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에도 기합이 들어갔을까. 그곳의 개나리는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벌써 4월인데. 연천군에서 한참이나 더 들어가는 대광리. 거기서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을 처음으로 찾아가는 길. 2007년의 봄을 되새겨 본다.
부대의 점심시간에 맞추어 달려보지만 마음만 급하여 도착하니 거의 1시가 되었다. 보초병의 칙칙한 군복 무늬는 나를 더욱 움츠리게 했었다. 그곳의 봄은 멀어 보인다. 면회 신청을 해 놓고 기다렸다. 저 쪽 딴 세상에서 건너오는 것 같은 아들. 기분이 묘하다. 점심을 먹고 나왔다기에 아이를 차에 태워 부대 근처를 드라이브 한 뒤 식당에 들어갔다. 간단하게라도 무엇이든 더 먹이고 싶어 음식을 주문했다.
오후 5시까지 부대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아직 세시가 못 되었다. 어디로 갈까. 작고 빤한 읍네엔 분위기 있는 푸근한 커피숍을 기대할 수 없다. 요즘은 많이 자유롭고 군생활도 변했겠지만 그때는 조금 번화한 시내까지는 나갈 수 없다는 면회 규칙을 따라야 했다.
아들이 말하는 부대 근처의 유일무이한 다방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문 다방' 우리는 침침하고 뿌연 담배연기가 그득한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삼류 소설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젖가슴이 유난히 커다랗고 예쁘지도 못나지도 않은 마담이 주문한 커피를 조악한 잔에 담아 내온다.
문 다방. 무슨 뜻으로 간판을 걸었을까. 짧은 생각에 잠겼다. 누구나 문을 열고 들어가 휴식과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그 ‘문’ 일수도 있고, 여주인의 성씨가 ‘문’ 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나름대로 멋을 부린 달을 상징하는 ‘Moon’일까. 마담의 굼뜬 맵시로 보아서는 왠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을 것 같다.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다. 두 시간 후면 아들과 헤어져야 한다. 안타까운 기분을 달래기 위해 아들이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절박하게 기도했던 묵은 이야기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 주었다.
"내가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몹시 흥분된 모습으로 기뻐했던 네 아버지는 알고 있듯이 외아들이다. 시어른들은 우리가 결혼하자마자 손자를 기다렸단다. 첫아이가 임신 삼 개월에 유산되더니 2년을 기다려도 임신이 되지 않았지. 병원에서는 곧 아기가 들어서리라 말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다시 일 년을 기다렸지만 어른들의 걱정은 나날이 깊어지고 나는 마음과 몸이 무척 허약해져 갔단다. 친정에서는 어서 내려와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추스르라는 대안이 나왔었지.
시아버님, 네 아버지와 의논한 끝에 친정으로 내려간 나는 그곳에서 한 달을 보내야만 했어. 하지만 무거운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요양이 어서 끝나고 서울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단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친정 집 뒤 과수원 길을 따라 동산에 올라갔단다. 마침 휘영청 밝은 보름달. 문득 ‘저 달을 보고 내 소원을 빌면 들어주실까’하는 간절한 소망이 불같이 일어났었지. 달을 향해 절하기 시작했어. 한 번, 두 번, 세 번 , 네 번. 지극한 정성을 담아 ‘아기를 갖게 해 주세요.’ 열 번으로 끝내려 했던 절을 스무 번도 서른 번도 더 넘게 엎드렸고 다시 일어섰단다. 살아오며 그때만큼 간절히 기도를 해 본 적 없을 것 같아.
달, 달의 비밀은 우주선을 타고 날아간 인간의 호기심과 과학의 발달로 낱낱이 밝혀졌지만,
허공에 둥실 매달려 있는 저 둥근달을 보는 마음은 왜 변하지 않는 것인지.
간절함을 담은 마음 안에는 토끼도 계수나무도 살지 않는다는 황량함과는 무관했단다. 달은 여전히 이태백이 노래하던 때의 그것이며, 뒷마당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던 옛 어머니들의 간절한 바람과 푸근함이 나를 굽어보고 있을 뿐.
그렇게 친정에서 휴식과 보양을 하고 올라와 지내던 중, 보약 덕분인지 아니면 달의 정기 때문인지 그 해 임신이 되었단다. 다음 해 봄, 네가 세상에 나왔단다. 그렇게 보름달처럼 둥실둥실 환한 모습으로 우리 품에 안긴 너.
지금 나라를 지키는 네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짐에 뿌듯하다"며, 옛날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길지 않은 네 시간여의 면회를 마치고 다시 부대 앞. 서로 서운한 눈빛을 나누었다.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뛰어나왔던 그 길을 들어갈 땐 아주 천천히,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녀석을 다시는 못 보는 것도, 못 올 곳도 아닌데 어느새 나는 눈앞이 뿌옇게 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가루처럼 내려앉던 어둠이 까맣게 쌓여갔다. 차창 밖으로 친정집 뒷동산에 올라 소원을 빌었던 그 달이 미소 지으며 따라왔다. 다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