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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May 23. 2019

게으른 자의 글쓰기 패턴

어떻게든 쓰게 되는 네 가지 방법


  “집에서는 안 해요.”    


  한 방송에서 쉐프가 한 대답이다. 질문은 “집에서는 주로 어떤 요리를 하세요?”였다. 진행자와 출연자 그의 말에 소리 내 웃었다. 나도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화면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들었다. 당연한 일 아닌가?


  여느 직장인처럼 ‘마감’에 시달려왔다. 기간 안에 글이나 기획안을 제출하는 일을 10년쯤 했다. 이 정도 됐으면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직도 집까지 일을 가져가야 할 때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일까. 집에서 요하지 않는다는 쉐프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나도 퇴근 후에는 글쓰기가 싫었으니까.


  “글은 언제 써?”    


  책을 출간한 후 자주 들었던 질문이다. 나와 가까운 지인이라면 안다. 내가 얼마나 게으르고 주의가 산만한지. 언젠가 친오빠가 “너 같은 애들은 군대 좀 다녀와야 해. 그래야 정신 차리지!”라고 다그친 적이 있었다. 그 말에도 나는 “여군? 완전 멋있는데?”라고 대꾸할 뿐이었다.    




   

  밤에 썼다. 새벽에 썼다. 규칙적으로 썼다.

  회사와 글쓰기를 병행해 본 작가들이 조언한다. 그들은 대부분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글을 썼다고 했다. 나도 자극을 받아서 따라 해 본 적이 있는데, 늘 실패였다. 얼마간 마음잡고 쓰다가도 회사 일을 집에 들고 오면 모든 게 엉망이 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한 후에는 얼마간 노트북을 여는 것조차 싫다. 여기에 구차한 변명을 덧붙이자면 건강도 문제다. 갑상선이 좋지 않다. 20대 중반부터 지금껏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런 탓에 남보다 피로를 빨리 느끼는 편이다. 폭풍 업무 후에는 휴식이 필수다.     


조금만 더 읽으면 본론이 나와요!


  두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는 그릇이 아니다. 그럼에도 쓰는 건. 쓸데없는 호기심 덕분이다.

  자료조사를 하다가 흥미로운 영상이나 글을 발견하면 대충이라도 읽고 본다. ‘정말 최고였어’란 찬사가 쏟아지는 음식이나 영화는 먹고 본다. 동네에 새로운 가게를 발견하면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들어가 본다. 심지어는 카페에서 일하다가 옆 테이블 대화가 흥미진진하면, 슬쩍 이어폰을 뺀다. 얼마 전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싸우는 커플을 보다가. 버스를 놓친 적도 있었다. 여자의 “너 자꾸 구라 칠래? 내가 증거도 없이 의심할 것 같아?”라는 말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둥. 어떤 증거일까. 슬쩍 귀를 열고 다음 버스를 기다렸지만, 끝내 그 증거에 대해서는 들을 수 없었다.       



    

  나도 궁금했다. 게으르고 호기심 가득한 내가 어떻게 글을 쓰고 있던 건지. 정리해 보니 나는 내게는 네 가지 글쓰기 패턴이 있었다.

   

  첫 번째는, 스마트폰 활용이다.

 

  사실 내게도 스마트폰은 적이다. 내 인생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연애, 결혼, 출산 이혼 소식을 읽으며 몇 시간을 보낸다거나. 끝없이 노출되는 광고로 인해 필요 없는 물건을 결제한다거나. 단체 대화방에 쌓여있는 메시지를 읽기 위해 점심시간을 날리기도 한다. 그리고 종일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손목터널 증후군도 생겼다.


이미 중독 됐잖아. 이렇게 된 거 그냥 이용하자!


  하지만 스마트폰이 신통방통한 놈이란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잘만 활용하면 글쓰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일단 카카오톡을 포함한 앱 알람을 무음으로 바꿨고. 뜨지 않게 했다. 그 후 메인 화면에 메모장과 팟캐스트 앱을 배치했다. 출근길에 작은 화면으로 포털사이트나 SNS를 보는 대신, 팟캐스트를 들으려고 노력한다. 화면을 보면 자꾸만 삼천포로 빠지지만, 듣기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눈과 손목 건강도 지킬 수 있고, 쓸만한 정보 좋은 문장을 얻게 되는 경우도 꽤 된다. 가끔 듣다가 잠들기도 한다. 숙면 효과도 보증한다.


  본격적으로 글쓰기에도 스마트폰은 유용하다. 나는 노트북이 없다. 결혼하면서 쓰던 걸 조카에게 줬다. 그 후 사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5년이 흘렀다. 급할 때는 회사 노트북을 쓰고, 가끔 남편 노트북을 빌려 쓴다. 회사 업무가 아닌 글의 초안은 스마트폰으로 정리할 때가 많다. 잠들기 전, 출근길, 퇴근길, 산책 중일 때, 여행 갔을 때,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생각나는 이야기와 문장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해 둔다. 그 후에 제대로 정리할 때 노트북을 빌려서 쓴다.

  나는 늘 마음만 먹고 안 하는 게 왜 이렇게 많은지. 올해는 꼭 노트북을 살 생각이다. 그러나 내 노트북이 생긴다고 더 많은 글을 쓰진 않을 것 같다. 휴.


  두 번째는, 회사에서 하는 딴짓이다.

  나의 집중력은 일관성이 없다. 어떤 날은 신내림 받은 것처럼 후딱 잘 써지고. 또 어떤 날은 아무리 앉아 있어도 써지지 않거나. 읽고 또 읽어도 만족스럽지가 않아 수정을 거듭하다가. 글이 엉망진창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집중이 안 될 때는 아예 딴짓한다. 끄적끄적 스마트폰에 적어둔 글을 노트북으로 옮겨 쓰는 것이다. 과거에는 일하기 싫을 때 실시간 검색어를 클릭하거나. 쇼핑몰을 본다거나. 친구와 메시지로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에 쫓기면 늘 자책하고 후회하곤 했다.


딴짓하며 딴 재능을 찾아보십시오...


  이런 이유로 책도 기본 세 권을 돌려가며 읽는다. 재미없으면 딴 책 읽고. 지루하면 딴 책 읽고. 어려우면 딴 책을 읽는다. 이렇게 읽다 보면 정독하는 책은 결국 한 권뿐이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읽지 않으면, 한 권 책도 읽지 않을 듯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회사 글이 막힐 때면 다른 글을 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퇴근 후에 규칙적으로 쓰는 건 불가능하다. 일도 있고, 기분 탓도 있고, 등등 이유는 많다. 그래서 회사에 앉아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가끔은 회사에 일찍 출근하고, 또 가끔은 점심시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쩐지 회사에서 딴짓하면 집중력도 상승하고, 막혔던 업무도 잘 풀릴 때가 많다.     



  세 번째는, 색다른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기다.

  

  한 달에 최소 한 번은 글쓰기 모임에 나간다. 드라마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스터디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늘 대본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 배울 기회가 충분할 줄 알았는데 ‘드라마 대본 수업’은 딱 한 번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방학 때 시나리오 특강을 수강한 적이 있는데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까지만 써봐서 그런지. 늘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에는 스터디가 부담스러웠다. 한 주는 합평만 하더라도, 그다음에는 글을 제출해야 했다. 무엇이든 쓰기 위해 여기저기서 대본을 구해 읽었다. 이제껏 내가 써온 글들과 달랐다. 공부가 필요했다. 끄적끄적 쓰면서 고개는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써도 될까? 글 쓰는 일을 다양하게 해왔건만 대본 앞에서는 ‘초짜’였다. 기본을 모른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다.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다. 다시 초짜가 되고 보니. 모든 게 새롭고 재밌었다. 회사 업무를 하거나. 에세이를 쓸 때 도움이 많이 됐다. 특히 쓰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에너지가 생기고 목적이 생기는 일이다.

 


  마지막은, 마감일 정하기다.

  마감이라면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보니 ‘마감’이 필요했다. 게으른 데다 싫증까지 잘 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크고 작은 목표가 효과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스터디도 이런 이유로 들어가게 됐다. 안 써가면 안 되니까. 결국, 쓰게 된다. 이 외에도 2년 전부터는 매년 한 공모전에 글을 내고 있다. 당연히 당선되지 않았다. 일단은 매년 한 작품이라도 쓴다는 데 의미를 둔다. 떨어지더라도 당선작품은 읽어보며, 내가 부족했던 점과 보완할 점이 무엇인지 점검해 본다.


모두 잘 쓰게 될 테니 걱정 마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절대 무리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당장 내게 돈을 주는 곳은 회사다.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쉴 틈 없이 쓰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즐기면서 쓰고 싶다면 놀고, 자고, 넋 놓는 시간도 확보되어야 한다. 힘들 때 글 쓰는 사람, 기쁠 때 글 쓰는 사람, 시간 될 때 글 쓰는 사람이 있다. 나는 마지막 경우에 속한다. 성격이 급한 편이지만 글만큼은 느긋하게 쓰고자 한다.        




  기분 탓인지. 쓰고 보니 내가 부지런한 사람 같다. 매일 옆에서 보는 남편도 내게 게으르고 싫증을 잘 내서 큰일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걸까. 왜곡한 건 없는데, 정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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