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하고 싶었던 나의 회사이야기
사진을 전공했지만 사진을 찍는 일에 흥미가 없었다. 요즘 시대에 전공을 살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만은 나는 일찌감치 전공을 버리고 직장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을 선택해 일하던 친구들과는 아주 다른 삶을 그려가고 있었다. 심지어 회사생활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4년이 흐른 후 나는 엄청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죽은 것 같았다.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때는 내 나이 열일곱. 이제 막 고1에 올라간 내가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딱딱한 책상과 의자에 앉아 있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주일의 야자 끝에 나는 예체능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예체능 전공자는 저녁 6시 이후에 학원을 간다는 명분 하에 일찍 하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사진이냐? 미술엔 재능이 없고 체육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땐 사진이 이렇게까지 보편화되었을 시절은 아니라서 카메라 쓰는 법을 배워두면 동네 사진관이라도 낼 수 있겠지 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과 부모님들은 내가 사진에 되~게 엄청난 열정이 있어서 시작했는 줄 알지만, 사실 나의 속사정은 이랬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 사진을 시작했기에 수능 점수에 대학을 맞추지 않고, 원하는 대학을 선택해서 갈 수 있었다. 사진을 시작하면서 목표가 생겼고, 동기부여가 됐다.
학과석차 1등, 대학생활에 남은 건 그뿐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사진 공부를 제대로 시작했지만 사진 찍기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흥미를 가져보려 나갔던 스튜디오 현장 실습에서는 부도덕함과 비효율적인 것만 잔뜩 보고 돌아왔다. 무엇보다 생활을 잇기조차도 어려운 월급을 받아가며 밑바닥부터 최고 자리까지 올라간 실장님의 모습이 내가 그리던 미래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이런저런 괴리감에 빠져있을 때 우연히 교직이수를 하게 됐다. 교생실습을 마치며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닌 사진을 학문으로써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휴학 없이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진이 좋아 사진을 하려고 전과, 편입까지 무릅쓴 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자니 고민은 점점 커져갔다. 패션, 뷰티, 제품, 웨딩, 베이비 스튜디오는 물론 리터쳐니 사진기자니 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어영부영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졸업했다. 평균 학점 4.2, 학과석차 1등이었다.
여행하며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좋아서 여행기자가 되다.
4년간 사진을 공부했던 건, 사진을 공부하지 않았으면 남았을 미련을 떼낸 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때마침 서울의 한 회사에 여행기자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이력서가 뭔지, 자소서가 뭔지도 모르는 나는 자유분방한 지원서를 제출했다. 속전속결로 면접을 봤는데,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야놀자가 나의 첫 회사가 되었다. 당시 입사 동기는 10명. 그중 나만 여행팀에서 데이트팀으로 발령받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어린 나이에 여자인 데다 운전이 미숙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카테고리만 달랐지 하는 일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나를 신임해준 팀장님 밑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1년 넘게 지칠 줄 모르고 냅다 달리기만 했다. 모든 일이 재밌고 새로웠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좋았고, 동기들이 막내라고 잘 챙겨주었다. 덕분에 지금 돌이켜봐도 꿈같은 회사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노는 언니', 내 마케터 인생의 시작
때는 바야흐로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시장이 넘어가면서 SNS가 활발해지는 시기였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우리 사이트 안에만 있는 것에 줄곧 아쉬움을 느꼈고, 회사에 마케팅을 전담으로 하는 팀이 있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회사 반응이 미적지근하더니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럼 네가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라 하셨다. 그래서 평소에 나름대로 마케팅에 꿈을 품었던 멤버들을 모아 나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시작이 '노는 언니'였다. 야놀자가 가진 B급 문화를 친근한 캐릭터인 노는 언니로 승화시키고, 더 이상 숨겨야 할 서비스가 아닌 재밌고 신나는 서비스로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나름의 팬층이 생길 만큼 성공적이었고 꽤 오랫동안 야놀자를 얘기하는 데에는 노는 언니라는 화자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마케터가 되었다.
온라인부터 오프라인까지 확장했지만
2년간 몸담았던 회사와 이별 후 다시 사진일을 해보려고도 했다. 일하는 시간에 비해서 보수도 괜찮았다.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기운이 빠져나가기만 했다. 역시 사진 일은 사진 일이구나 싶던 와중에 마침 다른 회사들도 SNS 마케팅에 혈안이 되어있어서 이직은 쉬웠다. 그중 평소 눈여겨보던 서비스의 채용공고에 지원했다. 액티비티, 여가생활, 원데이 클래스를 경험할 수 있는 프렌트립이었다. 당시 20명 규모로 영업, 개발, 경영, 마케팅을 진행하던 회사였다. 덕분에 온라인 마케팅에서 오프라인 마케팅으로 업무 범위를 조금 더 확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돌연 회사의 경영난과 나의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와 이별하게 됐다. 이후 스타트업에서 꾸준히 마케터 자리로의 제안이 있었지만 큰 회사에 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들뿐이었다.
남에게는 꽤 괜찮은 직장이 나에게는 괜찮지 않았다.
회사 일을 잠시 쉬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큰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가 해왔던 분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자신있었다. 굉장한 야망을 가지고 입사했지만 나는 일주일 만에 그 회사를 퇴사하고 싶어 졌다. 모든 일과 사람이 부품처럼 돌아갔다. 어느 직장인이 부품이 아니겠냐고 되묻겠지만 적어도 나는 일을 하는 동안에는 주인의식과 성취감이 원동력이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렵게 올린 다양한 제안서가 너무 쉽게 물거품이 되었다. 일에 대해 거절을 당한 것이다. 그냥 정해진 대로만 일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나만 빼고 모두 톱니바퀴 굴러가듯 자연스러웠다. 나만 그 속에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9-6가 칼같이 지켜지는 회사, 복지가 뛰어난 회사, 명성이 자자한 회사였지만 나는 퇴근 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상실감과 패배감에 시달렸다. 그래도 좋은 회사니 버텨보라는 지인들의 격려 속에 겨우겨우 1년을 채우고 그만뒀다. 모든 것이 빠져나간 듯 내 안이 텅 비어버렸다.
마지막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꿈이 없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사진 전공자라서? 처음 접한 회사가 일반 회사가 아니라서? 내가 정식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회사원이라서? 큰 회사에 가서 체계적인 시스템과 제대로 된 일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잃고 나니 어떤 회사에서도 일하고 싶지 않아졌다. 어차피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고, 나도 회사가 아닌 급여를 위해 일하는 존재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이것을 스물 여덟, 직장생활 4년차가 되어서야 알았다.