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여자

by 이영희



울컥울컥 왕성하게 쏟아내던 붉은빛이 사라진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오십 둘에 폐경이 왔었다. 삼십오 년의 가임기간. 파랑에서 빨강 신호로 바뀌었다.

나는 스물일곱에 아이 하나를 낳고 서둘러 그다음 해에 불임수술을 감행했다. 이제는 달거리라는 말도 묵은 단어가 되었다. 정자를 맞이하지 못한 난자의 반란은 잠재워졌다. 기구나 약물 또는 수술요법으로 임신의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 여성해방에 크게 공을 세운 의학의 발달. 하지만 여자의 몸이 훨씬 진화해서 더 이상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명령이 뇌에서 자궁으로 전해지면 달거리에서 해방될 텐데 하는 망상도 해 보았다.


사실 더 반가운 일은 편두통과 함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매사에 신경이 곤두섰던 날들. 진통제 없이는 배겨 나지 못했다. 식구들에게 턱없이 짜증을 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묘한 기분에 휩싸여 충동구매를 하곤 했다. 생리 증후군. 백화점을 배회하며 크게 쓸모도 없는 물건을 집요하게 응시하기도 했다. 정교하게 면면이 반짝이는 여섯 개의 프랑스제 크리스털 와인 잔이 장식장 안에서 시치미를 떼고 오만하게 나를 바라본다. 지갑에서 터무니없이 출혈한 것을 생각하면 얄밉다. 요란한 장식의 구두를 구입해서는 용기가 없어 한 번도 신어 보지 못하고 베란다 구석에 잘 모셔둔 적도 있다. 빨래를 널며 그 구두를 흘끔흘끔 남의 물건을 보듯이 하다가 어느 날 누가 볼세라 신문지에 둘둘 싸서 버려야 했다. 얄궂은 디자인에 집착하며 필요 이상으로 사들인 그 많은 팬티는 또 어쩌랴.


붉은빛을 거의 일주일씩 확인하는 것은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다. 허리를 뒤틀며 기분 나쁜 통증이 시작되면 에덴동산 이브에게 찾아가 그 날 베어 먹은 과일을 뱉어내게 하고 싶었다. 다른 여인들은 어떤 기분으로 메스꺼움을 가라앉혔을까. 거기다 생리대의 종류는 셀 수도 없다. 회사마다 경쟁이 붙어서 광고까지 요란하다. 좀 더 뽀송뽀송한 첨단의 소재로 대, 중, 소는 물론이고 친절하게도 밤, 낮까지 구별해 준다. 여인의 예민한 그곳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활동에 자유를 준다며 양 날개까지 달아 주었다. 하지만 광고만큼 자유롭지 않았다. 어느 제품이 더 좋은지, 그 날이면 골라 쓰는 재미가 아닌 선택해야 하는 피곤함만 더해 주었다.


그런데 그날이면 귀찮아하고 불편함을 호소하던 또래의 여인들이 여전히 피비린내를 연장하려 한다. 산부인과를 찾아가 호르몬 약을 주문하고 주사요법을 쓴다. 그동안 할 일을 충실히 마친 자궁이 휴식을 갖고자 하는데 잠들지 말라며 흔들어 깨운다. 여인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젊음의 끝자락을 조금이라도 길게 잡고 싶어 하는 심리. 그나마 갖고 있던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어간다며 우울해하는 사람도 있다. 폐경과 함께 빠르게 노화가 진행될 것이라며 매달 열리는 마술대회에 갈 수 있는 초대장을 받길 원한다.


어느 노부인이 자신은 호르몬 약으로 관리를 잘하여 아직 생리를 한다며 은근히 자랑하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오래된 부인의 모습이 내 눈에는 ‘여자라서 행복해요’가 아니라 ‘여자라서 여전히 불편해요’ 그 말이 더 어울렸다.


소녀시절 초경이 빨리 시작되라고 서둘러 방법을 찾지 않았듯이 신호위반을 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

어쨌든 여자는 기저귀에서 해방되는 날은 관 뚜껑이 닫히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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