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인도: 아쌈
구와 하티에서 동쪽으로 다섯 시간. 덜컹거리는 버스가 멈춰 선 곳은 아삼주의 작은 마을, 코호라(Kohora)였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인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야생 보호구역, 카지랑가 국립공원(Kaziranga National Park)의 관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뿔코뿔소가 살아 ‘외뿔코뿔소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여행에서 끝내 들르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린 것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이번엔 일부러 카메라까지 챙겨 들고, 그 미완의 마음에 마침표를 찍으러 왔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아삼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바로 옆에는 국립공원 사파리 티켓 오피스가 붙어 있어 다음 날 새벽 코끼리 사파리를 예약하기도 수월했다. 일정이 정해지자 마음이 한결 느슨해졌다. 남은 오후, 나는 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시골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구슬치기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문득 한국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장면이 겹쳐졌다. 전혀 다른 땅에서, 같은 놀이를 하는 모습이 낯설고도 정겨웠다. 여행은 결국 ‘다름’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뜻밖의 ‘닮음’을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숙소에서 큰길까지는 500미터 남짓. 큰길로 가는 주변은 온통 차밭이었다. 저녁을 먹고 어둑해질 무렵 다시 숙소밖으로 나섰을 때, 나무 사이 어딘가에서 형광빛이 번쩍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반딧불이.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반딧불이들이 숲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반딧불이 투어를 여러 번 해봤지만, 이렇게 깊고 영롱한 빛은 처음이었다.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는 장면. 결국 남는 건 눈과 마음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빛들을 바라보며, 말 대신 숨을 고르는 쪽을 택했다.
이튿날 새벽, 코끼리 사파리를 위해 일찍 일어났다.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 숙소에서 500루피를 주고 차를 대절해 사파리 사이트까지 갔다. 몇 마리의 코끼리가 줄지어 서 있었고, 총을 든 포수가 함께 동행했다. 2~3명이 한 조가 되어 코끼리에 올라탔다. 흔히 코끼리 사파리라 하면 동물 학대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의 코끼리들은 비교적 잘 관리되는 듯 보였고, 새끼 코끼리들이 곁을 따라다니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코끼리마다 이름이 있었는데, 이름을 부르면 귀를 꿈틀거리며 반응하곤 했다. 그 작은 반응 하나가, 이 거대한 몸집을 가진 생명체와 나 사이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주는 듯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동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버팔로 떼, 사슴 무리,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외뿔코뿔소. 안개 사이로 유유히 걸어 나오는 그 모습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경이로움이었다. 멀리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 혼자 풀을 뜯는 수컷, 가족처럼 보이는 무리들. 이 풍경 하나를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시간들이 조용히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왔다’는 사실보다, ‘보았다’는 사실이 더 오래 남는 순간이 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숨을 고른 뒤, 오전 지프 사파리를 신청했다. 코끼리 사파리와는 다른 루트로 구성된 지프 사파리는 총 세 가지 코스가 있었고, 내가 고른 건 국립공원 동쪽 구역이었다. 아쉽게도 오전의 코뿔소들은 대개 잠을 자거나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어,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사파리는 ‘무언가를 반드시 봐야만’ 성립하는 일이 아니었다. 숲의 숨결, 풀잎에 맺힌 물기, 먼 곳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차올랐다.
전날 숙소에서 만난 유럽 여행자는 같은 코스에서 아주 큰 야생 호랑이를 봤다고 했다. “정말 가까웠어요. 아직도 믿기지 않을 만큼 컸어요.” 그의 눈빛만으로도 그 장면이 얼마나 선명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내게도 그런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나는 끝내 야생의 호랑이를 만나지 못했지만, 여행에서 누군가의 행운은 종종 내 행운이 되기도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내 하루는 한동안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으니까.
밤이 깊었다. 마당에 나와 고요한 어둠 속에 서 있으니 머리 위에는 별, 그 아래에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녔다. 흔히 별을 하늘의 불씨라 부르지만, 이곳에서는 숲 속에도 별이 있었다. 반딧불이들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가, 잠시 숨을 고르듯 천천히 다시 날아올랐다. 그 움직임은 마치 조용한 불꽃놀이 같았다. 소리 없는 빛들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각자의 리듬으로 반짝이는 밤. 그날의 밤은 ‘감상’이라기보다 ‘체류’에 가까웠다. 잠깐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의 온도와 어둠의 깊이 안에 그대로 머무는 경험. 나는 그 밤을 한 장면으로 기억하기보다, 한동안 내 몸에 남았던 감각으로 기억한다.
카지랑가에서 보낸 며칠은 마치 현실에서 살짝 떨어져 나온 시간 같았다. 인터넷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밤이 오면 마을 전체가 한꺼번에 어둠 속으로 잠겼다. 불편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해졌다. 그 어둠 속에는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고 묵직한 ‘자연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코뿔소와 함께 숨 쉬는 초원, 반딧불이의 빛을 따라 걷는 길, 소리 없이 피고 지는 이름 모를 들꽃들. 나는 그곳에서, 여행이란 결국 더 많은 것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비우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비워진 자리에는, 안갯속에서 걸어 나오던 외뿔코뿔소의 등판과 밤 숲을 떠다니던 형광빛들이 조용히 남았다.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만큼 선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