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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Nov 25. 2022

어떤 순간, 어떤 사람

산타모니카 비치에서 만난 그들

최근 캘리포니아 주에 잠시 머물다 왔다. 남편의 출장 일정이 끝날 때쯤 합류하여 잠시 여행을 하게 된 것이었다. 렌터카를 끌고 산타모니카 비치로 향하던 어느 날. 파아란 하늘과 뜨겁게 화창해서 기분까지 쨍해지던 캘리포니아 특유의 감성에 취해 있을 때였다. 주차를 하려던 순간 타이어에 펑크가 나버린 대참사가 일어나버렸다. 입구가 아닌 길 하단에 뾰족한 쇳덩이를 깔아 둔 것이었는데 순간의 착각으로 그곳에 진입하게 된 것이었다. 이곳의 강력한 엄포에 당황하던 순간. 우측 뒷바퀴가 쉬유우웅~~ 소리를 내며 힘 없이 꺼져갔다. 한국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타이어 펑크였기에 순간 멍해졌고 곧이어 손 발이 차가워질 정도로 당황했다.


렌터카 업체에 전화를 걸었으나 직접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한 후 카센터를 가라는 통상적인 안내뿐이었고, 스페어타이어를 교체할 사람을 보내주게 될 경우 2~3시간을 이곳에서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비용 또한 터무니없었다. 슬프게도 이 날은 주말이었기에 영업을 하지 않는 카센터들이 많았고 심지어 곧 영업을 종료할 시간이었다. 가장 시급한 건 차를 움직이기 위해 스페어타이어로 먼저 교체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직접 교체한 경험이 없었고 안전이 달린 일이기에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국의 긴급 출동 서비스가 그리워지던 순간.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석양이 지고 있었다. 분명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난처한 그 순간. 빨간 바지를 입은 라이프 가드 한 명을 마주쳤고 그에게 근처의 카센터 정보와 스페어타이어를 교체하는 방법 등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우리에게 그는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이며 직접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곧이어 상황을 들은 그의 동료 한 명도 현장으로 다가와 잠시 차를 피더니 펑크 난 타이어를 스페어타이어로 능숙하게 교체해주었다. 차가운 맨바닥에 누워 작업하는 그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자 스트레칭을 하는 중이라며 유쾌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스페어타이어로 교체된 차량은 다행히 중심을 잡았고 너무 고마워 식사값이라도 주려하자 한사코 거절하더니 도망가 듯 사라지며 그저 즐겁게 여행을 즐기라며 긍정에 긍정을 더한 행운의 말들을 되려 선물해줬다.


스페어타이어만으로는 숙소까지 가기에 무리가 있었기에 근처의 카센터로 가 한번 더 타이어를 교체해야 했다. 주말이라 얼마 되지 않던 영업 중인 카센터들 마저 곧 문을 닫을 시간이었기에 우리는 산타모니카 비치를 즐기는 것은 포기하고 어둡고 낯선 길들을 한참 찾아 헤매며 또 한 번 식은땀을 여러 번 흘려야 했지만 유쾌한 그들의 응원을 떠올리며 그 순간들을 버텨냈다.


하필 왜 내게 이런 일이 있어 난 걸까 자책하며 부정적 기운에 휩싸여 어쩔 줄 모르던 순간. 유쾌한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주며 선뜻 도움을 주던 그들의 선의는 아직도 내 입가에 웃음을 띠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자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곱씹어 볼 수 있도록 고이 간직하게 되는 소중한 기억이다.


어떤 순간을 떠올릴 때 부정적, 긍정적 판단의 중심이 되는 요소는 풍경과 날씨 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에 따라 가장 크게 좌지우지되곤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교감했느냐에 따라 따듯한 순간이 되기도 하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순간이 되기도 하니까. 비록 타이어의 바람은 빠져나갔지만 인류애를 빵빵하게 충전하게 된 그날의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간혹 마주친 무례한 사람들로 인류애가 바사삭 메마를 때마다 따듯하고 여유 있던 그들을 미소를 떠올리며 나 또한 인류애 충전의 선순환에 동참해보겠노라 다짐해본다.



타이어를 교체한 뒤에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온 산타모니카 비치의 아름다운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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