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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반짝이는 게 있을까
24화
두 알의 앵두는 어디에서
by
이영희
Sep 23. 2019
내일이 생일이다. 미리 미역을 불려 놓는다.
검은 다발이 태생을 기억해 내어 푸르게
푸르게 긴 머리를
풀어
헤친
다
.
비릿한
미역
내음은 피비린내를 닮아 있다. 신화처럼
전설처럼
이어져
오는 산모의 보양음식
이
다.우리 조상님들의 신비한 영험함을 생각한다.
짠내와 뻘내는 바다에서 뭍으로 기어 오른 최초의 기적, 그 시원까지 되짚게 한다.
온갖 동물의 피돌기. 그것은 몸안에 바닷물을 가두어 순환시키는 것 같다.
산모의 미역국과 생일.
태초의 것과 맞물린 것은 저 광대한 우주의 탄생
부터 지구라는 행성. 그중에 더 잘게 잘게 축소하면 우리 각자의 태몽이야기도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어머니께서 나를 임신하고 어느 날의 꿈이 생생 하다시며, 내 나이 열 살 이후로 잊을만하면 거기 그 시간의 꿈속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들려 주시곤 하였다. 꿈은 이러했다.
.
... 깊지 않은 냇가를 건너는데 하얀 두루마기에 허연 수염을 가슴까지 내린 할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앞에 서서 손을 내민다. 그리곤 앵두 세 알 중에 두 알은 엄지로 가리고 한 알만을 어머니 손에 넘겨주더라는....
꿈속에서도 어머니는 한 알의 고 앵두가 너무 귀하고 고와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자라면서 내가 어쩌다 기특한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면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꿈속의 도인(할아버지)이 너를 어여삐 여긴 것이라며 그 태몽에 의미를 부풀려 부여하곤 했다.
나이 차서 결혼하고, 머리도 조금 여물어지고 삶이라는 굴레에 이리저리 섞이고 휩쓸리며 여기까지 왔다.
가끔은 한가한 궁금증이 머리를 스치곤 한다. 그 한 알의 앵두를 어머니 손안에 또르르 옮겨 준 허연 수염의 할아버지. 나머지 두 알의 앵두는 어느 집에 안겨 주었을까.
만약 내 꿈에 할아버지가 나온다면 묻고 싶다.
'두 알의 앵두는 어떻게 살아왔
는
지요'
색연필과 물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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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림을 즐깁니다. 수필집 <자궁아, 미안해> 2022년 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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