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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친구 지혜 Jan 01. 2021

너 언덕 위 하얀 집에서 왔니?

어릴 때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말의 의미

사진출처: http://bjj-australia.blogspot.com/2017/01/the-white-house-on-hill.html



“너 언덕 위 하얀 집에서 왔니?” 


아주 어릴 때 정신병원(여기서는 어릴 때 부르던 어감을 살려서, 정신건강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기관을 통칭해서 ‘정신병원’이라고 말하겠다)의 이미지는 소위 말하는 “미친” 사람들이 있는 비일상적인 공간이었다. 정신병원에 직접 가봤다는 사람은 주변에 없는데, 사람들은 정신병원을 가리켜 “언덕 위 하얀 집”이라고만 말했다. ‘멀쩡한 사람’은 절대 갈 일이 없는 그곳은 광기로 가득 차있으며, 온통 새하얀 그 공간에 ‘일반인’이 들어가면 미쳐버릴 수도 있다는 부연 설명을 덧붙이면서.


어릴 적 “너 언덕 위 하얀 집에서 왔니?”라는 표현은 악의 없는 공격이자, 자신을 타인과 구별하는 놀이에 불과했다. 자기 기준에 납득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보고 ‘비정상적’이라고 말하는 일은 어렸을 때 빈번하게 있었다. 교실에서 떠들며 놀다가 누군가가 “언덕 위 하얀 집”이라고 말하면 모두 낄낄대면서 웃었다. 그렇게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그곳’에 갈 일이 영원히 없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초진을 예약하고 첫 방문을 할 때, 어릴 적 그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방문한 병원은 언덕 위에 있진 않았지만, 주변 건물들과 비교해봐도 그 병원은 독보적으로 새하얀 외관과 내부를 갖추고 있었다. 초여름의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색이 더 도드라지게 보였다. 2층이었던 병원 계단을 오르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내가 이미 ‘미쳐서’ 하얀색이 거북스럽지 않은 걸까, 아니면 여기서 나는 서서히 미쳐갈까. 나는 어느 쪽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병원에 도착하고 나니 먼저 온 환자들이 눈에 띄었다. 빳빳한 정장을 차려입은 30대 무렵의 직장인과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간호사에게 나를 알리고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도 일상적이라서 되려 이질감이 느껴졌다. 진료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평범했다. 약 5년이 지난 지금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고작 정장과 흰머리라는 사실이 그들의 평범함을 말해준다. 그곳은 광기가 넘치는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기실을 한참 둘러보다가 간호사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1차 진료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 어쩌다 오게 됐는지, 가족관계는 어떤지, 언제 어디서부터 나의 우울이 시작되었는지를 털어놓았다. 그것도 무척 덤덤한 말투로 조곤조곤하게 대답했다. 1차 진료를 봐주시던 선생님은 꼼꼼하게 내가 하는 말들을 받아 적어 내려갔다. 저렇게 적어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궁금했다. 내 시선은 말하는 내내 줄곧 선생님의 펜 끝을 바라봤다. 그리곤 잠시 나가서 대기하라는 말에 1차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얼마간의 대기시간 후, 본 진료실로 들어가라는 안내를 따라 본 진료실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문과 마주하는 통창에서 햇빛이 쏟아졌고 이내 곧 나를 점령했다. 손으로 눈을 가리며 검은 가죽 소파에 앉고 보니 머리가 반쯤 벗겨진, 체구가 좋은 의사선생님이 있었다. 


“여긴 어떻게 왔습니까?”


사람이 참 희한한 게,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감정선이 달라진다. 1차 진료 때도 들었던 같은 질문인데, 나는 그만 왈칵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살고 싶어서 왔어요.”


갑자기 쏟아진 울음 속을 뚫고 꺽꺽거리며 대답했다. 울고 있는 나를 앞에 두고 의사선생님은 대뜸 호통을 쳤다. 


“왜 이제야 이렇게 늦게 왔습니까!”


진료실에 의사선생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렇게 나는 진료비와 울음을 값으로 내어 “언덕 위 하얀 집에서 온”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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