논의했어. 나는 말했지. 도움은 필요 없다고, 내 이빨은 물개를 본능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지.
사냥은 아름다운 것이야.
출격하는 동안, 나는 암흑 속에서 점이 되어 떠있었어. 동료들도 점이 되었지. 점들은 미세한 소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음파는 끈이 되어 우리들을 별자리처럼 연결한 느낌이었지. 바다 밖 하늘에 박혀있는 별 말이야. 그래, 우리는 바닷속 우주에 사냥꾼을 뜻하는 별자리가 된 거야! 이 순간이 나의 존재이지. 나는 별이 되기 위해 사냥하고, 배를 채우고, 동료들과 교류하지. 해양 최상위 계층인 포유류, 그 계급에서도 가장 위대하다는 범고래. 나는 그 속에서도 그들의 삶의 지표이자 동경의 대상인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