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인도: 시킴(3)
나는 여전히 갱톡에 남아 있었다. 계획은 원래부터 여러 갈래였지만, 내 몸은 늘 한 갈래만 허락했다. 멀미는 핑계가 아니라 이유였고, 그 이유는 이 도시에서 나를 자꾸 멈춰 세웠다. 시킴에서의 여행은 ‘어디를 더 가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멈추느냐’로 결정됐다.
당시 나는 갱톡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의 추천으로 New Modern Central Lodge에 머물고 있었다. 가격은 비교적 저렴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샤워를 위한 온수였다. 24시간 온수가 나오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만 쓸 수 있었다. 오후 5시에 온수를 요청하면 양동이에 온수를 담아 방으로 가져다주었는데, 그 시간을 놓치면 그날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없었다. 그 사소한 불편 하나가 매일 나를 다짐하게 했다. 내일은 꼭 펠링으로 떠나야지.
실제로 한 번은 짐을 다 싸서 숙소를 나섰다가도 다시 돌아온 적이 있었다. 합승 지프를 마주하는 순간, ‘저 흔들림을 내가 과연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몸이 먼저 고개를 젓는다. 또 하루는 짐을 싸서 나왔는데 비가 쏟아졌다. 펠링으로 가는 길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저녁에 다시 숙소로 돌아와 체크인했다. 그렇게 하루가 하루를 밀어내다 보니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보름을 머물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들도 생겼다. 가장 친했던 사람은 숙소 매니저였는데, 사람들은 그를 ‘붓다’라고 불렀다. 늘 웃고 늘 느긋했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처럼 보였다. 붓다는 내가 갱톡에서 이것저것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고, 저녁이면 함께 술을 마시곤 했다.
나는 랑카 사원에서 기념품으로 염주 하나를 샀다. 그날 이후 목에 걸고 다녔는데, 그때부터 주변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마침 내가 매일 입고 다니던 빨간 겉옷이 티베트 스님들이 걸치는 색감과 닮아 있었다. 거기에 매일 깔끔하게 면도하는 대머리에 목에는 염주까지 더해지니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티베트 스님’ 같은 인상이 됐다.
그날도 우리는 바에 모여 축구를 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전반전이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 밖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나를 보며 외쳤다.
“라마!”
그러자 모두가 따라 했다. “라마!” “라마!” 그렇게 내 별명이 생겼다. 처음엔 한국에서 온 ‘코리안 라마’였다. 갱톡에는 나처럼 오래 머무는 여행자들이 제법 있었고, 비슷한 얼굴들이 매일 저녁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였다. 술을 함께 마시면 금세 친구가 된다. 영국에서 온 장발의 친구는 어느 순간 ‘지저스’로 불리기 시작했고, 나는 ‘라마’가 됐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운다는 것. 그러니 별명은 오래가지 않아 다음 단계로 진화했다. 나는 더티 라마(dirty Lama), 영국 친구는 더티 지저스(dirty Jesus)가 되었다.
라마와 지저스인데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운다고, 친구들은 웃으며 우리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우리도 함께 웃었다. 그 별명은 나를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여행이 계속 진지해지기만 하면 숨이 막힌다. 시킴에서 나는 비장함과 우스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하루는 붓다와 술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오던 늦은 밤이었다. 우리는 꽤 취해 있었고 길도 어두웠다. 그때 길을 지나던 경찰 한 명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 붓다는 그 경찰과 아는 사이였는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고, 나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붓다는 나를 ‘코리안 라마’라고 소개했고, 술기운에 나는 순간적으로 스님들이 하듯 손을 모아 합장하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자 경찰은 나에게 더 경건한 자세로 인사를 하며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경찰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붓다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저 친구, 너를 진짜 코리안 라마라고 생각한 것 같아. 너한테 자기 가족 건강 빌어달라고 하더라.”
우리는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연신 웃었다. 그날의 웃음은 갱톡에서 내가 숨을 쉬는 방식 중 하나가 됐다.
갱톡은 흔히 사람들이 상상하는 ‘인도의 이미지’와는 결이 다른 도시였다. 특히 MG 마그(MG Marg)에 서면 더 그렇다.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보행자 전용 거리에는 상점과 카페가 촘촘히 붙어 있고, 가운데는 벤치와 화단이 이어져 ‘걸었다가 앉고, 다시 걷는’ 리듬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길로 모였다. 그리고 그 거리는 ‘정돈’을 규칙으로 유지하는 곳이었다. 담배도 그 안에서는 금지다. 흡연을 하거나 침을 뱉으면 벌금이 무려 5,000루피(그 당시 환율로 대략 10만 원 정도)에 달했다.
갱톡에 머무는 동안 내가 자주 찾은 식당은 의외로 태국 식당이었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모험’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모험을 크게 즐기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식당이 생기면 나는 그곳만 계속 찾는 편이다. 더 맛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갱톡에 있는 동안 내 동선은 몇 군데로 자연스럽게 좁혀졌다. 낯선 도시에서 ‘단골’이 생기면, 여행은 서서히 생활로 넘어간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로 할 일이 없어서 갱톡 근교로 무작정 나가보기로 했다. 마침 갱톡으로 올라오던 첫날, 차창 밖으로 길게 따라오던 큰 강이 떠올랐다. 시킴의 산과 계곡을 가르며 내려오는 티스타강(Teesta River)이었다. 히말라야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거칠고도 푸르렀고, 강은 늘 길 옆에서 여행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나는 그 강을 다시 한번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합승 지프를 탔다. 갱톡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 싱탐(Singtam)에서 내렸다. 갱톡으로 들어가려면 어차피 한 번은 스쳐 지나가야 하는 곳이라, 어떤 여행자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길목’ 정도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곳이 더 잘 맞았다. 목적지보다 경유지에 마음이 오래 머무는 날이 있다. 그날의 싱탐이 딱 그랬다.
싱탐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깔끔했다. 당시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태양광 가로등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오면 괜히 반가웠다. 여행자는 어떤 순간에 자기 관심사를 숨기지 못한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강이 나왔고, 강 위에는 다리가 하나 걸려 있었다. 그날따라 나는 이상하게도 다리에 집착했다. 특별할 것 없는 구조물인데도 그 다리가 유난히 멋져 보였다. 그래서 휴대폰을 꺼내 다리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남들에겐 별것 아닌 것이, 어떤 날엔 유난히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다. 그날의 다리가 그랬다.
나는 무작정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 올라가니 산 중턱에 학교가 하나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공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 누가 주으러 갈까?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혼자 웃었다. 어릴 적, 축구나 야구를 하다가 공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 결국 누군가는 내려가 주워 와야 했던 그 난감함이 문득 겹쳐졌기 때문이다.
처음엔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저 내 취미다. 사람도 사물도 풍경도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선생님에게 학교 안을 둘러봐도 되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은 처음엔 내가 외국인인 줄 몰랐다고 했다. 이곳엔 티베트계 주민도 많고, 동아시아인과 비슷한 얼굴도 많아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표정이 풀렸고, 예상보다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잠깐 수업을 참관했다. 교과서와 수업 언어는 힌디어가 아니라 네팔어(Nepali)였다. 인도라고 모두 힌디어를 쓰는 건 아니다. 인도는 주마다 언어가 다르고, 그 언어는 생활의 바탕이 된다. 아이들의 수업을 보며 ‘인도’라는 단어 하나로 이 나라를 단순화하기엔 너무 많은 층위가 있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네 번째 인도 여행인데도 여전히 나는 인도를 잘 모른다. 아니, 모르는 게 더 많았다. 그게 이 나라의 크기이기도 하고, 여행자의 한계이기도 하다. 반복된 여행은 더 많이 알아가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모른다는 사실을 배우게 한다. 그래서 여행자는 여행을 할수록 더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학교를 나와 다시 강 쪽으로 내려오니, 다리 앞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이 보였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흔히 보던 고무줄놀이와 무척 닮아 있었다. 낯선 나라의 산골에서 그 장면을 다시 만나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킴, 아쌈, 메갈라야 같은 인도 북동부의 주들을 여행하다 보면 우리의 옛날 모습과 닮은 풍경을 종종 마주한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는 당연했던 굴렁쇠 놀이와 구슬치기, 고무줄놀이 같은 장면을 만날 때면 잊고 지냈던 기억이 불쑥 올라온다. 여행은 이런 순간에, 먼 나라의 거리를 갑자기 좁혀준다.
해가 기울 무렵 나는 합승 지프를 타고 다시 갱톡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시킴에서 보낸 지난 보름을 잠시 떠올렸다. 몸의 한계 때문에 멈춰 서며 얻은 시간들—온수 양동이를 기다리던 시간, MG 마그를 반복해서 걷던 시간, 매일 같은 식당에 앉아 있던 시간, 새로 사귄 여행자, 현지인 친구들과 어울려 매일 저녁 함께 술을 마시던 시간. 이상하게도 그 시간들이 내게는 더 선명하게 남았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때로는 '머무는 여행'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을. 갱톡은 잠시 나를 멈추게 했고, 나는 그 멈춤을 조금씩 ‘나만의 여행 방식’으로 바꾸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