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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 게 별 거 Oct 27. 2020

진화하는 우정

 어제는 사장님, 오늘은 영수님?


지인들과 하나의 주제로 깊게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작년부터 <호밀밭의 씨네클럽>을 운영해왔어요. 주로 나와 동반자의 지인들이 오는데 서로를 소개할 때면 재밌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노랑 씨는 나의 전전 직장동료입니다. 파랑 씨는 나의 전전전 직장동료입니다. 이런 식으로요. 


여러 번의 이직과 전직을 하다 보면 호칭에 고민이 생겨요. 내가 사원이던 시절 대리님으로 불렀던 분이 만날 때마다 승진해 새로운 직함으로 불러야 할 때면 나는 화석처럼 먼 과거에 있었던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반대로 내 밑에 있던 친구가 승진하여 과장이 되기도 하고요. 박 대리라 부르다가 뒤늦게 승진 소식을 알고 멋쩍어한 경험도 있습니다. 


주임으로 퇴사하면 나이가 들어가도 난 그들에게 봉 주임이고 팀장으로 퇴사하면 여전히 봉 팀장이죠. 흘러가는 강물 속에 서 있는 돌이 된 듯한 묘한 기분을 아나요? 

(호칭 없이 OO님이나 닉네임을 쓰는 회사는 퇴사해도 현재성이 유지되지만요.)


순간 신석기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도 그건 잠시일 뿐 한순간 맞닿았던 인연을 이어가는 건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 냅니다. 직장동료를 직장동료가 아닌 상태로 만나면 직장에 다닐 때 나누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격 없이 나누게 돼요. ‘내가 회사를 관두지 않았더라면 이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얼마 전 예전에 다녔던 직장의 동료들을 만났어요. 작은 즐거움을 이야기하다가 인생 과자를 물어보았습니다. 정원은 인디언밥, 아름은 바나나킥이래요. 과자 한 봉지씩 품에 안고 떠들면 신나겠다 싶어 슈퍼로 향했습니다. 과자를 고르는데 에이스가 보여 장바구니에 같이 넣었습니다. 에이스는 우리가 함께 일했던 회사 사장님의 인생 과자예요. 헤어질 때 그림편지로 감아서 아름 편에 전달했습니다. 

사장님의 인생 과자 에이스.



사장님은 을지면옥에 가면 생각나는 사람이에요. 나에게 평양냉면의 세계를 알려준 미식가. 일 년 내내 연락 한번 없다가 을지면옥에 가면 불현듯 냉면 사진을 찍어 문자로 틱 보냅니다. 


“잘 지내시죠?” 

“오, 을지. 요새 을지면옥 맛이 어때요?”


평냉파의 투박한 우정은 냉면 맛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합니다. 


투박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에 무려 인생 과자를 비둘기에 묶어 보냈으니 이건 강력한 신호입니다. 곧 우리는 을지면옥에서 만났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서 “여기” 하며 반갑게 손을 흔듭니다. 자리에 앉으니 소주 한 병에 수육이 있네요. 관둔 지 오래되어 잠시 잊었던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사장님은 낮술이지.' 반가움이 커서 원래 좋아하지 않는 소주마저 달게 느껴집니다. 일을 같이하지 않으면 진정한 친구로 거듭날 수 있어요. (퇴사 권유는 아닙니다. 절대.)


내가 요새 글을 쓰고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무슨 글을 쓰냐고 물으시는 데 3초간 일시 정지가 되었습니다. 비디오 정지화면처럼 뚜뚜뚜.


“사장님, 제가 페미니스트인 거 아세요?”


별안간 커밍아웃에 놀랄 법도 하지만 사장님은 수십 년 사회생활의 신공을 발휘해 입꼬리조차 움찔하지 않은 채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그럴 거라 짐작했지요.”


그날 자 사장님 일기장의 주인공으로 등극할지도 모르겠어요. ‘봉 팀장은 페미였다.’ 


여성의 삶과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사장님은 글 쓰는 선배로서 이런저런 조언을 들려주었습니다. 사장님과 글 쓰는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남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말고 자주 보여줄 것도 없이 그냥 주욱 밀고 나가라고. 어디 수업 들으러 나다니지도 말고 집에 콕 틀어박혀서 계속 쓰라고 하십니다.


“오늘부터 당장 써요.”


냉면을 후루룩 마시고 나왔습니다. 사장님께 을지로 좀 아시느냐고 물으니 잘 모르신대요. 힙지로를 보여 드리겠다며 어깨를 한번 들썩였죠. 나도 사장님에게 어딘가 맛집을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우리는 세운상가 위 챔프 커피로 이동했어요. 바람이 솔솔 부는 야외에서 커피를 마시는 데 사장님이 물어봅니다.


“그런데 숭아 씨는 나를 왜 사장님이라고 불러요? 예전엔 대표님이라고 불렀잖아.”


예전에 일할 때도 호칭을 묻던 기억이 났습니다.


“봉 팀은 왜 나를 대표님이라고 불러요?”


그 이후부터였습니다. 사장님이란 호칭을 사용한 건. 나보다 회사에 오래 계셨던 분들이 다 사장님이라고 불렀거든요. 나만 대표님이라고 부르니 어색하신가 보다 했어요. 


대표님으로 부를까요? 물으니 작가가 남 생각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면 안 된다고 작가는 자기 생각대로 해야지 하십니다. 그리하여 작은 목소리로 영수님? 이름을 불러 보았습니다. 


보통은 회사를 나와도 직함으로 불리곤 합니다. 영수님은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엔 봉 팀장 대신 숭아 씨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더는 팀장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나는 관습적으로 대표님, 사장님이라고 불렀던 거죠. 사실 이제 우리는 개인 대 개인일 뿐인데요. 이제 알아차렸으니 영수님이 가장 적당한 호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영수님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을까 살피게 됩니다. 동시에 나는 작가가 되기엔 뼛속까지 타성에 젖어버린 게 아닐까 고민했어요. 고백하자면 그날 나는 딱 한 번 영수님으로 불렀습니다.


호칭. 언어의 힘은 큽니다. 언니-동생으로 설정된 관계와 친구-친구로 설정된 관계는 나이에 상관없이 다른 양상으로 우정이 발전됩니다. 직함을 없애고 서로 닉네임을 불렀던 회사에 다니면서 호칭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실감했었어요. 요즘 나에겐 나보다 나이가 적은 친구들이 많은데 서로의 이름을 영어 이름처럼 부르고 지냅니다. ‘숭아야’가 아니라 ‘숭아’ 이렇게요. (몇 년 전부터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언니라고 부르지 않도록 권합니다. 이럴 때 탄생화나 캐릭터로 이름을 부르면 재밌고 어색하지 않더라고요.)


호칭을 버리면 나와 다양한 형태로 맺어진 인연들이 좀 더 편안한 우정으로 나아가곤 합니다. 정형화된 관계의 압박에서 벗어나서 그럴까요? 그나저나 이번 을지면옥 냉면은 별로였어요. (갈 때마다 맛의 편차가 있음 주의) 영수님과는 올여름이 가기 전에 우래옥에서 다시 만날 예정입니다. 흡족하지 않은 평냉의 기억에 새로운 평냉의 맛을 입히기로 했어요. 우래옥에서 만날 때는 사장님도 대표님도 아닌 영수님으로 불러보는 미션을 스스로 내렸습니다. 영수님이라 부르질 못해 우래옥에 나가지 못하거나, 만나서 아예 한 번도 부르지 못하고 돌아올지도 몰라요. 과연 숭아는 영수를 영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번 질문은 진화하는 우정입니다.

처음 맺었던 관계에서 진화하고 있는 우정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호칭에 관련된 에피소드도 좋아요.


두 질문에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당신의 인생과자를 알려주세요.

슈퍼에 가면 손이 알아서 집어오는 과자가 있나요?

과자에 얽힌 추억, 과자 취향의 변천사, 과자에 얽힌 에피소드라면 어떤 이야기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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