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느린 발걸음

by 안나

낮에는 봄이 곧 떠나버릴 것만 같고 밤엔 봄이 채 오지 않을 것 같은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초록, 분홍, 노랑, 연두 등. 여러 물감으로 물들인 듯한 다채로운 색상들이 시야에 담긴다. 동시에 습관처럼 재빠르게 옮기던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된다.


어제는 걸어서 10분 만에 도착했을 헬스장에 3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빠른 길을 두고 굳이 느린 길로 걷고 싶은 충동에 일부러 져버린 것이었다. 늘 가던 길이 아닌 꼬불 꼬불 낯선 길들이 매력적이어서.


연한 연두, 진한 연두, 보통의 연두들이 싱그러움을 선물해줬고, 초록, 분홍, 노랑의 달달함에도 취해버렸다. 햇살의 과하지 않은 눈부심과 머리카락이 뻗치지 않을 정도의 기분 좋은 살랑바람.


매일같이 최적의 경로만을 찾으며 빠르게 움직이던 내가 놓치던 것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찰나의 기쁨들을 더 오래도록 즐기고 싶어서 자꾸만 느리게 걸었고, 익숙하지 않은 길로 돌고 돌았다.


폭염으로 밖에 오래 있기에 건강이 위협을 받기 전 까지는 느린 발걸음을 계속 장착해야겠다. 낯설고 먼 길의 매력을 자꾸만 찾아내며. 동시에 최단거리의 효율성이라는 유혹에 갇혀있던 내 좁은 시야가 더욱 다채로워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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