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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지니의 시칠리아 자전거 여행 15

체팔루에서 캄포펠리체, 그리고 팔레르모

by 존과 지니

2017년 5월 11일


이동 경로 및 거리 : 체팔루 - 캄포펠리체 (15 km)

총 이동 거리 : 970 km



아침부터 날이 조금 흐리다. 비는 안 오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조식을 챙겨 먹고 츨발한다.


체팔루 시내를 벗어나니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기 시작한다.


너무 심한 바람이 일정한 방향 없이 이리저리 휘몰아치니 자전거가 휘청휘청 밀린다. 옆바람 한 번에 중앙선 근처까지 밀리기도 하는 위험한 상황이다.


변화무쌍한 맞바람 옆바람에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강풍이 불 때마다 도로 위에서 이리저리 밀려나는 것이 너무 위험해서 주유소에 딸려있는 매점에 들어가서 바람을 피한다. 음료수를 한 잔 하면서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데 도무지 답이 없다.


결국 자전거 타기를 중단하고 기차를 이용해서 팔레르모로 가기로 한다.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위험한 상황이라 라이딩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니 힘들고 불안했던 지니님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 캄포펠리체라는 마을은 워낙 작아서 팔레르모로 가는 기차가 하루에 몇 번 안 서는 곳이다. 바로 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기차로 체팔루에 되돌아간 후, 팔레르모 가는 기차를 타기로 한다.


드디어 기차가 왔다. 이탈리아의 기차에는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별도의 요금 없이 편하게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체팔루 대성당과 로카가 보인다. 왔던 길을 도로 되돌아가려니 조금 아깝다.


다시 체팔루에서 팔레르모 가는 기차를 잠깐 기다려서 탄다.


사람들이 우르르 타는데 천천히 줄서서 탄다. 자전거 두는 곳에 아무도 없으니 그냥 자전거를 두고 계단 쪽에 앉아서 간다. 당연한 것이지만 승무원이 돌아다니면서 기차표를 꼬박꼬박 검사한다. 종이를 프린트할 수는 없어 예약하면서 받은 이메일에 첨부된 PDF의 QR코드를 보여주면 된다.


팔레르모 중앙역에 도착했다. 팔레르모는 바람이 심하지는 않은데 매우 습하고 덥다. 갑작스런 기후 변화에 몸이 따라가질 못한다.


역 바로 앞에 있는 숙소에 예약을 해두었는데 주인이 나타나질 않는다. 일단 식사를 하고 오기로 한다.


허름하고 지저분한 차이나타운을 지나서 이리저리 한참을 헤매다가 어느 구석진 공원의 작은 밥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까르보나라와 알리오올리오를 주문했다. 각각 음료 포함 5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맛도 나쁘지 않다. 지니님은 면이 너무 익었다고 불만이다. 10유로가 넘는 스파게티만 먹다가 이 가격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식사를 하고 다시 숙소로 가서 한참을 기다리니 갑자기 숙소 문이 열리면서 주인 아주머니가 나온다.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과 날짜를 잘못 알고 준비도 안하고 있었나보다. 부랴부랴 숙소를 치워준다.

체크인을 하고 자전거도 숙소 입구 구석에 세워두었다. 이로써 시칠리아 자전거 여행은 끝났다.

이제 이틀간의 팔레르모 시내 구경을 시작한다.


시내 중간의 작은 골목에 자전거 공방들이 모여 있다. 유명 메이커의 제품도 팔면서 직접 자전거를 제작하는 곳도 있다. 귀국할 때 자전거를 포장하기 위한 박스를 구하러 온 것인데 남는 박스가 없다고 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콰트로 콴티(Quatro Canti)라는 사거리에 도착한다. 구시가의 가장 큰 도로 둘이 엇갈리는 사거리를 둘러싼 네 개의 건물들이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팔레르모 구시가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4개의 건물에 사계절을 상징하는 석상과 분수, 4명의 스페인 왕, 4명의 팔레르모 후원자(여성)이 있다. 이 콰트로칸티에서부터 뻗어나간 시가지의 건물들이 유럽 최초의 도시계획 중 하나라고 한다.


콰트로 칸티에서 서쪽으로 걸어가면 팔레르모 대성당이 있다. 시칠리아에서 보았던 성당 중에는 가장 크고 화려한 듯하다.


다시 콰트로 칸티를 지나 중앙역 쪽으로 걸어가니 법원 분수(Fontana Pretoria)라는 곳도 보인다. 뒤의 돔은 산타 카테리나 교회라고 하고 오른쪽 평범한 건물은 팔레르모 시청이라고 한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재래시장에 들른다. 농수산물이 풍성하긴 한데 딱히 무언가 사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서 저녁을 먹을까 하다가 숙소 근처의 트라토리아 트라파니라는 식당에 들른다. 숙소 아주머니도 추천하는 식당이었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무심히 지나칠 듯한 작은 간판과 작은 출입구를 열고 들어가 앉으니 할아버지 웨이터가 무심하게 맞아준다.


지니님은 로컬 와인,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마신 비라 모레띠ㅋ로 식전주를 마신다.


왠 노란 밀떡같은 것이 기본으로 제공되고 해산물 스파게티, 오징어 요리, 샐러드에 그날의 생선으로 먹는다. 피자만 안 먹어도 즐겁다.


다른 테이블의 여자 손님들이 생선을 주문했더니 웨이터 할아버지가 손수 뼈를 발라주는데 손님이 많아져서 그런지 우리는 안 발라준다. 내가 직접 뼈를 발라내고 생선 머릿살까지 싹 발라먹으니 웨이터 할아버지가 힐끗 보고 지나간다.


보통 음식을 세 접시 정도 주문하면 유명 관광지 레스토랑에선 50 유로는 나온다. 여긴 네 접시를 주문하고 술까지 마셔도 35유로라는 저렴한 가격에 맛있기까지 하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역 근처 식당은 지저분하거나 맛없는 곳이 많다는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는 맛있는 집이었다. 그런데, 팔레르모 자체는 그 동안 구질구질했다고 생각했던 카타니아, 메시나, 시라쿠사를 압도하는 구질구질한 동네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이탈리아에 간 김에 팔레르모에 많이 들른다고 하는데 시칠리아를 가장 재미없게 다녀가는 방법이다. 시칠리아를 들르는 사람이라면 팔레르모나 메시나보다는 아그리젠토나 카타니아 같은 곳을 들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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