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봤다. 1화를보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화면 속 김부장은 웃기지만, 나는 현실의 김부장들이 떠올랐다.
김부장은 회의실에서 고집부리고, 보고서 폰트에 집착하는 꼰대로 그려진 자. 실수도 하고 책임도 안 지려는 모습도 보인다. 화면 너머로 웃음이 터질 때, 마음 한 켠이 불편하다. 나는 실제 ‘김부장’들의 일상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보며 살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생활 동안 수많은 부장님들과 함께했다. 김부장, 박부장, 이부장…등 많은 부장님들이 생각난다. 부장님 이란 단어가 가진 이미지가 있다. 실무는 안 하고 의전과 정치를 하는 사람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내가 본 그들은 항상 조직의 하중을 견디는 ‘버퍼’였다. 위에서는 성과 압박과 책임을 요구받고, 아래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언어로 소통해야하고 그 또한 동시에 한계를 느낀다. 숫자와 사람 사이, 전략과 실행 사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매일 균형을 잡아야 하는 자리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 동기들이 그 자리에 섰다. 공식 직급 체계가 바뀌고 호칭이 달라졌어도 실질적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 ‘위로는 가장 만만한 책임자, 아래로는 일 시키기 어려운 세대’와 일을 해야 한다. 그들은 라인 사이사이에서 조직의 심리적 안전과 비즈니스 임팩트를 동시에 책임진다. KPI와 팀 사기, 고객과 구성원, 단기 실적과 중장기 전략이 모두 한 데 묶여 그들의 하루를 만든다.
부장이 되기 바로 직전 나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땐 그 이름을 달면 정말 새로운 변화는 어려울 것 같아서다. 대기업을 나왔다고 해서 커리어의 고민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환경이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다. ‘나의 일로 어떤 변화를 만들 것인가’, ‘어제보다 더 나은 의사결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자리와 호칭을 넘어, 커리어는 결국 ‘어떤 책임을 택하고 어떤 관계를 지키는가’의 문제다.
오늘도 대기업에서 치열하게 하루를 버티는 동기들의 등을 마음으로 두드린다. 드라마는 ‘김부장’을 희화화하지만, 현실의 ‘김부장’은 조직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대들보다. 그들이 없으면 프로젝트는 흐트러지고, 회의는 결론 없이 흩어지며, 신입은 성장의 기준을 잃는다. 그들의 고단함 위에 회사의 ‘일상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안다.
세상의 모든 부장님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오늘은 헛되지 않다.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미움받는 역할이지만, 그 사이에서 팀을 지키고 결과를 만들어낸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김부장 주변인들에게 묻고 싶다. ‘김부장’에게 최근에 안부를 물어본 적이 있는가. 농담의 소재로 삼기 전에, 한 번은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보자. 그들도 부장이 되기 전까지 지금의 당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며 치열하게 일했다.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선택하는 모든 ‘보이지 않는 리더’들을 격렬하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