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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Sep 15. 2022

도서관 산책

마음이 흩날릴 때면 집 근처 도서관에 자주 방문한다. 십여 년 전인 고등학생 때부터 들락거리던 곳으로 당시에는 마치 공부만 해야 할 것 같던 독서실 같은 분위기였으나 몇 년 전 리모델링을 한 뒤에는 자유로운 테이블 배치, 밝은 채광이 들어오는 창가 자리 등. 음료만 없을 뿐 북카페를 연상하게 만들어주는 감성적인 공간으로 변신했다.


집에서 도보 7분 거리에 위치한 도서관이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발길을 끊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 시기에는 책이 읽고 싶으면 무조건 서점에 가서 빳빳한 새 책을 샀다. 한번 읽은 새 책들이 방 한편 책꽂이를 가득 채우다가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거실 구석구석까지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중 마음에 들어서 두고두고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은 약 20% 정도. 때때로 필요한 책을 구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용과 공간 절약을 위해 도서관을 자주 애용하기로 했다. 서랍 안에서 고이 잠자고 있던 빛바랜 가죽 지갑 안에 있던 대출 카드를 자주 들고 다니는 빳빳한 카드 지갑 한편에 꼽았다. 운동을 가거나 집에 돌아 가는 길, 또 혼자만의 생각에 취해보고 싶을 때 도서관에 들러 대출카드의 바코드를 열심히 닳게 하였다.


어린 시절 주름 하나 없이 생기로가득한 엄마의 하얀 손을 꼭 쥐고 구립 도서관에 놀러 다니 듯 다니던 적이 있었다. 엄마의 반대편 손에는 나보다 더 어린, 한글을 이제 막 동생의 앙증맞은 손이 잡혀있었다. 어린이 열람실에서 읽고 싶은 그림책을 꺼내 읽기도 하고 공책을 펼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엎드려서 졸기도 하다가 성인 열람실을 흘끔 대곤 했다. 어린이 열람실이 아닌 성인 열람실에 앉아 무언가 두꺼운 청록색의, 누런색의, 검은색의 두툼한 책 표지와 그 속에 담긴 빽빽하고 작은 글씨들에 레이저를 쏘고 있던 그들이 근사해 보였다. 당시 구립 도서관 지하에는 식당이 있었고 나는 그곳멸치 국수를 좋아했다. 도서관 앞의 작은 정원에는 청춘의 싱그러움을 쓴 언니 오빠들이, 괜스레 지적여보이는 어른들이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고 어린 나는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정원 한편 흙 속의 개미를 찾아내며 손톱 속에 가득 갈색의 흙을 채워 넣곤 했다.


성인 열람실을 갈망하던 어린아이는 이십여 년이 지나 반대로 어린이 열람실을 괜히 흘끔거려본다. 동물 캐릭터로 가득한 공간 안에서 뒹굴대며 책을 읽는 아이, 엄마나 아빠의 성화에 억지로 숙제를 하다가 눈물을 찔끔 짜는 아이들이 눈 안에 담긴다. 여유 시간이 없을 땐 읽고 싶었던 장르의 책을 대출하여 바로 나오곤 하지만 짬을 낼 시간이 있을 땐 초록색 나뭇잎이 흩날리는 것이 직관적으로 보이기에 가장 좋아하는 창가 구석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책장으로 가득 쌓인 통로를 찬찬히 걷는다. 꼬릿 한 듯 구수한 종이 냄새를 맡으며 아날로그 감성에 취해본다. 다른 세계에 취해보고 싶을 땐 소설책을 읽어보고, 다른 누군가의 삶과 생각을 느껴보고 편안하게 느껴보고 싶을 땐 에세이를, 한 발짝 더 도약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땐 자기 개발서를, 부족한 분야의 지적 수준을 챙겨주기 위해 해당 분야의 전문 서적을 찾아내 본다. 대체적으로 검색보단 순간적인 읽고 싶은 의지에 집중해서 고르는 편이다. 그중 기대에 못 미치는 책도 간혹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한 권을 뚝딱 읽어버리게 만들던 보물 집도 있다.


보물을 찾는 재미에 취해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자주 들락날락하다 보면 소소한 풍경에 익숙해지다가 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언가에 집중하다 지쳐 꾸벅 조는 누군가의 짧은 단잠, 샤륵 샤륵 책장 넘기는 소리, 신발 소리를 최대한 죽이기 위해 조심스레 걷지만 본래의 단단한 굽의 힘을 숨길 수 없던 누군가의 또-오각 소리, 어떤 샌들 신은 발의 가벼운 챱챱챱 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강가를 산책하는 것 또한 즐겁지만 이렇게 감정의 풍요를 느낄 수 있는 도서관 산책 또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롭고 싶지 않은 이중적인 감정에 취한 누군가가 있다면 가까운 도서관을 산책해보라고 속삭여주고 싶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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