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보다 두 배를 괴로워해야 하기에 낮부터 술을 마시는 거다- 고 독백하는 구절이 있다.
우리의 옛글에서 낮술에 대한 것을 찾아보니
옛 관가에 점심상이 들 때 관비가 오주상을 먼저 들었다는데 그 오주가 낮술이다.
또 참이라 하여 여름날 낮 서너 시쯤 일하는 일꾼 들을 위해 막걸리를 내는데 요기도 되고 취기도 주어 일하는데 활력을 돋우었으니 이 또한 낮술이다.
소설 속 소냐 아비의 주비와 우리 농사 일꾼의 낮술은 이해가 되리라 믿어진다.
그러나 어제 오랜만에 만난 네 여인이 충무로 극장 뒷길, 한국의 집 돌담길을 마주한 퓨전 레스토랑 두 곳을 옮겨 다니며 낮술을 마신 이야기가 어디까지 이해받을 수 있을지 갸우뚱하지만 보따리를 풀어 본다.
막 50대로 진입한 여인 둘과 60에 들어선 둘.
네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인 주부로, 엄마로, 글쓰는 작가로, 남자의 여자로 충실하게 살아가지만주제는 언제나 글쓰기의 고단함과 남편에게 기울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술잔을 더 깊숙이 기울이게 된다. 글쓰기보다 더 근원적인 남편 이야기. 애정전선에 심각한 이상이 있어서가 아닌 갱년기와 맞물려 자신들이 확신해왔던 자리매김에 대한 허무. 그리고 청소년을 지나 청년의 길을 가는 아들에 대한 걱정들.
60대는 살아보니 이젠 달큼하거나 짜릿한 싸움도 확 줄어든 세월에 50대의 이야기에 공감도 하고 어쭙잖은 조언까지 했다.
우울증의 경계를 오가며 두 달을 울었다는 여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모두 얼굴이 젖었다.
남편을 너무 배려한 탓에 돌아보니 자신의 위치가 너무 초라해져 있음에 허무와 화를 추스르는데 거짓이 아닌 정말 옷 한 벌을 푹 적실만큼 눈물을 흘렸다는 말에 진심이 뚝뚝 묻어났다.
슬픔을 덜고자 마셨건만 더 커진 애잔함으로 술을 더 주문했다.
새로 시킨 술을 들이키며 내 이야기 차례가 왔다. 겉은 웃고 있지만 속은 쪼글쪼글한 날이 많았다고 토해냈다. 작년에 두 번의 수술 후휴증. 예전 같지 않은 둔한 움직임이 가장 큰 우울과 화의 근원이며. 거기다 장가 간 아들이 내 우울을 눈치채고 좀 더 글쓰기에 마음을 쏟아보라며 브런치란 공간을 알려준 이야기를 하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이 무슨 주책인가. 곱디고운 며늘아가도 시어미를 적극 응원해주고 있건만. 아마도 일상이 답답할 때마다 늘 옆에서 엄마 편이 되어주던 하나뿐인 자식의 부재. 술이 들어가니 극복 못한 어눌한 약한 내 의지가 한심하여 또 한 잔.
아줌마들만의 주비酒悲.
술잔과 함께 몇 시간을 보냈건만 밖은 아직 훤했다. 종종걸음으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준비하며 아내의 자리들을 굳건히 지켜냈으리라. 그러다 어느 날 다시 뭉쳐 또 다른 이야기 글마당을 펼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