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하나 불러봐라

어머니

by 이영희

꼭 이맘때다. 봄날 저녁이었다. 친정에 내려가 어머니와 둘이서만 노래방에 간 일이 생각난다.


저녁상을 물리고 운동삼아 처음엔 동네 어귀를 걷다가 조금 멀리 사거리를 지나 불빛이 확 밝아진 큰길까지 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니 노래방에 가봤나?"

" 응, 왜? "

" 그럼 노래방이란 곳에 함 가보자. 내는 아직 안 가봤다. 가서 구경도 하고 니 노래도 들어보자."

"그럴까." 그렇게 찾아 들어간 작은 방.


오래전부터 친정어머니는 노래를 무척 부르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는 아버지에게서 음치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었다. 그 말이 사실일까, 하며 남 모르게 고민하는 눈치였다. 어머니 혼자 부를 때는 괜찮게 들리는데 사람들과 어울리며 용기 내어 한곡 부를라치면 모인 사람들 중엔 눈치 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어서 어머니의 음정, 박자가 엉망이라며 태클을 건 모양이었다.

그 후로 TV 프로에서 음치들을 위한 강의라며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통 안에서 울리는 자신의 소리를 듣고 연습하라는 말에, 방 안에서 플라스틱 물통을 머리엔 쓴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자 아마 딸이 친정에 내려오는 날을 잡아 노래방에 가서 제대로 연습을 해보리라 마음을 잡수신 것이다. 하지만 그 열의도 두 세곡쯤 부르더니 시들해지고 말았다. 마이크를 통해 크게 울리는 당신의 소리에 당황하신 듯하다.

" 야야, 정말 내가 이렇게 음정이 한 개도 안 맞나."

" 엄마, 연습하면 좋아져요. 현철의 그 노래 다시 해보자."

어머니는 고개와 손을 동시에 흔드시며

"내사 마 이제 고만할란다. 니나 재미있게 더 불러 봐라"

이렇다 보니 삼십 분 이상을 내 독무대로 채웠다.


다음날,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난 후, 어머니는 나를 찾는다.

" 이리 와 봐라. 니, 여기다 노래 하나 불러 봐라." 소형 녹음기를 내 앞에 내미시는 게 아닌가.

" 에구, 엄마 왜 이러셔요"

"잔 말 말고 여기다 대고 한곡 불러 봐라, 어제 거기서 니 소리 들어보니 녹음해 놓고 듣고 싶다."

못 말리는 분이다. 어쩌겠는가.

"뭘 부르면 될까?"

" 맞다. 니 어제 러던 노래 중에 '보슬비 오는 거리' 듣기 좋더라. 그거 해라."

보슬비 오는 거리에

추억이 젖어 들어....


이렇게 내 목소리는 녹음기에 담겨야 했다. 요즘도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 네가 생각나면 녹음기를 틀어 놓고 목소리 들으며 하루를 달랜다"라고.


어머니. 유명 오페라 가수보다,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보다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바로 어머니가 제 이름을 불러 줄 때의 그 목소리예요.


엄마, 곧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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