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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20. 2019

연인의 부모님에게 쓰는 편지

아흔아홉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아버님, 어머님께


지난 추석 때 처음 편지를 드린 이후로 3달 정도가 지난 것 같아요. 편지를 주고받을 일이 많이 없어진 나날들이라, 딸의 남자친구가 보내온 편지 한 통이 어색하시진 않았을까 궁금하네요. 어색한 만큼 소중한 인상을 남겼기를 바라며, 오늘은 신년 인사를 겸해 또 고운 단어들을 조금씩 모아 글 한 편을 써보려고 해요.


 지난여름 즈음일까,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는 자신이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부모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마음에나 몸에나 이리저리 생채기가 나가며 보듬은 아이니까, 자신이 어떻게 크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의 도리가 아닐까 싶었던 것 같아요.


 콩 아가씨는 아마도 좋은 딸일 거예요. 아빠한테 어떻게 애교를 부려야 할지 남자친구와 머리를 맞대는 딸이니까, 조금 서툴지는 몰라도 마음은 한없이 예쁜 딸일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은 가족에게도 조금 수줍은 구석이 있어서, 오늘은 우리의 아가씨가 여행을 간 틈을 타 제가 대신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해요. 이 아이가 어떻게 크고 있는지, 우리가 사랑하는 이 아가씨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정확히 어떤 문장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콩이와 사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왜 나를 좋아하느냐는 투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유난히 길이 조용했던 그 날에 저는 '표정이 풍부해서, 그 많은 표정이 다 예뻐 보여서 좋아한다'라는 대답을 해주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친구가 물은 같은 질문에는 조금 다르게 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라고요.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누나는 매일 일기를 적고 있어요. 가끔씩 시간이 부족해 하루 이틀 밀릴 때가 있긴 하지만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적어 낸 그 일기장 속을 들여다보면 항상 이런저런 반성 거리들이 담겨 있습니다. 생각을 잘못했던 것들, 말을 잘못했던 것들.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던 것들, 더 잘하고 싶은 것들. 그중에는 정말 사소한 것들도 있고, 작고 귀여운 고민들도 많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여 생긴 마음이라는 것은 참 사랑스럽기 그지없죠.


 겉으로 많이 드러나진 않지만 누나는 사람을 많이 좋아해요.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을 대할 때면 머릿속이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하고,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좋아할지 궁리하기 시작하죠. 아쉽게도 아직은 모르는 것이 많아서 그 생각들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에요. 실수도 많고, 마음이 많이 어려서 작은 실수들에 마음을 다쳐올 때도 많죠. 지난 교토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얼마나 반성을 하던지. 그래도 지난 4년 동안을 지켜보면 누나는 차츰차츰 더 나은 답안을, 더 단단한 답안을 적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요령이 없다는 소리에 반나절 마음이 울상이 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친구를 대할 때도 어른을 대할 때도 나름의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는 것 같아 보여요.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20대 여자아이다운 고민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지만, 조금 더 당차고 자신 있게 자신의 모습을 내비칠 줄도 알게 되었고. 모든 이들에게는 숨어 있는 사정이 있어서 한 발자국 뒤에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참 어른스러워졌다는 생각도 가끔 들어요. 하루 종일 서점에 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오는 날도 생겼고,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이죠.


 새로운 것을 꺼리고 어려워했었는데, 요즘에는 낯선 것들도 해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혼자 해내고 싶다'라고. 달라지고 싶어서, 낯선 곳에서 혼자 힘으로 여행을 다녀와 보고 싶다고 하더랍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곁에서 열심히 도왔는데, 안 울고 잘하고 있을까요. 고생이야 조금 하겠지만, 그래도 다녀온 후에 우리 아가씨는 정말로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따뜻하지만 더 단단하고, 담백하지만 바르게 마음이 서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오겠죠.


 둘이 있을 때면 사진을 참 많이 찍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간혹 사진을 찍다가 표정이 어색해 보이면, 저는 사진기를 내리고 저를 바라보라고 해요. 잠깐 그러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 안에는 제가 평소에 보는 그 예쁜 모습이 담겨 나오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긴 하지만, 우리 아가씨는 편안할 때와 아닐 때의 차이가 정말 큰 것 같아요. 표정뿐만 아니라 생각도, 편안하지 않을 때는 평소만큼 예쁘게 나오지가 않죠.


 그래서 저는 누나를 다그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귀어 서로를 아껴주기 시작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어떻게 변해달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어요. 그저 믿고 기다리고, 열심히 더 나아지려는 모습을 곁에서 도와주기만 해도 더 예쁜 사람이 되어주었거든요. 그렇게 같이 열심히 세상 구경을 하다 보니, 이제야 누나는 세상이 좀 편안해지나 봐요.


 참 예쁜 사람이라, 저는 앞으로도 언제나 이 아이 곁에 서있으려고 해요. 손을 잡고 같이 걸으며 더 고운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고, 또 그런 사람에 어울리는 바른 사람이 되려 노력하며 이 한 해를 보낼 생각이에요. 아버님, 어머님의 새해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딸이 사랑받고 있는 모습은 자주 보실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언제나 예쁜 딸 빌려주셔서 감사드리고, 기회가 되면 손에 타르트 한 상자 들고 찾아뵙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2018년 1월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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