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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는 삶

출근길에 만나는 세 명의 사람

by 크레쏭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뚜벅이가 된지 거의 4년이다.


이제는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출근길이다. 아침마다 만나는 사람 세 명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수십, 수백 명이지만 이 세 사람은 조금 특별하다. 출근하는 평일 5일 내내, 같은 시간에 마주치기 때문이다.


오전 8시 50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시간대에 신분당선 5번 출구 쪽 유리문을 밀고 나간다. 유리문 오른쪽 바닥에는 전날 밤부터 모아둔 동전통과 가방,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한 사람이 다소곳이 누워 있다. 남들은 바삐 출구를 빠져나가지만, 그에게는 어딘가 여유가 있다. 그 자리만 시간이 멈춘 듯 보이기도 한다. 1년쯤 반복해서 보니 오늘도 내 마음속으로 Say Hello! 인사를 건네며 계단을 오른다.


그는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길에서 잠을 자는 삶을 선택했다. 그래, 그것도 삶이다.


5번 출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만나는 또 한명의 사람이 보인다. 사계절 내내 같은 옷을 입고 서 있는 여성이다. 검은 옷에 검은 가방, 45도 각도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듯한 말을 반복한다. 세상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는 욕인지, 간절한 기도인지 알 수 없다. 퇴근할 때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아니 위치는 조금 더 앞 쪽에 있는 은행이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무엇을 하든, 그의 꾸준함만큼은 인정할 일이다.


그녀는 오늘도 길 위에서 하루를 버텨낸다.


회사로 가는 길에 스타벅스가 하나 있다. 내게 그곳은 카페인이 충전되는 방앗간이다.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오를 때 미리 사이렌오더를 켠다. 늘 시키던 블론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매장에 도착하면 곧바로 픽업한다. 그 날도 평소 루틴대로 매장 문을 열자 왼쪽 구석에 세 번째 사람이 앉아 있다.


큰 캐리어가 옆에 있고, 테이블 위에는 스타벅스 음료가 아닌 빈 음료수 병들이 빼곡하다. 머리는 며칠 감지 않은 듯 기름이 흐르고, 냄새도 나는 듯하다. 맨발로 신은 슬리퍼가 눈에 거슬린다. 그가 매장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왜 내보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는 스타벅스에 앉아있을 권리가 있다. 알고 보니 스타벅스는 음료를 시키지 않아도 매장에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다. 즉 누구에게나 같은 권리가 있다. 그런데 나는 그가 허름한 행색이고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그 권리를 부정하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었다.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또 어떤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을까?


어느 날,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소리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내일 또 올거야! 나는 여기 앉을 권리가 있어!"

그러나 경찰관이 말했다. "아니 매장에서 오지 말라고 했어요. 자꾸 이러시면 큰 일 납니다."

"왜? 내가 음료 시키면 되잖아~ 두고봐, 난 내일 또 올거야!"


그는 자신의 기준대로 오늘을 살아간다.


삶이란 모두에게 다른 모습이다. 내가 매일 길에서 만나는 그 세명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

사회적 기준이 말하는 성공한 모습이 아니어도, 그들은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도

사는게 거지 같아서 그만 두고 싶어도

그냥 살아내면 된다.

살아가는 그 자체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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