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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May 16. 2019

안티의 취향을 저격하다

글쓰기 팁9. 무게를 견뎌라


  이천십팔년.

  끝을 살짝만 올려도 상스럽게 들리는 해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느낌이 적중했다.

  전세 만기를 앞두고 집을 매매하려니. 집값이 하늘을 뚫을 기세로 올랐다. 어쩔 수 없이 매매하려던 후보지 세 군대를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회사는 더했다. 반년 동안 팀장 자리가 네 번이나 교체됐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자발적으로 사표 쓴 팀장이 한 명. 회사에서 권고사직으로 자른 팀장이 두 명이었다. 매달 큰 프로젝트가 진행됐지만 책임자가 없다 보니. 갈등이 깊어졌다. 그사이 나도 욱하는 마음에 퇴사하겠다고 했다가. 대출금 액수에 정신이 혼미해져 마음을 잡고 사표를 찢어버렸다.

퇴사할 때 회사에게 하고픈 말


  덕분에 한 해 동안 스트레스성 탈모, 공황장애, 대상포진 외에 자잘한 질병까지. 컨디션 좋은 날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날도 그랬다. 케케묵은 감정이 폭발해 본사 담당자와 다정한 말투로 실랑이를 벌이던 중이었다. 그때, 드르륵. 문자메시지가 왔다.


  ‘작가님,

  우수 출판물 선정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 책이 선정됐답니다.

  축하드려요. 서둘러 출간 준비토록 할게요.

  기쁜 주말 보내시길!!’    


  출판사 편집자님의 권유로 <우수 출판 콘텐츠 지원 사업>에 서류를 접수했었다. 나도 그렇고, 편집자님도 그렇고, 기대는 없었다. 둘 다 성격인 것인지. 의지를 불태우기보다는 그저 허허실실 웃으며 ‘기대하지 말고, 천천히 출간 준비합시다’라고 했었다. 그 후 이런저런 일들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이 일에 대해서 까마득히 잊게 됐다.

  내 책이 이천십팔년 우수 콘텐츠라니.   


  “미치겠다. 진짜. 히히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키득거리는 것 뿐


  속으로 생각한 줄 알았는데,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마주 앉아 있던 담당자가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데 입꼬리가 덜덜 떨렸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수정해 볼게요.”    


  못하겠다던 일을 흔쾌히 승낙했다. 30분간 벌였던 싸움이 무색해졌다.    

    

  회의가 끝난 후, 관련 사업이 진행된 기관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결과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클릭하니, 진짜 내 작품과 이름이 있었다. 우히히. 다시 실없는 웃음이 흘렀다. 대체 누가 날 뽑아준 걸까. 궁금해서 심사위원 명단을 확인했다. 그러다 거기서 A교수님 이름을 발견했다. 에이 설마. 양손으로 눈 마사지에 들어갔다. 그쯤 야근이 많아서 자꾸만 헛소리를 듣고, 헛것을 보곤 했다. 다시 봤다. A교수님 이름이 그대로 있었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네, 싶었다.     



    

  대학 시절 내내 A 교수님께 칭찬받아본 기억이 없다. 절대 인색한 분은 아니었다. 늘 붙어 다니던 동기에게는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 동기는 내가 봐도 부러울 정도로 글을 잘 썼다. 교수님 역시 그 재능을 알아본 것이고, 나는 그 동기와 친해서 늘 함께 있던 것뿐이었다. 누구도 나쁜 의도는 없었고,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옆에서 어렴풋이 알게 됐다. 나에게는 글쓰기 재능이 없다는 것을.     


친구가 칭찬 받을 때, 나도 진심으로 기뻤다


  열심히 해. 노력해. 안 되는 게 어딨어.

  이런 말이 싫었다. 죽어라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란 말이 더욱더 믿음직했다. 빠른 포기가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했다. 졸업과 동시에 작가, 등단, 출간과 같은 ‘꿈꾸던 단어’들을 지웠다. 간절하게 바라는 일일수록 이뤄지지 않았다. 노력할수록 포기하는 시간이 당겨졌다. 뿌옇게 가려진 먼 미래보다, 선명한 오늘 하루에 집중했다. 이런 게 어른인 건가? 현실은 이런 건가? 가끔 헷갈렸지만, 결국 적응했다. 집착하던 일들에 애쓰지 않게 됐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재능이 없다는 걸 확신하자. 쓰는 일이 수월해졌다.  



    

  그날은 참으로 이상했다.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기분 좋은 불면증이랄까. 내가 글을 쓴다는 걸 아는 몇몇 지인에게 소식을 전해놓고도, 손이 근질거렸다. 뒤척이다가 브런치를 열었다. 뜸했던 알람 표시가 보였다. 확인해보니 새로운 독자가 내 브런치를 구독한다는 소식이었다. 이어서 라이켓도 꾸욱 눌려 있었다. 내 글에 관심을 보이는 그분이 고마웠다. 그래서 침침한 눈을 부릅뜨고 프로필 사진을 봤다. 어라.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한참을 뚫어지게 보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솔직히 말할게. 네 글 별로야. 아니, 쓰레기야.”    


언니가 조금만 덜 무섭게 취했어도, 나도 할 말이 있었는데

  대학 때 한 영화감독님의 시나리오 특강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함께 수업을 듣던 언니였다. 한 달간 총 네 번 진행된 수업의 마지막 날. 뒤풀이 장소에서 술에 잔뜩 취한 언니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내 첫 트리트먼트에 대해 해 줄 말이 있다고 했다. 맞다. 언니는 저렇게 얘기해줬다. 별로라고. 쓰레기라고. 덕분에 시나리오 정규 수업은 신청하지 않았다. 돈이 굳은 셈이었다. 



   

  이천십팔 년. 상스럽고 지독했던 그해.

  내 글을 싫어하던 두 명의 안티로부터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다. 재능 없이도 쭉 글을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신호였다. 그런 탓인지. 출간 마무리 작업은 아픈 몸으로도 팔팔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책도 팔월 팔일날 세상에 튀어나왔다. 그런데 막판에 실수를 좀 했다. 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지나치게 간절해졌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간절히 바라면 대체로 이뤄지지 않는다.  

   

  책은 뜨뜻미지근하게 판매됐다. 들뜨지 말 걸 그랬다. 간절하지 말 걸 그랬어.  



꿀팁 없는 글팁9 


무게를 견뎌라    



  이천십팔년. 내가 가장 사랑한 작가는 단연 《회색 인간》을 쓴 김동식 소설가다.


  서점에서 여러 번 그의 책과 마주쳤지만, 어쩐지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펼치지 않았었다. 그러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책이 눈에 띄는 자리에 놓여있는 걸 보고 호기심에 집어 들었다.

  이게 시작이었다. 그날 《회색 인간》을 사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그의 다른 책들을 대출했다. 밤에는 오디오 북으로, 낮에는 책으로, 그의 소설을 읽었다. 까도 까도 새로운 양파 같으니라고. 대체 언제까지 나를 놀라게 할는지. 김동식 작가의 소설은 신선했고, 재밌었고, 깊었다. 뭐랄까. 사람들이 지긋지긋하게 우려낸 그 말. ‘지금까지 이런 소설은 없었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은 그를 ‘공장 노동자 출신 작가’라고 불렀다. 나는 이 점은 놀랍지 않았다. 학력과 상관없이 글을 잘 쓰는 작가는 많았으니까.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건. 그가 글을 배운 방식이었다.     


   “첫 글을 쓸 때는 포털사이트에서 ‘글 잘 쓰는 방법’을 검색해 ‘간결해야 한다’, ‘쉬워야 한다’는 등 정보를 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 계속 쓰다 보니 독자들이 맞춤법이나 개연성, 문장 구성 등을 댓글로 알려줬다. (…) 댓글을 통해 글이 꾸준히 발전한 것 같다.”                                  <투데이 신문 인터뷰 중>    


  유머 게시판에 짧은 공포 글을 올리는 일이, 김동식 작가의 글쓰기 시작이었다. 그는 많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댓글’로 ‘글쓰기’를 배웠다고. 나는 기사를 읽다 말고 경박한 톤으로 ‘대~박’을 여러 번 외쳤다. 두 가지 의미에서였다.


  하나는 작가의 ‘철갑 멘털’ 때문이었다. 친절하게 맞춤법과 개연성을 알려주는 댓글도 있었겠지만, 비난과 욕설만 해대는 익명의 댓글도 있었을 것이다.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고, 악플이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런데도 부지런하게 300여 편이 넘는 글을 올리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의미는 쓴소리에 대처하는 자세였다. 나는 이 점이 가장 부러웠다. 댓글로 지적당한 부분을 과감하게 고치고, 바꿔서 써보다니. 잠시 <서민 갑부>란 프로그램의 재연 장면이 스쳤다. 언뜻 어렵지 않 일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실제로 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여 주는 글을 쓴다는 건 ‘무게를 견디는 일’이다. 칭찬과 공감만 기대할 순 없다. 때로는 실수를 인정하고, 지적을 수용하고,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건. 그 속에서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콩만 한 악플에도 멘탈 뽀개지는 1인!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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