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 몇 년을 있으면서 안 가본 곳이 있다. 바로 코 앞의 삼악산이다. 요즘 한참 등산을 하니 이제 삼악산도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사실 그동안 지니님이 몇 번 가자고 했는데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보니 괜히 삼악산은 미뤄두고 여기저기 다른 데로 돌아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지니님이 준비를 단단히 했다. 오늘 코스는 지니님만 믿고 따라간다. 등선폭포 주차장이 넓고 화장실도 깨끗하다고 한다.
매표소 근처에 4대 정도 주차할 유료주차장이 있긴 한데 우리처럼 느긋하게 늦게 오면 자리가 없다. 화장실도 간이 화장실이다.
자전거를 탈 때 여기서 사진 찍겠다고 자전거길을 죄다 막아놓고 사진 찍느라 난리인 등산객 패거리들을 자주 만났다. 실제로 등산객들은 주변을 살피지 않고 사진 찍다가 사고가 많이 난다.
의암 매표소에서 입장료 1인 당 2천 원을 내고, 발열 체크와 방명록을 쓰고 들어간다. 아까부터 화장실 타령을 했는데 이런 바위산은 당연히 중간에 화장실이 없으니 미리미리 다 처리해야 한다.
시작부터 바위가 많은 곳이다. 의암 매표소에서 올라가는 방향은 급경사길이다.
조금만 올라와도 의암호가 펼쳐진다. 산 사이에 의암 스카이워크가 있고 왼쪽으로 붕어섬이 보인다.
빈 건물이 하나 있다. 간단한 음식들을 파는 휴게소 같은 것이라는데 지금은 영업을 안 한다.
사진 찍는 사이에 지니님 혼자 저만치 가버렸다. 후다닥 쫓아간다. 바위가 많은 길이지만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다닐만하다.
조금 올라가면 상원사라는 절이 있다. 매우 작은 절이다. 크고 무거운 것을 옮기거나 할 때 여기까지 어떻게 가지고 올까...
상원사 왼쪽으로 돌아서 올라가면 본격적인 등산로의 시작이다. 깔딱고개라고 불리는 가파른 등산로다.
큰 바위 아래로 나오니 일단 깔딱고개는 끝난다. 매표소에서 겨우 1km인데 가파르다 보니 땀이 좀 난다.
깔딱고개를 올라왔으니 고생 끝일까? 이제 시작이다. 삼악산도 '악'산이다. 여기서부터는 암릉 구간이다. 그냥은 올라가기 힘든 바위에 금속 발판을 박고 난간을 만들어 올라갈 수 있게 해 놓았다.
어디를 밟아야 할지 오히려 잘 보이니 올라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발판만 잘 밟고 올라가면 된다. 철로 된 발판이 많아서 철계단 구간이라고도 한다.
정상까지 0.3km 남았다고 나온다. 가파르게 올라가니 고도가 금방 높아진다.
그렇다고 암릉 구간이 끝난 것도 아니다. 발판을 잘 밟고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게 재미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까보다 훨씬 높아진 시야를 느낄 수 있다. 붕어섬이 내려다보인다.
이쪽 구간에서 가장 애매한 곳이다. 어렵지는 않은데 발판을 따라 가면 발판이 빈 곳이 나온다. 지니님은 조금 내려가서 우회해서 올라온다.
아까 정상이 0.3km 라더니 0.48km로 늘었다?
암릉구간을 오르고 또 오른다. 아마 수락산을 먼저 다녀오지 않았다면 조금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오 봉우리가 나타났다. 여기가 정상인가? 했더니 지니님이 아니라고 한다.
여기는 가장 높은 주봉인 용화봉 가기 전에 지나게 되는 동봉이다. 춘천 쪽에 가장 가까우면서 장애물이 없는 봉우리라 그런지 전망데크를 잘 만들어놓았다. 춘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정상까지 200m 정도만 더 가면 된다고 한다.
그 200m도 생각보다 멀게 느껴진다. 어쨌든 삼악산의 주봉인 용화봉에 도착했다.
동봉에 전망데크를 잘 꾸며놓은 이유가 있다. 여기 용화봉에서는 춘천 시내가 조금 덜 보인다.
정상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지니님이 기가 막힌 간식을 챙겨 왔다. 산꼭대기에서 까먹는 한라봉 맛이 대단하다. 이런 과일 껍질은 썩어 없어진다고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산에 버리면 분해되는데 오래 걸리고 지저분해 보이는 쓰레기니 함부로 버리지 말고 챙겨 내려가야 한다.
이제 등선폭포 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깔딱고개와 철계단을 지나 힘들게 올라왔는데 내려가는 길은 부드럽다.
333계단으로 내려간다. 정말 333인지는 모르겠다. 계단이 오래되어 다 무너지고 불규칙적이다.
작은 초원이라는 곳을 지난다. 정말 숲 속의 작은 공터인데 겨울이라 풀이 없어 초원인지는 모르겠다.
내려가다 보니 집이 한 채 있다. 삼악 산성지라는데 산성이 있었던 흔적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얼어붙은 계곡을 따라 걸어간다. 아직 아이젠까지 할 정도의 눈밭은 아니다.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을 내려가다 보면 데크길이 있는 깊은 계곡으로 들어서게 된다.
데크길 옆으로 얼어붙은 물줄기가 멋지다. 주렴폭포라고 한다.
깊어 보이는 물웅덩이도 있다. 역시 물줄기가 쏟아지던 모습 그대로 얼어붙었다. 여기는 비룡폭포라고 한다.
또 맑은 물웅덩이가 있다. 옥녀담이다.
쉴 새 없는 폭포의 연속이다. 백련폭포다.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나는 방향으로 승학폭포 표시가 있다. 지금까지 폭포 많이 봤으니 그냥 건너뛴다? 아니지, 온 김에 보러 간다.
그리고... 조금 걸어 들어가니 얼어붙은 승학폭포는 정말 멋있었다. 안 보고 지나쳤으면 후회할 뻔했다.
지니님이 바위 위의 눈사람과 마주쳤다.
눈사람이 개구쟁이 같다. 마치 바로 옆의 산장을 지키는 문지기들인 듯하다.
데크길은 계속 이어진다. 이 데크길이 없었으면 지나다닐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골짜기를 지난다.
계곡 바닥이 저 밑에 있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멋진 폭포들을 보았는데 등선폭포는 어디 있는 거지? 등선폭포가 나왔다.
근처 강촌의 구곡폭포처럼 거대하진 않지만 깊은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멋지다.
아래에서 보니 왜 등선폭포인지 알 듯하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물줄기를 볼 수 있다. 겨울이라 더 멋진 듯하다.
이렇게 등선폭포를 보고 나면 계곡 사이로 건물들이 나타난다. 이제 다 내려왔구나.
좁은 골목에 식당들이 여럿 모여있다.
등선폭포의 깊은 협곡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 안내판도 있다.
등선폭포 매표소를 나오면 오늘 등산도 끝난다.
미루고 미루다가 다녀온 삼악산. 작은 산이라서 그리 기대하지 않고 갔다가 힘들게 암릉 코스를 기어오르고 내려올 때는 온갖 폭포를 볼 수 있는 아주 재미난 코스였다.
악 자가 붙은 산은 만만찮은 산인데 삼악산은 산의 규모와 높이가 작아서 그런지 그리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었다. 의암 매표소로 올라가서 등선폭포로 내려오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거꾸로 갔으면 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음지 쪽에 눈이 조금 쌓여 있었지만 스패츠와 아이젠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슬슬 본격적인 겨울 산행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